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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6.19 '증거기반의학의 철학' 옮긴이의 말 (1)

옮긴이의 말

증거기반의학의 정신, 철학의 정신

당연해 보이는 것에 대한 의심


번역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부딪쳤던 난관은 우리말 제목을 붙이는 일이었다. 이 책은 의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지적 운동evidence-based medicine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데, 우리는 통상 그 운동을 부르는 우리말 이름부터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책을 읽고 우리글로 옮기는 일은 적절한 번역어를 골라내는 데에서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던 의학 연구의 관행에 의문을 던지고 제기된 논점들을 하나하나씩 점검해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 글은 증거기반의학이 제기하는 여러 논점들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을 소개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고도로 분업화된 오늘날의 학문 세계에서 철학의 역할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 요체는 널리 받아들여지는 지식이나 개념 체계라고 할지라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한 번 더 의심하고 따져 묻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의학계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던 증거기반의학을 관통한다. 그러한 정신이 어떻게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에서 적용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조금 더 포괄적인 시각에서 증거기반의학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통념을 고찰하려 한다.

우선,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을 확정한 이유에 대해 상세히 논의한다. ‘근거중심의학’, ‘근거기반의학’ 등 여러 이름이 통용되고 있지만 각 이름을 사용해야 할 이유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헌은 드물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증거기반의학’을 선택한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다음,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이 맺는 관계에 대한 여러 견해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증거기반의학은 오늘날 의학의 주요 방법론으로 대두했지만 대중에게는 여전히 그 이름조차 생소하며, 동시에 관심 있는 전문가들은 기초과학과 그 방법론이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증거기반의학의 창시자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과학적 의학’으로 부르려 했으나 결국 ‘증거기반의학’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추적하면서, 증거기반의학과 기초과학의 관계를 성찰하겠다.


1.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


번역 작업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과제는 ‘evidence-based medicine’(주: 번역어를 택한 이유를 밝히는 대목에서는 ‘evidence’, ‘based’, ‘medicine’, ‘evidence- based medicine’, ‘증거기반의학’, ‘non-evidential’을 그대로 노출시켰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었다. 현재 한국 의학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번역어는 '근거중심의학'(주: 대한의학회가 만들고 정부가 지원하는 임상진료지침 정보센터에서 택하고 있는 표현이 ‘근거중심의학’이다.)인 것 같다. ‘근거중심-’이라는 표현은 다양한 영역의 문헌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관련 전문 서적에서는 ‘근거중심간호’나 ‘근거중심한의치료’ 같은 표현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강독 과정에서 우리는 ‘근거중심’은 이 방법론적 운동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으며, 그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 가능한 다른 선택지와 각 대안의 장단점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겠다.


2. Evidence: 증거인가 근거인가? 


evidence의 번역어로 다음 두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①증거. 

②근거.


많은 의료인은 증거보다 근거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있다. 한국어 단어 ‘증거’와 ‘근거’가 서로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단어 모두 주장을 담고 있는 가설·이론·판단을 옹호하기 위해 쓰이는 자료를 뜻한다. ‘증거’는 법률적 효력과 같이 뒤집기 어려운 경우에 쓰인다는 직관이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 현재 ‘증거’보다 ‘근거’를 선호하는 이유는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이 의과학이 제시한 연구 결과가 가설을 확실히 뒷받침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최선의 판단도 원리상 전복될 수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의료계는 ‘증거’보다는 ‘근거’를 번역 용어로 더 많이 쓰고 있다.

우리는 의료계에 통용되는 근거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근거’가 아니라 ‘증거’로 옮겨야 한다. 증거가 불확실하며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지적은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앞선 지적이 증거기반의학이 주장하는 새로운 의학의 핵심은 아니다. 어떤 경험 자료가 가설이나 이론을 뒷받침하는 상황을 철학적으로 성찰해보면, 경험에 기반을 둔 주장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으므로 확실하지 않다는 말은 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부정하는 과학자나 의료인은 없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증거의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에 주목한다. 즉, 어떤 증거의 품질이 더 좋고 더 나쁜지, 그리고 어떤 자료가 증거가 될 수 있고 될 수 없는지에 대한 구분 기준을 탐구한다.

