인용문은 고 장영희 교수의 강연록 묶음인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중 'How to live, How to love'라는 절 29-33쪽에 실린 일화이다. 2001년 일화이고 대화를 나눈 의대 교수가 제대로 전달을 못했을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교양과정이 거의 다 문학으로만 되어 있다'는 표현은 과장인 듯하다. 2012-2013년 하버드 의대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문학과 의학'은 블록 과목으로 4주 과정 선택 과목에 들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을 문학에서 배웠'다는 문장은 인상적이다.

p.s 이윤중 선생님의 댓글을 읽고 확인해보니 'Literature and Medicine'은 '문학과 의학'이 아니라 '문헌과 의학'으로 의학 논문 출판과 관련된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더더욱 '교양과정이 거의 다 문학으로만 되어 있다'는 표현의 근거가 궁금해진다.


제가 2001년 하버드 대학에 교환교수로 안식년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여러 분야의 교수님들이 모인 회식 자리가 있었는데, 제 옆에 생뚱맞게 하버드 대 메디컬 스쿨 교수님이 앉았습니다. 옆에 앉아 있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제가 깜짝 놀란 것은 그 교수님이 영문학을 전공한 저보다 더 문학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끄럽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해 그 교수님에게 물어보았지요.

"어떻게 그렇게 문학에 대한 지식이 많으신가요? 따로 공부를 하시나요?"

그랬더니 그 교수님 대답이 하버드 의대에서는 교양과정이 거의 다 문학으로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열에 아홉 이상이 문학 과목이고, 그런 과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대 MIT도 같다고 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또 공대를 다니는 사람이 뭐하러 문학을 공부하나 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전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아니, 왜 메디컬 스쿨 교양강좌에서 문학을 배워요? 손가락이 어떻게 생기고, 눈이 어떻게 생기고 그런 기초적인 신체 구조를 배워야 되는 것 아닌가요?"

아마 그 교수님은 제가 굉장히 무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겁니다. 저를 무척 'hopeless, impossible'한 사람이라고 보았는지, 가만히 한숨을 쉬고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초음파 검사를 하다 보면 제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점이 있어요. 마음이 아주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 이 세상을 즐기며 사는 사람, 마음이 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 세상을 즐기며 사는 사람, 마음이 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러니까 막 속이 타들어가고, 고뇌에 빠져 있고, 무언가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다 구별이 돼요.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거지요."

정말 웃기는 말 아닌가요? 어떻게 초음파를 통해서 그 사람이 착한지 아닌지, 또 고뇌에 차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겠어요?  그런데 그 교수님은 덧붙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문학을 많이 공부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물론 이것은 과학적인 근거도 없고, 그래서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치료한다는 것은 환자의 마음까지 포함한다는 것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어야 그 사람을 잘 치료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을 문학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니 의사가 되기 위해서 문학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비단 의사뿐만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문학이 가장 기본이며 인간다움을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문학은 학문이라기보다 삶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란 일종의 대리 경험입니다. 시간적, 공간적, 상황적인 한계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경험을 다 하고 살 수 없는 우리에게 문학은 삶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줍니다.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내가 그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어 대리 경험을 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인간답게, 또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거에요.

한마디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배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고 남을 생각하며 살아가는가,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고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가를 문학 작품을 통해 배우는 것이지요. 삶에 눈뜬다는 것은 아픈 경험이지만 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꼭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거에요.

Posted by cyber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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