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책을 번역하게 됐고, 번역하다 보니 공부할 꺼리가 많아 관련 서적을 계속 사보게 됐다. "번역, 이럴 땐 이렇게"는 통번역 강의 10 경력의 저자가 경험을 살려 만든 책으로 일단 번역 초고를 만든 다음 문장을 매끄럽게 만드는 방법과 예문이 제시되어 있다. 2 번역 강의 4 과학이 의약 분야 예문이기도 해서 가지 의견을 남겨 놓는다.


70. 6. Early detection is vital to preventing cancer. 예방에는 조기 검진이 최선책이다.

- early detection 대개 조기 발견으로 옮긴다. screening 검진으로 옮긴다. vital 최선이라고 옮긴 부분도 약해 보인다. 나라면 " 예방에는 조기 발견이 필수적이다." 옮길 듯하다. 문장의 정확한 출처를 모르겠지만 내용이 잘못됐다는 점이 문제다. 조기 발견과 조기 검진은 암을 예방할 없고 조기 치료를 통해 사망률을 낮출 있을 뿐이다. 조기 검진을 열심히 하면 발견율이 높아져 환자가 늘어나게 된다. 한국에서 유방암과 갑상선암 발생률의 폭발적인 증가가 좋은 사례다.


164. Nature's Drugs 학생번역: 자연의 , 수정번역: 천연약품 대세

- 예문의 뉴스위크 기사는 청자 고둥의 치명적인 독에서 프리알트(Prialt)라는 새로운 진통제를 개발한 사례가 실려 있다. 천연 상태의 물질에서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는 경우 '천연물 신약'이라고 부른다. 그냥 '천연물 신약'이라고 옮기던가, '늘어나는 천연물 신약' 정도로 옮길 듯하다.


177. 7 | I think I will get a second opinion. 다른 의사에게 검진 받아 봐야겠어요.

- second opinion 암과 같이 위중한 질환인 경우 다른 의사에게 진단을 확인을 의뢰하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처럼 상급종합병원에 접근성이 좋아 의료 쇼핑이 만연한 나라에서 매우 흔하다. 위에 설명한대로 screening 주로 '검진'이라고 옮긴다. 문장은 "다른 의사에게 다시 진찰[진단] 받아볼게요." 옮기면 좋겠다.


177. 8 | The doctor is conducting a clinical trial of the drug. 의사가 약을 임상 실험 하고 있다.

- clinical trial 식약처 고시나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에 '임상 시험'으로 명시되어 있다. 의약보건 전문지 기자가 '임상 실험'으로 표현한 기사를 보고 혀를 적이 아직도 있다. 통번역 강의 10 경력에 과학 분야를 별도 절로 서술하고 있는 책에서 놓칠 만한 실수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의사가 해당 약의 임상 시험을 수행 중이다." 정도가 적당하다.


177. 10 | Sometimes, a blood donor can be a disease carrier. 헌혈자가 질병 보균자 수가 있다.

헌혈 혈액에서 조사하는 항목은 세균이 아니라 주로 바이러스다. 만성 바이러스 감염자는 보균자가 아니라 보유자로 쓴다. "헌혈자가 유병자일 수도 있다." 또는 carrier 의미를 살려 "헌혈자가 질병을 옮길 수도 있다." 옮기면 좋겠다.


177. 11 | He developed complications. 그가 합병증 일으켰다.

- 합병증을 일으켰다로 쓰면 그가 주체인지 객체인지 헷갈릴 있다. 물론 문맥을 통해 환자임을 쉽게 수도 있다. "그가 합병증이 생겼다." 옮기면 좋겠다.


177. 12 | The persistent use of the pesticide generates more resistant pests. 해충제를 계속 사용하면 해충에게 내성 생긴다.

- pesticide 살충제 또는 농약으로 옮긴다. 해충제는 명백한 오류다.


이처럼 통번역 전문가도 전문 분야 번역은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전문 서적은 전공자가 번역하고 편집자가 다듬는 방식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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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번역자가 관련 전문 지식이 부족해 적절하지 않은 용어와 표현으로 옮긴 경우다. 다른 하나는 번역자와 편집자가 게을러 얼토당토 않게 옮긴 경우다. 전자는 정황 상 이해되기도 하지만 후자는 돈내고 책을 사는 독자를 우롱하는 행위다. 샤론 버치 맥그레인의 'The Theory That Would Not Die'가 '불멸의 이론'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스위스 학회 참석 중에 이 소식을 알고 부랴부랴 주문해 일단 '8장. 질병의 원인을 찾다'부터 원문과 대조해 읽어봤다. 전공자로서 실망을 넘어 분노를 치밀게 하는 번역이 보이길래 블로그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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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쪽. 8장. 질병의 원인을 찾다

- 8장의 원제는 "제롬 콘필드, 폐암, 심장 발작(Jerome Cornfield, Lung Cancer, Heart Attack)"이다. 역자는 1장 원제인 "공기 중의 원인(Causes in the air)"을 "토머스 베이즈, 이론을 탄생시키다"로, 2장 원제인 "모든 것을 이룬 남자(The Man Who Did Everything)"를 "라플라스, 모든 것을 이루었던 남자"로 옮겼다. 콘필드가 베이즈나 라플라스보다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건 분명하지만 관련 전공자 입장에서 매우 아쉽다.