이런 생각을 그림 1.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다시 살펴보자.

증거기반의학이 제시하는 위계 구조에 따르면, 무작위 시험과 관찰 연구 설계로 대표되는 비교임상연구를 잘 수행하면 양질의 증거를 얻을 수 있다. 전문가 판단과 메커니즘 추론을 통해서는 품질이 나쁜 증거만 얻을 수도 있다. 전문가 판단은 증거의 자격 자체가 의심스럽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은 그림 1.1에서처럼 여러 연구 설계의 품질을 범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전문가 판단이나 메커니즘 추론으로 품질이 나쁜 증거를 얻을 수 있다는 평가를 검토하여 증거라는 용어가 적절한 까닭을 설명하려고 한다.

먼저 전문가 판단을 살펴보자.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은 전문가 판단에 가설을 입증하는 일과는 다른 비증거적 역할non-evidential role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역할은 하윅에 따르면(11장 4절) 환자의 가치와 상황을 최고 품질의 증거와 결합시키는 일, 플라세보 효과를 강화하는 일, 암묵적 지식에 해당하는 숙련 기술을 사용하는 일 등이다. 우리는 의료인들의 전문성과 판단이 합리적 이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첫 번째 역할을 수행하려면, 치료 효과에 대한 정보는 물론 환자의 가치와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역시 판단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두 번째 역할을 수행하려면, 의료인은 언제 플라세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어떻게 플라세보 효과를 강화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의료인 자신이 충분한 암묵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세 번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의료인 자신이 충분히 숙련됐다는 자각을, 즉 자신이 충분히 전문가라는 자각이 없이는 전문적인 의료 행위를 제공할 수 없다.

전문가 판단과 비교임상연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환자에게 영향을 준다. 전문가 판단은 다양한 실천적 가치에 의해 옹호된다. 반면 비교임상연구에서 검증한 가설은 연구 결과 데이터로 옹호된다. 이는 인식론·과학철학의 용어를 활용하여 특별히 입증confirmation이라고 부른다. 어떤 가설에 대해, 그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있다면 그 가설은 입증된다. 또 그 증거의 수준이 강력할수록 입증의 강도도 세다.(주: 상세한 논의는 본문 1장의 역주와 헴펠의 <자연 과학 철학> 4장 77-102쪽을 참조하라.) 따라서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이 증거 위계(그림 1.1)를 사용하여 보여주고자 했던 입장은, 각 증거들이 제공하는 입증의 강도, 다시 말해 인식적 자격 또는 참에 대한 보증의 강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증거기반의학 위계에 따르면, 전문가 판단은 입증력이 없거나 약한 반면 성공적인 비교임상연구는 가설을 강력하게 입증한다.

메커니즘 추론이 내놓은 증거가 품질이 나쁜 증거로 취급되는 이유도 살펴보자.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어떤 치료 A가 환자에게 유관한 효과를 낸다는 가설에 대하여 메커니즘 추론의 결론은 제대로 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본다. 메커니즘 추론이 참이라고 주장했던 가설이 실은 거짓이라고 밝혀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잘 수행된 비교임상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메커니즘 추론이 내놓은 가설과 충돌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에, 메커니즘 추론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런 추론에는 숨겨진 전제가 있다. 비교임상연구가 메커니즘 추론보다 범주적으로 더 강한 입증력이 있다는 전제 없이는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없다. 물론 하윅은 이런 전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만(10장), 적어도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이 양질의 증거라는 말로 무엇을 지시하는지 확인할 때 유용하다.

