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1일 자 경향신문 [미래 오디세이]에는 '2065년, 미래 도시의 폭염 극복'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써보냈다. 소설 <듄>에 나오는 프레멘 족의 복장으로 도입부를 시작했는데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듄> 시리즈가 개봉하기 한참 전이라 별 반응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미래오디세이] 2065년, 미래 도시의 폭염 극복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1965년 SF 작가 프랭크 허버트가 창조한 <듄>이라는 소설에는 모래 행성 아라키스에 살고 있는 프레멘이라는 종족이 등장한다. 북아프리카 사막 지역에 사는 베두인 종족을 모티프로 창조한 프레멘은 스틸슈트라는 특수복을 입고 아라키스의 혹독한 조건에 적응한다. 스틸슈트는 고효율 필터와 열교환 필라멘트를 여러 겹으로 쌓고, 체내에서 배출되는 땀, 소변, 침, 피와 같은 모든 종류의 수분을 모아 깨끗한 물로 정수해 재활용하는 옷이다. 영화판 <듄>을 촬영할 당시 스틸슈트를 입은 배우들은 아무 기능이 없는 고무옷을 입고 촬영하느라 고온의 사막에서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서울 기온이 39도까지 올라 111년 관측 사상 가장 높아 역대 최악의 폭염이 현실화됐다. 이미 열흘 넘게 열대야가 지속되고, 습도가 높고 자외선도 강해 더위체감지수 역시 ‘매우 위험’ 수준까지 올라갔다. 전문가들은 올해가 폭염이 가장 심했던 1994년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비록 올해 7월의 일평균 최고기온이 32.1도로 1994년보다 약 0.5도 낮지만 1994년과 달리 7월 말과 8월에 접어드는 시기에도 폭염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려가 크다. 선풍기와 에어컨 바람으로도 폭염을 물리치기 힘든 데다 계절이 바뀌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혹한이 찾아오면 프레멘이 장착한 스틸슈트 한 벌로 기후변화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4년 폭염으로 서울에서만 약 890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고, 전국적으로는 4000명이 넘게 사망했다. 당시만 해도 폭염의 건강 영향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폭염에 대응하는 보건당국의 조치도 거의 없었던 관계로 폭염이라는 재난에 무방비로 당한 셈이었다. 올해 폭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가 과연 1994년만큼 규모가 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8월까지 폭염이 지속된다면 폭염에 취약한 노인 인구가 당시보다 증가했으므로 피해 규모가 1994년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반면 장마가 끝난 직후부터 폭염 예보가 발효됐고, 폭염에 대비한 국민행동요령도 확산됐으며, 무엇보다 이미 80%를 넘어선 에어컨 보급률을 감안하면 당시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세대 효과를 감안하면 1994년의 노인과 2018년의 노인이 같은 건강 상태의 노인이 아니므로 폭염이 노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사람의 비율은 당시보다 낮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매년 여름 한반도에 다가오는 태풍이라는 기상 재난에도 이전과 달리 사망자와 부상자가 줄어든 데는 예보의 발전과 대비 태세의 확립이라는 요인이 크다.

환경 정의의 관점에서 폭염 환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를 줄이는 일이 시급하다. 7월30일 현재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27명으로 이 중 30~40대 사망자는 6명이지만 4명이 실외 작업 도중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폭염 시 국민행동요령에 따르면 실외 작업장에서는 폭염안전수칙(물, 그늘, 휴식)을 항상 준수하고, 특히 취약시간(오후 2~5시)에는 ‘무더위 휴식시간제’를 적극 시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지침에는 ‘폭염주의보(33도) 발령 시 시간당 10분씩, 폭염경보(35도) 발령 시 15분씩 휴식’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지침은 습도가 높은 한국 여름 기상 특성을 무시하고 단순 기온을 기준으로 제안하고 있는 데다, 휴식을 제공하라는 기준 기온이 높아 온열 질환 예방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일용 노동자인 실외 작업 노동자에게 임금을 보장하지 않고 폭염 작업을 중단하라는 권고는 비현실적이다. 폭염이라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유급 휴가를 인정하는 조치를 고용노동부는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건당 수수료 체제로 일하는 택배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폭염 시 배달 제한과 요금 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관급 공사인 경우 폭염 기간 노동시간 단축을 감안해 공사 기간 연장을 승인하고, 민간 공사에도 적용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2065년 미래 도시는 도시의 팽창을 제한하고 도시 확장을 사회 인프라 개발과 발맞추기 위해 엄격히 도시화를 통제할 것이다. 사유보다는 공유 개념이 더 중요해지고 거대 도시보다 중간 규모 도시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재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도 제조업 공장 수준의 자동화가 진행되어 폭염을 걱정하지 않고 공사 기일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부득이하게 폭염에도 일해야 되는 노동자는 스틸슈트 수준의 작업복을 착용하고 근무하게 될 것이다. 24시간 사회를 탈피해 업무량이 줄어들고 꼭 필요한 배송은 드론과 같은 무인배송이 대체할 것이다.