244쪽. 현대적인 개념의 임상실험

- 원문의 modern controlled clinical trial을 번역한 표현이다. 대조라는 단어는 빼더라도 임상시험을 책 전체에서 임상실험으로 옮겨놓은 점은 큰 문제다. 임상시험은 이미 식약처 고시나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에 나와 있는 용어다.


245쪽. 힐과 젊은 의사 한 명 그리고 전염병학자 리처드 돌, 이렇게 세 사람

- 책 번역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진 부분이다. 원문의 Hill and a young physician and epidemiologist, Richard Doll을 위와 같이 옮겼다. 힐과 젊은 의사이자 역학자인 리처드 돌로 옮겨야 한다. 역자는 위대한 역학자 리처드 돌 경(Sir Richard Doll)의 일생에 대해 찾아본 적도 없음이 분명하다. 책 전체에서 epidemiology(-ist)를 역학(자)가 아니라 일관되게 전염병학(자)로 옮겨놓은 부분은 출판사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들게 만들었다.


245쪽. 1918년에 발생했던 인플루엔자 전염병 사례

- 원문은 the influenza epidemic of 1918이다. epidemic도 그냥 전염병으로 옮겼다. '유행' 또는 '대유행'으로 옮긴다. 이 정도는 온라인 영어 사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용어다.


245쪽. 비전염성 질병에 대한 최초의 정교한 비교대조연구법(case-control study)

- 원문은 the first sophisticated case-control study of any noninfectious disease다. infectious disease는 이제 공식적으로 감염성 질병으로 옮긴다는 점은 넘어가자. case-control study는 의학용어집에 '환자-대조군 연구' 또는 '사례 대조 연구'로 명시되어 있다. 비교대조연구법은 도대체 어느 문헌을 참고했는지 알 수가 없다.


246쪽. 콘필드는 1933년에 뉴욕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 원문은 Cornfield had earned a bachelor's degree from New York University in 1933이다. 학사를 석사로 잘못 옮겼다. 졸지에 콘필드 선생이 학력 위조를 한 셈이 됐다. 더욱 문제는 이미 이 장 첫 문단에 "그가 받은 학위라고는 역사학 학사 학위뿐이었다."는 문장이, 마지막에 "1974년, 역사학 학사 학위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던 베이지안 생물통계학자가 미국 통계협회의 회장이 되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같은 장 안에서 학사와 석사라는 표현이 충돌하는 점은 역자와 편집자의 조바심과 게으름을 동시에 보여주는 근거다.


247쪽. 표본 작업만이 실업자 수를 짐작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 표본 작업의 원문은 sampling이다. 주로 (통계적) 표본 추출로 옮긴다.


247쪽. 아프리카계 미국인 서기 한 명

- 원문은 an African American statistical clerk다. 흑인이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쓴 부분은 저자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했다고 읽을 수 있다. statistical clerk는 서기가 아니라 통계 조수다.


248쪽. 국립보건원의 전염병 전문가들은 만성 질병을 상대로 집중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 위에 지적한 대로 역자는 epidemiologist를 예외 없이 전염병 전문가 또는 전염병 학자로 옮겨놓고 있다. 심지어 위의 문장처럼 바로 이어서 만성 질병이 나와도 마찬가지다. 이쯤되면 역자가 전염병과 만성병의 정의를 알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248쪽.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통틀어서 국립보건원이 고용했던 사람들 가운데 통계 전문가가 가장 많을 때라고 해봐야 그 비중은 10~2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 '10~20퍼센트밖에'라는 대목에 놀라 원문을 살폈다. throughout the 1950s and 1960s NIH employed only ten or 20 statisticians at any one time이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50년대와 60년대 어느 시기에도 열명에서 스무명 이상 고용한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정확한 수치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도 미국 국립보건원에 근무하는 통계학자는 전체 인력의 10퍼센트가 넘지 않을 듯하다.


250쪽. 과거지향적인 회고적 연구(retrospective study)

- 바로 앞쪽에서는 retrospective를 모두 과거지향적으로 옮기더니 이쪽에서는 회고적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 전향적 연구(prospective study)가 나오므로 후향적으로 쓰면 된다. 옮길 때 의학용어집을 참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를 옮긴 이한음 씨는 retrospective를 역행적, prospective를 순행적이라고 창의적으로(!) 옮겼다.


251쪽. 메이오클리닉의 조셉 버크슨

- Mayo Clinic은 메이요 병원으로 옮긴다.


253쪽. 나이가 들면서 이 유전적 요인은 점점 약해져 담배를 많이 끊게 될 것이다.

- 피셔가 말한 대로 폐암의 원인이 흡연이 아니라 유전이라면 당연히 일어나야 할 상황을 콘필드가 가정해서 설명한 대목 중 한 문장이다. 유전적 요인이 약해져 담배를 많이 끊는다가 무슨 뜻일까? 원문은 Fisher's genetic factor would have to ... ; weaken with age after a smoker quit; 이다. 흡연자가 담배를 끊은 다음 나이가 들수록 유전적 요인은 약해질 것이다 정도가 좋겠다.