결국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어떤 치료 A가 효과적이라는 가설에 대해, 어떤 연구 결과가 해당 가설을 강하게 입증한다면, 그 결과는 양질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림 1.1에서 상위에 있는 증거가 좋은 까닭은 적절한 연구 설계로 수행됐기 때문이고, 방법론적으로 우월한 증거일수록 가설을 입증할 때 믿을 만하다.

따라서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셈이다. 비교임상연구가 제시하는 증거에는 전문가 판단이 반영하는 다양한 종류의 가치와는 구분되는 인식적 힘이 있다. 또한 메커니즘 추론에 비해 비교임상연구는 양질의 증거다. 우리는 이런 인식적 자격, 또는 입증력 차이에 주목한다. 증거를 증거로 만들어주는 한편 증거의 품질을 올리기도 하는 요소는 바로 이 자격 또는 입증력이다. 증거기반의학이 말하는 증거의 핵심이 입증력이라는 사실에 비춰 볼 때, ‘근거’가 아니라 ‘증거’라는 말을 쓰면 의미가 강해진다는 의학계의 우려는 기우다. 증거가 미약한 입증이거나 증거가 방대한 입증이거나,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면 뒤집어질 수 있다는 점에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한국어 ‘증거’에는 법률적 효력에 대한 평가도 담겨 있다. 그러나 증거기반의학이 입증력이라는 인식적이고 과학철학적인 쟁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 판단에 대한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근거’에 담긴 여러 느슨한 의미를 덜어내려고 한다. 어떤 증거의 법률적 효력 역시 입증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증거라는 말에 담긴 법률적 의미는 인식적 의미에 어느 정도 의존한다.

논의의 결론은 이렇다. ‘근거’는 어떤 추론이나 결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이유를 가리킨다. ‘증거’는 어떤 가설에 대해 입증력이 있는 자료에 대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법률적 효력 역시 입증력에 의존한다. 증거기반의학이 말하는 증거의 용법을 검토해보면, 증거는 특수한 종류의 정당화, 즉 쟁점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쓰이는 자료를 가리킨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유로 ‘근거’ 대신 ‘증거’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3. Based: 중심인가, 기반인가


Based는 증거, 그리고 개별 의사의 결정이나 보건 당국의 지침과 같은 의료 실무 사이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에 대한 번역어는 두 가지가 있다.


①중심.

②기반.


두 용어는 증거와 의료 실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이다. ‘중심’과 ‘기반’은 모두 증거가 의료 실무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뜻을 전달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우리는 더 세밀한 뜻을 전달하는 데는 기반이라는 용어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두 용어에 대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풀이와 우리의 직관은 다음과 같다.


①기반: 기초가 되는 바탕. 또는 사물의 토대. 어떤 토대 위에 구조물이 올라가 있는 관계를 가리킨다. 증거라는 토대에 의료 행위라는 건물이 서 있는 그림이 연상된다. 

②중심: 사물이나 행동에서 매우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부분. 하나의 주 기둥에 여러 보조 기둥이 있는 구조물에서 주 기둥과 보조 기둥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 증거가 의료 행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그림이 연상된다.


기반의 용법에 따라 그린 그림 속에서, 증거는 의료 행위의 소극적 조건, 다시 말해 의료 행위가 어기면 안 되는 조건으로 제시되었다. 반면 중심이 주는 그림 속에서 증거는 의료 행위의 기초가 되는 다른 여러 이유를 압도하는 무언가로 제시되었다. 증거기반의학은 기반이 제시하는 그림과 더 어울린다. 예를 들어 보건당국이 담배를 오직 역학적 증거에 의해서만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이 조치는 격렬한 사회적 논란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중보건정책은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와 부합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조치의 효과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 역시 감안해야 한다. 또한 증거기반의학은 의료 행위가 환자의 가치를 감안하여 제공돼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따라서 ‘중심’보다는 ‘기반’을 번역어로 골랐다.


4. Medicine: 의학인가 의료인가


Medicine에 대한 번역어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①의학.