사람이 사는 거주 지역과 사람이 살지 않는 비거주 지역으로 국토를 분류하여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인구가 줄어든 지역에 사람들이 각자 흩어져 사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이런 지역에 사는 사람은 행정뿐만 아니라 의료와 같은 민간 서비스를 받기도 어렵다. 거주 지역은 사회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행정 및 민간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해 밀도를 높이고, 비거주 지역은 대규모 농장으로 개발하거나 자연 녹지로 확보해야 한다.

비거주 지역에서 거주 지역으로 이동하는 21세기 인클로저 운동이 성공하면 걷고 싶은 분위기의 거리가 만들어지고 소비가 늘어나며 건강에도 도움이 되어 의료비가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어발식 개발이 아닌 전략적인 국토 이용 계획과 관련 법률 정비가 필수적이다. 비거주 지역을 명확히 만든 미래 도시에서 폭염의 건강 피해는 매년 0명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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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7일 자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에는 '21세기 남성들의 생존법'이라는 제목의 도발적인 내용의 칼럼을 써보냈다. 칼럼이 나가고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칭 선배라는 양반이 맞춤법도 맞지 않는 문장으로 욕설이 담긴 메일을 보내 혀를 찼던 기억이 난다.

[미래오디세이] 21세기 남성들의 생존법

황승식(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가와이 마사시 다이쇼대학 객원교수는 2017년 발간한 <미래 연표>에서 현재 일본이 마주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인 출생아 수의 감소, 고령자의 급증, 사회의 노동력 부족, 그리고 이 세 가지가 서로 얽혀서 발생하는 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에 ‘고요한 재난’이라고 이름 붙였다. 2016년 일본의 연간 출생아 수는 97만6979명에 그쳐 역대 최초로 100만명 이하로 떨어졌고, 1949년 269만6638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3분의 1로 뚝 떨어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출생아 수의 감소 추세가 계속되어 2065년에는 55만7000명, 2115년에는 31만8000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고도 경제 성장을 일군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2017년 한국의 연간 출생아 수는 35만7700명으로 전년보다 4만8500명(11.9%) 감소했고, 출생아 수가 4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보여주는 합계출산율도 전년(1.17명)보다 0.12명(10.3%) 감소한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나타냈다.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2015~2065)’에는 인구 감소 시작 시점이 2032년으로 돼 있지만, 출생아 수가 다시 늘지 않으면 이 시점이 2024년이 될 수 있다고 자체 진단하기도 했다.

저출산이 계속되면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고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면 사회 전 분야에서 인재를 배출할 수 없게 되고 군인, 경찰관, 소방관 등 젊은 힘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회는 급속히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인재가 많을수록 노력하고 경쟁하여 전체 수준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지만, 젊은 세대가 줄어들면 혁신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음악이나 패션 등 새로운 문화를 주도하는 분야는 젊은 세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는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활력을 잃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해왔다. 저출산은 출산·양육 지원뿐 아니라 일자리·주거·청년취업 등 다양한 사회문제의 개선이 이뤄져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백가쟁명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백약무효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통계청이 주최한 ‘2015년 인구총조사 스페셜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던 세계적인 통계전문가이자 얼마 전 고인이 된 한스 로슬링 카롤린스카 의학원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페미니즘을 제시했다.