253쪽. 끊임없이 수정되던 가설이 이제 더이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없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 하나도 즐거운 내용이 아닌데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가 무슨 뜻일까 읽다가 궁금해졌다. 원문은 when a continuously modified hypothesis becomes difficult to entertain seriously다. 가설이 계속 수정되면 더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정도로 해석된다. 옮겨놓고 맥락이 이상하면 사전을 뒤져 entertain이라는 동사에 '받아들이다'는 뜻이 있음을 확인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253쪽. 1964년에 미국 공중위생국은 "흡연은 폐암과 인과적인 관련이 있다."고 발표...

- 흡연과 건강에 관한 연구에서 역사적 위치를 차지하는 1964년 미국 공중보건총감(US Surgeon General) 보고서를 인용한 대목이다. 원문은 "남성에서 흡연은 폐암과 인과적 관련이 있다"로 나와 있다.


254쪽. 콘필드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고 곧 웃으면서 말했다. "크리스, 나도 그걸 곧 받게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위원회 동료 위원이 표본 크기를 질의하는 편지를 받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의 내용이다. 유머러스한 콘필드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인데 전혀 우습지가 않다. 원문은 There was a pause, and Cornfield grinned and said, "Christ, I hope so."다. 왜 답이 없냐는 성가신 핀잔을 받고 잠시 침묵하다가 웃으며 "세상에, 나도 곧 받길 바랍니다."로 퉁치며 넘어간 일화다. 졸지에 질문자 이름이 크리스가 됐다.


255쪽. 비누에 이 함수의 그래프를 그려서 시각화하기도 했다.

- 그래프를 그릴거면 칠판이나 종이에 그리지 굳이 비누에 그릴 이유가 없다. 원문에 쓰인 단어는 carving이다. 막대 비누를 깎아 까다로운 분포 함수를 시각화했다는 뜻이다.


255쪽. 살크 소아마비 백신

-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사람은 조너스 소크(Jonas Salk)다. 그의 이름을 딴 '소크 연구소'가 캘리포니아 주 라호야에 있다.


258쪽. 저혈압과 저콜레스테롤이라는 조건의 사람들에 비해서 심장병에 거릴 위험은 23퍼센트밖에 높지 않았다.

- '거릴'은 '걸릴'의 오타다. 23% more at risk라는 표현에 '밖에'라는 뜻은 없다. 23퍼센트나 높았다가 맞다.


258쪽. 복합 로지스틱 위험함수

- multiple logistic risk function은 다중 로지스틱 위험 함수로 옮긴다.


259쪽. "만일 피셔가 말했던 유의수준의 유지가 잠정적인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 유의수준이 잘못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피셔와 평생 논쟁했던 콘필드의 육성을 인용한 대목이라 집중해서 읽었는데 번역 문장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원문은 이렇다. "If maintenance of [Fisher's] significance level interferes with the release of interim results, all I can say is so much the worse for the significance level."이다. 대략 옮기면 "[피셔의] 유의 수준을 유지하느라 중간 결과를 발표하기 어렵다면, 나는 그럴수록 유의 수준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가 된다. 피셔, 네이만, 콘필드가 벌인 가설 검정 논쟁 역사를 잘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260쪽. 주류 통계학 잡지

- mainstream statistics journals를 이렇게 옮겼다. 권위 있는 통계학 학술지 정도로 옮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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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13장 대통령이 될 사람은 누구인가부터 등장하는 현대 통계학의 천재 중 한 명이자 살즈버그가 "통계학의 피카소"로 묘사했던 존 튜키(John Tukey)를 일관되게 '터키'로 표기한 부분이 매우 거슬렸다. 링크한 위키백과만 찾아보더라도 발음 기호가 분명하게 나와 있다.


통계학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 19세기까지는 스티글러의 "통계학의 역사", 20세기는 살즈버그의 "통계학의 피카소는 누구인가", 그리고 베이지언 통계학의 역사를 서술한 이 책 "불멸의 이론"을 추천할 수 있게 됐다. 조재근 교수님이 번역한 "통계학의 역사"를 제외하고 다른 두 권은 원저의 가치를 매우 깎아먹는 번역이 답답하고 아쉽다. 단언컨대, 학문의 위기는 번역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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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역학자 존 스노 


황승식(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사회의학교실)


지난 315일은 존 스노(John Snow)라는 평범한 이름의 의사가 태어난 지 200주년 기념일이었다. 스노는 19세기 빅토리아 시기 영국의 다른 의료계 명망가와 달리 요크셔 노동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스노는 런던 대학에서 의학사 및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외과의사로 개업해 성공했지만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실력으로 더욱 유명했다. 1853년 봄에는 여덟째 아이를 출산한 빅토리아 여왕의 클로로포름 마취를 담당해 최고의 명의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스노는 마취와 관련된 업적만으로도 의학의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지적 탐색 능력이 최고로 발휘되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야는 역학과 공중보건학이었다. 1840년대 말 영국은 콜레라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는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각종 이론이 난무했다. 콜레라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감기처럼 매개체가 있을 것이라는 감염론과 비위생적인 공간에 가득찬 독기(miasma) 때문이라는 독기론이 맞섰다. 에드윈 채드윅이나 윌리엄 파와 같은 공중보건 전문가조차 미신과도 같은 독기론을 지지했다.