②의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의학’을 인체의 구조나 기능, 질병, 치료, 예방, 건강 유지의 방법이나 기술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의학을 지지하는 견해에 따르면, 증거기반의학은 어떤 치료가 환자에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옳은 지식을 확보하는 절차를 제공하고, 나아가 그 절차가 왜 옳은 지식을 보장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방법이다. 이는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다루지 않고, 의료와 유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의학’은 이런 문제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집합을 가리킨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의료’를 의술로 병을 고치는 일로 풀이하고 있다. 증거기반의학은 의료 현실을 폭넓게 변화시키려 한다. 이런 변화의 범위를 감안할 때, 의료가 적당한 용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 있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의학을 변화시켜 의료 역시 변화시키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증거 위계 피라미드(그림 1.1)를 통해 전문가 판단은 증거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전문가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문가 판단은 증거 자격이 없다는 평가가 의학의 문제라면, 전문가의 역할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이를 의학이 다루는 증거 산출 절차와 구분해야 한다는 제안은 의료의 문제다. 

의학은 결국 의료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예를 들어 ‘예방의학’ 역시 그렇다. 예방의학의 목표는 역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조기 사망을 줄이는 데 필요한 조치를 개발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 있다. 대부분의 의학 지식은 임상 현장에 적용되어야 의미가 있다. 의학의 기본 속성에 비추어 보아, ‘의학’이라는 용어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증거기반의학’에서 ‘증거’는 이 운동이 어떤 의료적 개입의 효과성 가설에 대한 입증력을 분별하고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므로 골랐다. ‘기반’은 증거가 의료 행위의 제약 조건으로 기능해야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골랐다. ‘의학’은 이 운동이 의료 현장과 관련된 지식을 축적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골랐다.


5. 증거기반의학과 '과학'


이름을 확정하면서 증거기반의학 자체의 내용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우리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주제는 바로 과학과 증거기반의학의 관계다. 역학 연구를 다룬 뉴스를 접한 대중의 반응부터, 증거기반의학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의 주장, 심지어 증거기반의학의 역사와 방법론 모두에 걸쳐 과학과 증거기반의학의 관계는 주목할 만한 연구 주제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증거기반의학을 적용한 임상 역학 연구를 뉴스에서 접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2016년 8월 AP 통신 탐사보도팀은 치실의 효과에 관한 논란을 취재 보도했다. 이 기사는 국내 언론에 인용 보도되면서 각종 뉴스를 달궜고, 이를 접한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다. 기사에 따르면, 치실에 대한 비교임상연구 결과 치실이 플라그 제거와 치주염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당국과 치의학계, 그리고 관련 산업계가 치실 사용을 계속해서 권장해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가공되지 않은 반응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런 반응 가운데, 특히 다음은 이 에세이의 맥락에서 조명할 가치가 있다.


 증거기반의학에 의한 연구를 ‘과학적’ 연구 방법이라고 부름. 많은 사람들, 또는 많은 국내 보도는 이들 비교 임상연구의 결과를 주저 없이 ‘과학적’이라고 부른다. AP 통신보도 역시 기사 본문에서 ‘scientific’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다. 실제 체계적 고찰 연구를 검토하여 과학적이라고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증거기반의학’이라는 말 자체의 역사와 현재 진행 중인 논란에 비춰 볼 때 이런 용어법에는 문제가 있다.


본문 2장에서 간략히 소개된 것처럼, 고든 기얏이 ‘증거기반의학’을 가리키기 위해 처음 선택했던 용어는 ‘과학적 의학scientific medicine’이었다. 이 표현은 기존 의학이 비과학적이라는 함축을 내포했기에 수용되기 쉽지 않았다. 생명 과학의 발전을 대중에게 알린 많은 성과들은 의과학의 성과였다. 항생제나 장기 이식을 가능하게 한 의학의 발전에 비과학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는 없다. 증거기반의학은 이런 성과만으로는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 않은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증거기반의학을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과학’이라고 부른다면 오해를 살 만하다. 