로슬링 교수는 단순한 인구정책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며 페미니즘을 통해서 변화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과거의 여성과 달리 지금 여성들은 일도 잘해야 하고 가정일도 잘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부담을 지워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다. 스웨덴은 인구정책이 아니라 양성평등과 관련된 변화에서 출산율이 반전됐다. 로슬링 교수가 말하는 양성평등은 전통적인 역할의 파괴다. 육아와 부모 봉양은 아내 일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아내가 일을 하고, 남편이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도 있다. 남녀 역할이 유연해질수록 사회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로슬링 교수는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도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하고,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에서는 싱글맘이나 그 아이들에 대한 낙인이 없다. 동성애에 대한 생각도 바꿔야 한다. 스웨덴은 2명의 장관이 동성애자이고 주교도 동성애자다. 얼마 전 아이 생일 파티에 참석한 친구 20여명 가운데 2~3명은 엄마가 둘이거나 아빠가 둘인 동성애자 커플의 아이들이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유연해져야 아이 키우는 데 부담이 없어지고, 출산율도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로슬링 교수는 여성 혐오에 대해서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스웨덴도 50년 전에는 똑같았지만,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어 남자도 살기 좋아졌다. 로슬링 교수는 페미니즘이 발달할수록 남녀의 기대수명 차이가 줄어드는 현상에 주목하여, 최종목표는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며, 삶의 질을 개선해 더 나은 사회에서 다 같이 살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임을 역설했다.

미래학자로 유명한 자크 아탈리 전 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도 1998년 발간한 <21세기 사전>이라는 책에서 18세기가 그랬듯 21세기도 여성의 시대가 될 것임을 예측했다. 남녀평등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게 될 것이고, 남녀 간 차이뿐 아니라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여성성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하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아탈리는 여성이야말로 교육, 사회보장제도, 분배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사회 발전의 핵심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여성에 대한 탄압이 심해짐에 따라 권력을 빼앗거나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의 형태를 띨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소설가 조선희가 12년 만에 펴낸 신작 <세 여자>는 1920년대 ‘신여성’이자 ‘마르크스 걸’로 성장해 한국 정치사상 전무후무한 ‘여성 혁명가’로 기록된 세 여자, 허정숙·주세죽·고명자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허정숙·주세죽·고명자는 임원근·박헌영·김단야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졌다. 21세기 허정숙·주세죽·고명자는 젠더 혁명가로 인구절벽이라는 ‘고요한 재난’을 극복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21세기 남성의 생존법은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 담벼락에서 맨스플레인을 일삼거나 모 정당 후보의 선거 벽보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온 젠더 혁명에 동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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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2일 자 경향신문 [미래의 눈]에는 '2048년, 미래 도시의 역학 조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써보냈다. 존 스노로 시작해 조앤 스노로 종료하는 의도된 수미상관을 눈치챈 독자는 많지 않았다.

[미래의 눈] 2048년, 미래 도시의 역학 조사

황승식(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존 스노(John Snow)라는 평범한 이름의 의사가 있다. 조지 R. R. 마틴 원작으로 용이 불을 뿜는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존 스노(Jon Snow)와는 철자 하나만 다르다. 스노는 19세기 빅토리아 시기 영국의 다른 의료계 명망가와 달리 요크셔 노동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런던 대학에서 의학사 및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외과의사로 개업했지만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실력으로 더욱 유명했다. 1853년 봄에는 여덟째 아이를 출산한 빅토리아 여왕의 클로로포름 마취를 담당해 최고의 명의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스노는 마취와 관련된 업적만으로도 의학의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지적 탐색 능력이 최고로 발휘되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야는 역학과 공중보건학이었다. 1840년대 말 영국은 콜레라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는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각종 이론이 난무했다. 콜레라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감기처럼 매개체가 있을 것이라는 감염론과 비위생적인 공간에 가득찬 독기(miasma) 때문이라는 독기론이 맞섰다. 에드윈 채드윅이나 윌리엄 파와 같은 공중보건 전문가조차 미신과도 같은 독기론을 지지했다.