 

스노는 1848년 콜레라 자료에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고 정체 모를 매개체를 통해 옮는다고 생각했다. 콜레라에 감염된 환자의 배설물에 직접 접촉하거나 배설물에 오염된 물을 마셔 생긴다고 믿었다. 감염론을 입증하기 위해 스노는 콜레라가 발생한 빈민촌을 꼼꼼히 조사해 증거를 모았고 런던에 식수를 제공하는 회사의 자료를 모았다. 두 자료를 취합해 스노는 특정 상수회사의 상수도가 오염돼 콜레라 발생이 높다는 가설을 세우고 콜레라가 유행한 브로드가의 펌프를 제거하여 사망자를 줄이는 역사적 성공을 거뒀다.

 

역학은 개별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의학과 달리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 방법을 찾는 의학의 한 분야다. 스노의 업적은 현대적 의미의 역학 조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모범 사례다. 콜레라 대규모 유행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감염 경로와 원인을 밝혀 콜레라 감염에 대한 새로운 이론과 분석 기법을 창안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콜레라 감염의 원인균인 비브리오 콜레라 박테리아는 스노가 뇌졸중으로 사망한 지 25년이 지난 1883년에서야 독일의 병리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확인했다는 점이다.

 

150년 전 런던이 직면했던 상황처럼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도시 빈민가도 여전히 많다. 안전한 마실 물이 없는 인구가 11억 명이 넘고, 상하수도와 같은 공중 위생 서비스를 못 받는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30억 명이다. 콜레라와 같은 감염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만 해도 매년 200만 명이다. 새로운 지적 탐색에 열정적이었던 스노가 오래 살았다면 콜레라가 아닌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스노의 업적으로 공중 위생 운동은 전기를 맞았다. 생전 스노의 감염론을 격하게 반대했던 채드윅의 공중 위생 개선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스노의 업적 이후 한층 강화된 제도로 안착했다.

 

21세기 세계의 거대 도시는 19세기 런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중 위생 상태가 개선됐다. 감염병학과 쓰레기 관리 기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관련 전문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스노가 브로드 가를 집집마다 확인하여 작성한 지도를 지금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컴퓨터 화면에 지도로 그려낼 수도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인플루엔자 발생에 대한 보고서를 매주 업데이트하고 다양한 도표와 지도로 제공하고 있다. 구글이 개발한 플루 트렌드는 전세계 구글 이용자들의 검색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하여 인플루엔자 확산 현황과 예측 정보를 만들고 있다.

 

1936년 브로드윅 가로 이름이 바뀐 브로드 가에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는 건물이 하나 있다. 스노가 제거하여 온 동네 주민을 콜레라로부터 구한 펌프로부터 십여 미터 떨어진 케임브리지 가 모퉁이에 있는 술집이 바로 그 건물이다. 전 세계에서 역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를 맞이하고 있는 이 술집의 이름은 존 스노 펍이다.


(새얼뉴스레터 2013년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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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즐기는 의학 연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황승식(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사회의학교실)

 

권위 있는 의학 저널인 영국의사협회지(BMJ)’는 매년 이 무렵 크리스마스 특집 호를 발간한다. 2011년에는 팝스타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27세를 일기로 요절하자 ‘27세 클럽은 실재하는가?’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연구 결과가 실렸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의대와 호주 퀸즐랜드 공대 연구진은 유명 뮤지션이 27세에 사망할 위험이 높은지를 통계적으로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연령에 따른 생존 분석을 수행하여 일차적으로 뮤지션 내에서, 이차적으로 일반 영국 인구집단과 비교하였다. 연구 대상은 1956년부터 2007년까지 영국에서 한 장이라도 음반을 발매한 1046명을 포함하여 분석했고, 이 중 71(7%)이 사망하였다.

 

정교한 통계적 기법을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 522명의 뮤지션 중 27세에 사망한 사례로 확인된 뮤지션은 세 명으로 사망률은 100 명 당 0.57명이었다. 이는 25세나 32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유명 뮤지션의 경우 일반 영국 인구집단에 비해 20대와 30대에서 사망 위험이 두 세 배나 높음을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27세 클럽이 실제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라 전설에 가깝지만 명성이 뮤지션의 사망 위험을 높일 수 있고 27세라는 연령에 제한되지도 않음을 밝혔다.


올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러 편의 재밌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이 중 개의 우월한 후각 신경을 이용하여 대변과 환자에서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 균을 확인한 연구는 제목만 읽어도 웃음이 터진다네덜란드 자유 대학 연구진은 대형 교육 병원 두 곳에서 환자-대조군 설계를 적용하여 개가 장염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 균을 환자와 대변에서 식별해낼 수 있는지 확인했다. 균의 냄새를 식별하도록 훈련된 두 살 먹은 비글을 이용하여 30명의 환자와 270명의 대조군에 대해 식별 여부를 시험했다.

 

환자의 감염 상태를 알 수 없는 조련사가 개를 이끌어 실험 대상자에게 데려 갔고 개가 균을 탐지하면 앉거나 눕도록 훈련시켰다. 놀랍게도 개가 균을 식별하는 민감도와 특이도는 대변에서 100%였으며, 30명의 환자에서는 25명을 식별하였고(민감도 83%), 270명의 대조군에서는 265명을 식별하였다(특이도 98%). 결론적으로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 균을 탐지하도록 훈련된 개는 균에 감염된 환자와 대변 모두 잘 식별해낸다고 보고하고 잇다.