최근 이오아니디스는 증거기반의학이 ‘납치’되었다고 주장했다. 증거의 품질을 평가할 때 무작위 시험 또는 메타 분석 수행에만 주목하면, 다른 여러 바이어스 유발 요소들이 무시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허점을 노리고 특별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왜곡된 연구를 품질이 높은 연구로 위장할 경우 그 시도를 막기는 어렵다. 특히 생물학적 개연성이 없는 가설에 대한 임상연구조차도 증거기반의학은 품질이 높은 연구로 평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증거기반의학은 비교 임상연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방법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운동으로 평가되며, 결국 중보기도에 대한 임상연구(10장 3절 1항)처럼 생물학적 개연성이 없어 기초과학에 의해 지지받지 못하는 연구도 정당한 연구로 취급할 수 있는 방법론적 운동으로 평가된다.

기얏이 ‘과학적 의학’ 대신 ‘증거기반의학’이라는 말을 택했다는 사실, 그리고 증거기반의학의 ‘납치’에 대한 우려는 증거기반의학을 과학과 등치시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반면 임상연구 보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면, 대중은 과학과 증거기반의학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인과 대중의 상반된 반응을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6.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그림 1.1에서 살펴본 증거 위계에서 출발하자. 증거기반의학은 비교임상연구를 환자에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가장 적절한 증거로 평가하며, 메커니즘 추론은 그보다 못한 증거로 평가한다. 메커니즘 추론에 대한 저평가는 하윅의 <증거기반의학의 철학> 이전에는 충분히 정당화되지 않았다(1장). 여기서는 메커니즘 추론에 대한 저평가를 정당화할 만한 이유를 검토하여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어떻게 보아야 적절한지에 대해 조금 더 논의하겠다. 

증거기반의학이 메커니즘 추론을 저평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메커니즘 추론이 임상연구 결과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메커니즘 추론과는 달리 임상연구는 환자에서의 결과와 간극 없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하윅이 지적하듯(10장), 첫 번째 논거만으로 메커니즘 추론을 저평가할 수는 없다. 양측이 충돌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느 편이 더 우월한 논거라고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논거는 임상연구가 환자에서의 결과와 간극이 없다는 데 있다. 이런 논거는 환자에서의 결과에 대한 하윅의 분석을 활용하면(3장) 정당화된다. 임상연구는 환자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여 수행되므로 효과 크기를 나타낼 다양한 변수를 사용할 수 있으며, 또한 이 지표를 활용하여 여러 치료의 효과 크기를 비교할 수도 있다. 특히 플라세보 대조시험은 플라세보와 시험약의 효과 크기를 비교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반면 많은 학자들이 메커니즘 추론이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외적 타당도’ 문제, 즉 어떤 연구 결과가 실제 임상에서 성공적으로 적용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도 메커니즘 추론은 그리 훌륭한 해결책은 아니다. 과학을 통해 얻은 결과가 임상에서 실제로 효과가 있는 약물로 이행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10장 6절 3항).

물론 이러한 논거로도 메커니즘 추론에 대한 저평가를 온전히 납득할 수는 없다. 하윅의 경우,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은 저급한 증거가 아니라 훌륭한 증거로 보아야 하며, 증거기반의학은 이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다만 메커니즘 추론은 환자에서의 결과와 간극이 크고 비교임상연구는 간극이 작다고 평가하는 이유를 정리해 평가한 작업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하윅의 연구로도 답변이 되지 않은 상태이며, 향후 연구 과제로 남긴다. 

다만 꼭 짚고 넘어갈 만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다. 이른바 ‘증거기반의학의 납치’ 문제다. 대체의학과 같이, 생물학적 개연성이 낮은 의료 행위를 시도하는 일부 의료인에게 증거기반의학이 통계적으로 정교하게 꾸민 증거를 제공할 수 있는 우회로가 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증거기반의학의 개념을 잘 분석해 보면, 이에 응답하는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는 어렵지 않다.