스노는 1848년 콜레라 자료에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고 정체 모를 매개체를 통해 옮는다고 생각했다. 콜레라에 감염된 환자의 배설물에 직접 접촉하거나 배설물에 오염된 물을 마셔 생긴다고 믿었다. 감염론을 입증하기 위해 스노는 콜레라가 발생한 빈민촌을 꼼꼼히 조사해 증거를 모았고 런던에 식수를 제공하는 회사의 자료를 모았다. 두 자료를 취합해 스노는 특정 상수회사의 상수도가 오염돼 콜레라 발생이 높다는 가설을 세우고 콜레라가 유행한 브로드가의 펌프를 제거하여 사망자를 줄이는 역사적 성공을 거뒀다.

역학은 개별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의학과 달리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 방법을 찾는 의학의 한 분야다. 스노의 업적은 현대적 의미의 역학 조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모범 사례다. 콜레라 대규모 유행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감염 경로와 원인을 밝혀 콜레라 감염에 대한 새로운 이론과 분석 기법을 창안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콜레라 감염의 원인균인 비브리오 콜레라 박테리아는 스노가 뇌졸중으로 사망한 지 25년이 지난 1883년에서야 독일의 병리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확인했다는 점이다.

150년 전 런던이 직면했던 상황처럼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도시 빈민가도 여전히 많다. 안전한 마실 물이 없는 인구가 11억 명이 넘고, 상하수도와 같은 공중 위생 서비스를 못 받는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30억 명이다. 콜레라와 같은 감염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만 해도 매년 200만 명이다. 새로운 지적 탐색에 열정적이었던 스노가 오래 살았다면 콜레라가 아닌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스노의 업적으로 공중 위생 운동은 전기를 맞았다. 생전 스노의 감염론을 격하게 반대했던 채드윅의 공중 위생 개선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스노의 업적 이후 한층 강화된 제도로 안착했다.

21세기 세계의 거대 도시는 19세기 런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중 위생 상태가 개선됐다. 감염병학과 쓰레기 관리 기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관련 전문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스노가 브로드 가를 집집마다 확인하여 작성한 지도를 지금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컴퓨터 화면에 지도로 그려낼 수도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인플루엔자 발생에 대한 보고서를 매주 업데이트하고 다양한 도표와 지도로 제공하고 있다. 구글이 개발한 플루 트렌드는 전세계 구글 이용자들의 검색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하여 인플루엔자 확산 현황과 예측 정보를 만들고 있다.

현대 역학의 주된 접근 방법은 19세기 중반 스노의 활동처럼 희생자 개인의 이력과 접촉한 사람을 찾아 정보를 얻는 일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역학 조사관은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폐쇄회로티비에 찍힌 비디오파일과 카드 사용 내역까지 분석했다. 2020년 초 중국 우한에서 최초로 확인된 코로나19 감염병이 전세계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2020년 역학 조사관은 접촉자를 파악하기 위해 LTE 휴대전화 신호도 분석하고 있다. 질병 확산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이용하는 많은 수학적 모형은 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접촉하는 상황만을 가정하고 있다. 개인이 서로 어떤 식으로 접촉하는지 보여주는 현실적 모형이 없고, 수많은 대중의 이동을 모형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계산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004년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연구진은 고성능 슈퍼컴퓨터 클러스터와 애초 도시계획 용도로 개발한 트랜심스(TranSimS)라는 모형을 활용해 몇백만 명을 대상으로 개인 간의 접촉을 모형화한 역학 시뮬레이션 모형 에피심스(EpiSimS)를 개발했다. 에피심스에서는 가상의 병원균을 인구집단에 퍼뜨려 병원균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여러 대응조치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모의실험을 통해 질병이 퍼지는 과정에 사회 연결망 구조를 포함시키자 질병이 지수적으로 급속히 확산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모의실험을 통해 질병 확산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대응조치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대응조치를 발동할 것인가에 달려있음을 알게됐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의 형상, 성질, 상태 등의 정보를 사이버세계에 동일하게 구현하는 개념인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2018년 10대 전략 기술로 선정했다. 2014년 말 싱가포르는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를 시작해 도시를 3차원으로 모사한 도시 가상화 모델을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다. 2048년 미래 도시에 발생한 신종 감염병 역학 조사를 맡은 조앤 스노(Joan Snow)는 아마도 의학·보건학 전공자가 아니라 프로그래밍에 능숙한 데이터 과학자일 것이다.

Posted by cyber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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