 

노벨상을 패러디하여 만들어진 이그 노벨상이 있다. 1991년 미국의 유머과학잡지인 기발한 연구 연감에 의해 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흉내낼 수 없거나 흉내내면 안 되는”(that cannot, or should not, be reproduced) 업적에 수여되며, 매년 가을 진짜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1~2주 전에 하버드 대학의 샌더스 극장에서 시상식을 가진다. 진짜 노벨상 수상자들도 다수 참석하여 시상에 참여하며, 논문 심사와 시상을 맡고 있다.

 

시상 부문은 유동적이나 대체적으로 노벨상의 여섯 부문(물리학 · 화학 · 의학 · 문학 · 평화 · 경제학)에 생물학상이 추가된 7개 부문이 거의 고정적이며, 보통은 실제 논문으로 발표된 과학적인 업적 가운데 재밌거나 엉뚱한 점이 있는 것에 상을 준다. 올해 신경과학상은 기능성자기공명장치(fMRI)와 관련된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크레이그 베닛 연구팀은 뇌 속 혈류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fMRI를 죽은 연어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죽은 연어의 촬영 결과에서도 뇌가 활성화됐을 때 나타나는 데이터들이 발견됐다. 당연히 거짓 양성 반응이다. 이 연구는 MRI 등 뇌 촬영 결과를 무조건 믿는 경향에 경종을 울리는 결과다.

 

일상이 팍팍할수록 웃음이 부족해진다. 한국의 중년 남성은 유머가 부족하기로는 최악의 집단이다. 영국의사협회지 크리스마스 특집과 이그노벨상 수상작을 보면 연구를 심각하지 않게 즐기는 방법을 일러준다.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나라보다 이그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나라가 연구를 즐기는 진정한 과학 강국이라는 농담은 그저 농담이 아니다.


(새얼뉴스레터 2012년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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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원제: Calculated Risks)』의 계산되지 않은 번역



게르트 기거렌처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계산된 번역이 아니었다. 번역 초고를 받아 감수를 시작한 시점은 한참 전이었다. 저자는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의료 분야 위험 소통의 대가답게 실제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용어와 표현을 다듬다 보니 감수로 무임 승차하려던 계획이 어긋나고 공동 번역이라는 골치 아픈 계획으로 바뀌었다. 무리한 결정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물론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계산맹의 특징으로 확실성에 대한 환상, 위험에 대한 무지, 잘못된 위험 소통, 흐릿한 사고를 들고 있다. 많은 의료인이 보여주는 모습으로 현행 의학 교육에서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다. 물리학과 생물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과학에는 통계적 사고가 혁명적으로 확산됐지만 모든 의사에게 이르고 있지는 않다. 의사의 통계맹은 주로 환경의 문제로 의사 개인의 문제로 환원될 수는 없다. 심지어 저자는 최근 발간된 다른 책에는 의사가 통계맹으로부터 개안되면 환자와 의사의 위험 소통이 원활해질 뿐 아니라 민주주의 기능 강화에도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얼마 전 유명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자신이 유방암과 난소암 위험 유전자를 갖고 있으므로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뉴욕 타임스 지면에 공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많은 언론이 이 사실을 앞다퉈 소개했지만 정작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을 경우 얼마나 위험이 감소하는지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자는 ‘5장. 유방암 검진’에서 유방촬영술 양성 결과가 나왔을 때 실제로 유방암이 있을 확률을 계산하느라 애먹는 다양한 의사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베이즈 정리와 자연 빈도를 이용해 각각 확률을 계산하는 과정, 유방촬영술과 예방적 유방절제술의 비용과 이익을 비교 위험도 감소/절대 위험도 감소/치료 필요 환자수로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의료인이나 예비 의료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출판사에 넘긴 최종 번역 원고에는 저자의 불확실한 기억에 대한 수정,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데이터 소개, 어색한 표현에 대한 설명을 옮긴이 주로 달았다. 전문 분야의 독자가 아닌 이상 본문에 달린 옮긴이 주는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는 편집자의 의견을 고심 끝에 받아들여 모두 덜어냈다. 활자로 인쇄되지 못한 옮긴이 주는 출판사 카페( http://cafe.naver.com/sallimbooks/23781 )에서 확인할 수 있으므로 관심 있는 독자의 방문을 환영한다. 터무니없는 오역과 비문을 없애기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전혀 없다고 말할 허풍은 내 유전자에 없다. 눈 밝은 독자가 찾아내서 홈페이지나 역자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알려주기를 기대한다. 계획에 없던 공동 번역을 흔쾌히 수락해 준 전현우 씨와 읽기 쉽게 만들어준 살림출판사 편집자 이주희 씨께 마지막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13년 7월 황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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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소설 읽기로 서늘한 여름 나기


황승식(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사회의학교실)


오늘도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마른 장마의 영향이겠지만, 지난 6월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웠다는 제목의 뉴스가 포털 사이트 대문을 차지하고 있다. 장마가 안 끝났으니 휴가를 떠나긴 이르다. 감염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읽으면서 등골이 서늘한 기분을 느끼면 더위도 물리치고 냉방비 전기값을 아낄 수도 있다.