가장 중요한 지적은, 앞서 ‘증거’ 개념을 상세하게 분석한 결과에서 나온다. ‘증거’는 단순히 비교임상연구의 결과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이 말은 환자에서의 효과에 대한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논거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증거’에는 과학에 기반을 둔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하윅의 제안처럼,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은 임상연구와 함께 어떤 가설의 입증 수준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하임릭 구명법이 기반을 둔 메커니즘 추론은 그것만으로도 효과를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이 무엇인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다만 실험실 연구를 통해 획득한 치료 방법이 기대했던 것보다 환자 관련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경험적 증거(10장 6절), 그리고 젬멜바이스 사례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사례에서처럼(10장 부록 표 3) 생물학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되었던 가설이 실제로는 참이었던 여러 역사적 사례에 비춰 볼 때, 생물학적 개연성이 임상연구 가설이기 위해 반드시 만족해야 할 조건이어야 한다는 요구는 의외의 발견을 막는 족쇄로 작동할지도 모른다. 생물학적 개연성을 임상연구 가설을 평가할 때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 조건은 제한적으로만 유효하고, 증거기반의학에 따른 연구가 향후에 다룰 가설은 생물학적 개연성이 있는지 여부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례에 비춰 보았을 때 과도하다.


7.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증거기반의학과 과학 사이의 차이를 대부분 모른다. 앞서 제시한 치실 사례에서, ‘과학’이라는 표현은 어떤 가설의 참을 보증하는 방법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과학’의 이런 용법은 증거기반의학의 장점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도움이 될 만큼 정교하다고 할 수 없다. 임상연구 가설을 입증할 때 실제로 사용되는 방법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치실 사례에 대한 언론 보도와 대중의 반응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 실제 체계적 고찰연구에 대한 언급이 없음. AP 통신 기사의 근거가 된 체계적 고찰연구펍메드 링크가 본래 AP 통신 기사에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기사를 읽거나 논평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실제 연구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국내 언론은 AP 통신 기사와는 달리 펍메드 링크나 논문 본래 링크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비록 명시적으로 ‘증거기반의학’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AP 통신 기사는 결국 증거기반의학에 따른 치과 의료가 제공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연구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반응은 증거기반의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증거기반의학에 따르면 사용할 수 있는 증거를 최대한 활용하여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도 체계적 고찰 연구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반응이 많았다. 또한 국내 언론은 이번 논란의 초점인 치실의 효과에 대한 체계적 고찰 연구를 소개하지 않아 독자들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증거기반의학에 의해 얻은 연구를 전문가만의 전유물, 즉 전문가가 아니면 전모를 알아보기 힘든 연구가 아니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연구로 만들어야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증거기반의학의 구조를 알고 그 결과물을 실제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이들 연구의 내용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이 줄어들 것이다. ‘과학’이라는 표현 속에 구체적인 방법론이 가려져 있는 상태를 내버려 두지 말고, 임상연구가 내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공중보건과 의학적 판단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증거기반의학 문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의학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기자는 코크란 연합에서 제공하는 자료와 같이 우리말로 제공되는 자료들을 참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8. 결론


철학의 정신과 증거기반의학의 정신은 서로 통한다. 철학은 통념을 의심하고, 체계적으로 반성하는 학문이다. 증거기반의학은 가설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가용한 증거를 모두 감안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증거기반의학이 현재 의료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무엇이든,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을 둘러싼 구체적인 논쟁들이 어떻게 진행되든지 간에, 증거기반의학은 그 정신만으로도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에 걸맞은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고심했고 그 결과를 번역어와 역주로 남겼다. 그러나 그마저도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우리는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특히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을 구성 낱말별로 꼼꼼히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시도, 그리고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설명하고 평가하기 위한 시도는 증거기반의학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비록 여기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 이뤄질 논의가 빈 틈을 채워줄 것이다.

‘증거기반’ 운동은 의학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과학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증거기반정책’은 영미권에서는 학계뿐만 아니라 당국의 실제 정책까지도 결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통념을 의심하고 관련 증거를 모두 사용하여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정신을 공유한다. 의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증거기반’ 운동이 퍼져나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우리 몸에 대한 여러 말,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여러 말은 아직 충분히 증거에 기반을 두지 않고, 또 우리는 충분히 의심하지도 않으며 사용할 수 있는 증거를 조직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도 못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실제로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지적 운동이 필요하며 이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이뤄져야만 한다.

의학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함으로써 시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기대수명을 늘리는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의학계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개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려 한다면 다양한 차원에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의학계의 지형을 실질적으로 바꾸어온 ‘증거기반’ 운동이 한 가지 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의학계는 증거기반 운동의 발원지이면서 동시에 그 방법론이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진 영역이다.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가 ‘철학의 부재’에 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식의 결과중심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의 배후에 놓여 있는 그 정신에 주목해야 한다. 환자 자신의 가치에 비추어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인은 폭넓고 공정하게 증거를 수집, 종합하고 주어진 증거에 바탕을 두고 합리적으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추론을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인지에 관한 가치 판단과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든 정책이든) 대상의 가치에 대한 섬세한 감각과 증거에 대한 민감성, 요컨대 비판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다.


9. 감사의 말


2015년 3월 <역학의 철학> 번역서를 생각의 힘 출판사에서 펴내고 소개하느라 시간이 흐른 뒤 <역학의 철학> 본문에 언급된 책 한 권이 눈에 쏙 들어왔다. 존 워럴과 제러미 하윅이 증거기반의학의 방법론적 기반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 대목에, 제러미 하윅이 쓴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 참고문헌으로 나와 있었다. 역학, 철학, 과학철학을 전공한 번역진이 다시 의기투합하여 번역 작업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텍스트였다. 초교를 완성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책이 나오게 된 까닭은 대표 역자의 게으름 탓이 가장 크지만, 모든 역자 신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긴 탓이라는 소소한 변명을 남겨둔다.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 번듯한 번역서의 모양을 갖추게 된 데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의 김건형 교수와 연세대학교 인문사회의학협동과정 박승만 선생은 초교를 완성하는 독회에 참석해서 중요한 의견을 남겨주셨다. 김건형 교수와 중앙보훈병원 신장내과 김범 전문의는 편집 원고를 통독하고 번역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상세한 지적을 보내주셨다. 생각의힘 출판사 편집부 유승재 과장은 의학용어와 철학용어가 어지럽게 직교한 번역 원고를 가독성 있는 원고로 바꾸기 위해 분투하셨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출판계 상황에도 <역학의 철학>에 이어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을 번역서로 내기로 용단을 내려준 생각의힘 출판사 김병준 대표께 커다란 감사를 드린다.

<역학의 철학>이 인구집단 측면의 관련성이 인과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문답이라면,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은 무작위 시험을 통해 얻은 증거는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문답이다. 가짜 뉴스 시대에 보건의료 분야에도 만연한 가짜 정보를 가려내는 능력을 확보하는데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Posted by 사이버독 cyber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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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성의 전당 2018.07.11 18: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377876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를 기본적 자기 정의로 전제하고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라는 ‘존재’적인 측면의 의문을 해결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고 전제로서 여기고 있는, 그 믿음을 먼저 해체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나’는 누구이기는 한 걸까?
    정말 ‘나’는 무엇이기나 한 걸까?
    지금까지 당연시 여기고 있던 이것이 정말 ‘나’일까?

    ‘지금의 나’에 대한 믿음을 먼저 해체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해체하고 나면, 남는 것은 오직 “나는 누구인가?”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측면에서 “나는 누구인가?”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 출처 : 불멸의 자각 www.uec20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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