편혜영 작가의 2010년 작 『재와 빨강』은 방역 전문가가 쥐를 매개로 한 감염병이 유행하는 C국에 파견되고 난 후 겪게 되는 아수라장을 소설로 그려냈다. 주인공은 전처의 사망 소식을 듣고 숙소인 아파트먼트 4층에서 뛰어내려 지상의 공원과 쓰레기 소각장으로, 맨홀 아래 하수도로 하강해간다. 부랑자로 추락했다 쥐를 잡는 기술이 밝혀져 방역원으로 차출당한 주인공은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도 하며 C국에서 지내게 된다. 소설의 대단원에서 마침내 감염병은 사라지고 일상을 되찾지만 주인공은 잠복한 바이러스처럼 모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C국에서 방역원 역할에 충실하며 지내게 된다.


『재와 빨강』에서 감염병이 유행하는 C국은 소설의 배경에 불과하다. 제3국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공중보건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보건당국은 안일하기 짝이 없다. 소설에 묘사된 문장만으로는 바이러스 매개체가 쥐인지도 불분명하다. 공항 검역관의 설명을 보면 소설이 발표될 무렵 유행했던 신종 플루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듯하다. 쥐를 매개체로 한 감염병이 소재고, 주인공이 쥐를 잡는 방역원인 소설이 많이 팔릴 까닭이 없다. 소설이 발매되고 작가가 필화를 겪었다는 소식을 못 들었으니, 적어도 ‘그분(과 충성심 강한 부하들)’은 안 읽으셨을 듯하다.


한상운 작가의 2012년 작 『인플루엔자』는 좀비를 모티프로 한 세기말 판타지다. 소설의 배경은 강남 한복판의 특급호텔, 정확히는 8차선 대로가 내려다보이고 사방이 고층빌딩들로 에워싸인 호텔의 옥상이다. 그곳에 수도권 영공방어를 위한 대공포진지가 설치되어 있고, 21세 청년 제훈은 여기서 다른 11명의 부대원들과 함께 군복무중이다. 제훈은 여자친구가 보낸 이별 편지에 탈영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차이나플루 때문에 몇 달째 휴가 외박은 전면 중지된 상태. 곧이어 차이나플루 백신의 부작용으로 '좀비증후군'이 발병하고, 도시는 삽시간에 핏빛 지옥으로 변한다. 제훈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지만 좀비는 숫자가 늘어나 점점 파국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인플루엔자』 역시 감염병은 배경 소재일 뿐이다. 차이나플루 백신의 부작용이 어떻게 좀비증후군을 발병시키는지 설명은 가물가물하다. 뉴스 형식을 빈 설명에 따르면 뉴욕에서 최초로 발생한 좀비는 백신 접종 후 토혈 후 ‘발광’을 일으켰다고 하며 보건 당국은 변종의 내성 바이러스 출현을 의심했다고 한다. 소설에서 좀비증후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질병연구소 소장’의 입을 빌어 설명되지만, 내용은 국제적인 명성과는 거리가 먼 평이한 수준이다. 합병증, 후유증, 감염병, 전염병이 혼용되고 있다. 『인플루엔자』는 서울 강남을 무대로 한 차이나플루 백신의 부작용으로 좀비가 활개치는 1인칭 슈팅 게임(First-Person Shooter, FPS) 시나리오에 어울린다.


정유정 작가의 2013년 작 『28』은 수도권 북쪽 가상 도시 화양에서 대유행한 인수공통감염병 사건을 소재로 한다. ‘빨간 눈 괴질’로 불리는 원인불명 감염병은 인간과 개 사이에 전염되며 치명률이 100%에 가깝다는 점에서 광견병이나 이볼라와 비교된다. 작가는 28일 동안 감염병이 휩쓸고 간 도시를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유기견을 돌보는 수의사,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 재난 속에서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 감염병 환자를 돌보는 응급실 간호사, 그리고 개(!)의 시선이 교차하며 작가는 모든 주인공을 형언하기 힘든 극한 상황까지 내몰며 독자를 긴장케 한다.


『28』에 묘사된 화양은 여러 모로 1980년 광주를 연상케 한다. 감염병이 확산되자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신속하게 화양을 봉쇄하기 위해 특전사 병력을 동원해 포위한다. 빠져나가려는 시민은 사살된다. 봉쇄 직후 풀렸던 언론과 인터넷은 곧바로 끊긴다. 감염병 희생자는 병원 수용이 어려워 체육관으로 옮겨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영안실이 된다. 전문가의 감수를 받았다지만 개를 통한 인수공통감염병의 감염 경로는 소설 속에 분명하지 않다. 사실 인수공통감염병인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데 중요하진 않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가는 초고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대해 상당 분량 집필했다가 덜어냈다고 한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심각한 공중보건응급상황에서 주무 당국인 질병관리본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작가가 중환자실 간호사로 5년을 지낸 내공으로 질병과 환자에 대한 묘사는 어떤 작품보다 생생하다.


책을 세 권이나 사기 어려운 형편이라면 『28』을 추천한다. (세 권 중 책값은 가장 비싸다.) 책 띠지는 손이나 베는 흉물이지만 『28』의 띠지는 버리면 안된다. 스마트폰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기 전에 책 띠지의 QR 코드를 반드시 찍어보기 바란다. 북사운드트랙을 제작한걸 보면 이미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 판권 계약도 끝났을 지도 모르겠다. 하필 『28』을 읽기 직전에 후쿠시마 현 미나미소마 시립 병원에 동일본 대지진 후 떠돌이가 된 개에 물린 환자가 증가했다는 논문을 읽었더니 소설 속 상황에 기시감까지 드는 무덥고 서늘한 오후다.


(새얼뉴스레터 2013년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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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국제 통계학의 해'( The International Year of Statistics 2013: http://www.statistics2013.org/ )로 관련 학회에서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에 있다. 올해를 기념하는 이유가 분명치는 않은데 아마도 베르누이의 '추측술'이 1713년에 나왔고(300주년), 베이즈의 논문이 1763년에 나왔기(250주년)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편 '역학(Epidemiology)' 최신 호에는 알프레도 모라비아 선생이 쓴 '역학 350주년: 1662-2012'라는 권두 해설이 실렸다. [링크] 2012년도 아니고 2013년에 350주년을 기념하는 해설이 실린다는 사실이 의아한데, 1662년을 기점으로 삼은 이유는 존 그론트(John Graunt)가 "사망표에 따른 자연적 및 정치적 발견(Natural and Political Observations Made Upon the Bills of Mortality)"을 발표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혀두었다.

예방의학/공중보건 전공자라면 모라비아 선생의 권두 해설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존 그론트의 업적에 대해 케네스 로스먼 옹도 높이 평가하여 '역학 입문(Epidemiology: An Introduction)' 2판 '2장 역학과 공중 보건의 선구자'에서 두 쪽에 걸쳐 상세하게 업적을 요약 설명하고 있다. [링크] 한국어로 풀어 쓴 설명은 <역학의 원리와 응용> (안윤옥 등, 2005년, 서울대학교 출판부) 4~5쪽에 나와 있는 내용이 거의 유일하므로 기억을 위해 아래 옮겨둔다. [링크]


2) 인구동태를 집합적 및 계량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의 발전

역학의 방법론에 해당한다. 17세기에 일어난 과학혁명은 물리적 세계를 수리적으로 일반화하여 기술, 표현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예측이 가능한 사례가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생물학적 세계에서도 사망의 규칙(laws of mortality), 집단 발병의 규칙(laws of epidemics)과 같은 법칙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첫번째 업적을 낸 사람이 영국의 그론트(John Graunt)이다. 그는 영국의 왕립런던학회의 창립회원인 페티(William Petty)의 친구이며 학회의 재정적 후원자이기도 하였는데, 1662년 'Natural and Political Observations Mentioned in a Following Index and Made Upon the Bills of Mortality'를 발표하여 인간집단의 사망과 출생양상을 비교하는 최초의 업적을 남겼다.

영국에서는 1603년부터 기독교 교구별로 사망과 출생을 파악하는 제도(bills of mortality)가 시행되었는데, 그론트는 1603년부터 1658년까지의 55년 동안 런던과 햄프셔교구의 사망 서류를 수집하여 이를 종합, 집계하였으며, 여기서 인구집단의 사망 및 출생양상에 어떤 일반성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예를 들면 남성이 여성보다 출생과 사망이 많다는 점, 영아기의 사망이 다른 연령군보다 높다는 것, 사망에 계절적 변동이 있다는 점, 도시-농촌 간에도 사망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점, 그리고 페스트 유행에 의한 인명피해를 수량화한 점 등이다. 또한 그는 수집한 자료로서 최초로 생명표와 유사한 것을 만들어 소위 사망의 규칙(law of mortality)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의 업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하나는 생물체의 생명현상에도 일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는데 그 이전까지의 통념은 무생물의 물리적 내지는 화학적 현상에만 어떤 원리나 일반성이 있고 생물체의 생명현상은 개개가 모두 고유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였다. 다른 하나는 개개의 생명현상을 집단적으로 관찰하고 이를 계량화하여 정리, 분석하면 일정한 규칙성이나 일반성의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하략)


참고로 로스먼 선생의 '역학 입문' 2장 역학과 공중보건의 선구자에 언급된 인물은 다음과 같다. 히포크라테스(~460-360 BC), 이븐 시나(980-1037), 프라카스토로(1478-1553), 존 그론트(1620-1674), 베르나르디노 라마치니(1633-1714), 윌리엄 파(1807-1883), 존 스노(1813-1858), 이그너스 솀멜베이시(1818-1865), 플로런스 나이팅게일(1820-1910), 자넷 레인-클레이펀(1877-1967), 웨이드 햄튼 프로스트(1880-1938)를 독립된 절로 다뤘고 기타로 윌리엄 버드, 에드워드 골드버거, 메이저 그린우드, 에드워드 제너, 제임스 린드, 피에르 루이스, 피터 파눔, 제프리 로즈, 에드거 시덴스트리커, 오스틴 브래드포드-힐, 리처드 돌, 브라이언 맥마흔, 에이브러험 릴리엔펠드, 존 카셀의 이름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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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Yau

중얼 연습 2013. 2. 19. 16:36 |

Significance 저널 최신 호 '통계학의 삶' 섹션에 Nathan Yau가 소개됐다. [링크] Yau는 flowingdata.com 블로그의 운영자이자 Visualize This ('비주얼라이즈 디스'라는 제목으로 역서가 나왔다. [링크])의 저자이다. 기사의 첫 문장은 "Nathan Yau는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박사과정 학생 중 한 명임에 틀림없다."로 시작한다. 그나저나 Yau가 아직 학생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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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 기거렌처와 뮈어 그레이가 편집한 책 '더 나은 의사, 더 나은 환자, 더 나은 결정: 2020년 보건의료에 대한 상상'을 막 입수했다. 24~26쪽에 '의사들의 통계맹(Doctor's Statistical Illiteracy)를 다루고 있는데 <계산된 위험>에서 나온 예제가 재수록됐다. 말미에 있는 '통계맹 의사로부터 환자를 보호하는 행동 선언'만 발번역으로 옮겨봤다.

통계맹 의사로부터 환자를 보호하는 행동 선언

Manifesto for Action to Protect Patients from Statistically Illiterate Doctors


1. 의과대학은 학생들에게 근거 기반 술기에 더불어 투명한 의사 소통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의사와 환자 모두 불투명한 보건 통계로 인해 오도된 상황이라면 근거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베를린의 차리테(Charite, 훔볼트 대학과 베를린 자유대학의 의과대학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대학 병원 중 한 곳이다. 옮긴이 주)는 현재 모든 의과대학생에게 근거 기반 의학뿐 아니라 투명한 의사 소통 과정을 도입 중이다. 투명성 프로그램의 개요는 기거렌처(Gigerenzer 2002)와 기거렌처 등(Gigerenzer et al 2007)에 따랐다.


Gigerenzer (2002) Calculated Risk: How to Know When Numbers Deceive You. <계산된 위험> (전현우, 황승식 역)으로 곧 역서가 나올 예정이다.

Gigerenzer, G, W. Gaissmaier, E. Kurz-Milcke, L. M. Schwartz, and S. Woloshin (2007) Helping doctors and patients make sense of health statistics. Psychol Sci Publ Interest 8:53-96 [링크]


2. 의학 교육과 면허 갱신 프로그램을 지속하여 운영할 책임이 있는 기관은 현업에 있는 의사가 의과대학생과 마찬가지로 투명한 위험 소통 교육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환자는 선택의 범위, 계량화된 이득과 위험, 의사로부터 투명한 답을 얻는 요구와 같은 질문을 던질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는 환자가 자신의 아이의 성장에 대해 학교 교사에게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환자가 첫번째 장소에서 자원이 제공된다면 충분한 자원이 될 수도 있다(Gray 2002). 이는 환자에게 혜택이 될뿐만 아니라 임상의사의 행동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의 위험을 줄여준다. 환자의 세기에, 환자는 권리와 함께 책임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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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사협회지>에 '유전체학과 보건의료 불평등: 통계적 차별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의견이 온라인으로 먼저 발표됐다. 주로 사회적으로 결정되고 자기 보고로 구분된 용어인 인종과 민족에 따른 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해 유전적 원인을 식별해야 한다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마지막 두 문단이 요즘 고민과 맞닿아 있어서 발번역으로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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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유전체학은 3가지 경로로 인구집단 근거를 개별 환자에 해석하는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첫째, 유전적으로 맞춤형 치료의 개발로 개별 환자에서 특정 유전자 변화 검사 결과를 치료 결정과 연결시켜, 치료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게 된다. 둘째, 약물유전체학은 대사 효소에서 변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약물 반응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우울증의 약물 요법 결정이 어려운 까닭은 어떤 환자가 약물로 이득을 볼 수 있을지 식별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으로 우울증 치료에서 집단별로는 약물 효과가 비슷하지만 인종과 민족에 따른 불평등을 일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반응과 유전자 변이가 연계되어 있다는 근거가 증가하여 약물요법을 받아야만 하는 환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결과적으로 줄이게 될 것이다. 셋째, 유전체 정보는 기대 이득의 크기를 포함하여 위험 예측에 유용하다. 예를 들어, 림프절을 침범하지 않은 유방암 환자에서 보조 항암화학요법의 결정은 절대적 이득은 적고 부작용의 위험이 있으므로 어렵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소수자 환자 간에 이득이 비슷함에도 인종적 불평등이 있다고 잘 알려져 있다. 림프절을 침범하지 않고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인 유방암 여성에서 재발 위험과 유방암 유전자 발현 프로파일의 상관성이 있으므로 유전자 검사로 보조 항암화학요법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도록 안내하게 된다. 유전자 발현 프로파일로 보조 항암화학요법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환자의 불확실성을 줄여서, 치료 결정에 영향을 주는 통계적 차별의 기회 역시 감소하게 된다.

지난 십 년 간, 유전체학과 불평등의 관련성이라는 주제는 국가적 연구 노력이 들었다. 인종과 민족간 유전적 변이가 널리 설명됐지만, 인종 불평등을 설명하는데 유전체학을 활용하도록 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접근이 인종 문제 바깥에 집중하여 나올 수 있다. 유전체학의 발전은 고정 관념과 편견이 개입되어 특히 불확실성이 높아 통계적 차별이 있는 상황에서 임상 의사 결정을 향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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