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필진 한 명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준비없이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 필진에 합류하게 됐다. 두 달에 한 번 미래에 대한 잡설을 풀어놓는 일은 고역이다. 2017년 10월 26일 자 '미래오디세이: 2054년, 통계맹 퇴치 원년'은 기거렌처 선생의 책자 내용을 가져와 통계맹 퇴치라는 희망섞인 미래에 약간의 불안을 뿌렸다. 초고 분량이 짧다는 연락을 받고 두어 문단을 급히 추가하느라 도입부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미래오디세이: 2054년, 통계맹 퇴치 원년

황승식(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


때는 2054년, 소르본대학 대강당에서 수세기 동안 인류를 역병처럼 괴롭혀온 지적장애인 통계맹 퇴치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확률론 등장 400주년, 조지 불의 ‘사고 법칙’ 발간 200주년, 레너드 새비지의 ‘통계학 기초’ 발간 100주년을 동시에 기념하는 연도였다. 이 행사는 유럽연합 의장과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공동 주최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통계맹”이라는 주제로 패널 토론을 진행했으며, 사회는 소르본대학 경제학자 에밀 에쿠 교수가 맡았다. 패널로 섭외된 베를린에서 온 정치경제학자, 베이징에서 온 통계학자, 스탠퍼드에서 온 심리학자, 파리에서 온 과학사학자가 두 시간에 걸쳐 통계맹의 등장과 퇴치에 이르는 역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치경제학자가 먼저 2007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통계적 사고는 점점 복잡해지는 세계에서 필수불가결한 덕목이 되고 있으므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함을 지적한 최초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통계학자는 메르켈 총리가 아니라 마오 주석이 일찍이 1940년대에 혁명 동지들에게 숫자 두뇌를 갖춰야 하고 기초 통계를 알아야 함을 강조했지만 문화혁명으로 인해 지체됐다고 반박했다. 심리학자가 즉각 ‘타임머신’을 쓴 현대 SF 소설의 아버지인 허버트 조지 웰스가 이미 20세기 초에 통계적 사고는 시민권의 필수 요소임을 강조했다며 되받아쳤다.


확률론이 등장한 1654년, ‘사고 법칙’이 발간된 1854년, ‘통계학 기초’가 발간된 1954년, 그리고 통계맹이 퇴치된 2054년까지 1754년을 제외하고 예외 없이 통계학에서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과학사학자는 1761년에 사망한 토머스 베이즈가 아마도 1754년에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된 유명한 정리를 발견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부연 설명했다. 심리학자가 통계맹이 이름을 얻게 된 해는 1988년으로, 존 앨런 파울로스 뉴욕대 교수가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발간하면서 대중에게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언급하자, 과학사학자는 퓰리처상 수상작인 ‘괴델, 에셔, 바흐’의 저자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인디애나대 교수가 1982년 발표한 문헌을 파울로스 교수가 인용하는 일을 깜빡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미국에서 DNA 검사법이 도입된 지 서른 해가 지난 2016년에야 국제사법연합이 법정에서 확률 대신 자연빈도에 기초한 소통을 의무화시켰고, 2020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노력으로 모든 의사가 자연빈도를 익혀 검사 결과에 해석에 필요한 조건부확률을 이해하게 됐다. 세계보건기구는 회원국에서 투명한 위험 소통을 목표로 하는 항정신오염법을 통과시켜, 의과대학생이 상대위험도가 아니라 절대위험도로 위험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은 통계적 사고에 기반한 계산맹 평가 문항을 포함시켰고, 15세 학생 95%가 통과한 어떤 국가는 통계맹 퇴치를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통계맹 퇴치를 위한 교육 훈련에 약 100억불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는 추정도 발표됐다.


위는 저명한 인지심리학자인 게르트 기거렌처 막스플랑크협회 인지개발연구소장이 2008년에 발표한 『인류의 이성: 인간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대처하는가」라는 책 에필로그에 실린 가상 대담의 일부다. 기거렌처 소장의 희망섞인 기대와 달리 2017년 현재 세계는 왜곡된 정보로 가득한 가짜뉴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은 주요 언론이 365일 24시간 가짜뉴스를 쏟아내고 있다는 표현을 SNS에 여과없이 내보냈고, 전직 한국 대통령을 탄핵시킨 스모킹건인 태블릿피시가 발견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증거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직 많다. 대중은 모든 숫자와 통계는 당연히 조작됐다고 믿고 있다. 1천명을 무작위로 뽑아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는 겨우 1천명이 어떻게 5천만명을 대표하는 의견이냐는 비난에 무력하다. 백신 음모론에 심취한 어떤 한의사는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라는 카페를 만들어 예방접종 거부를 선동하기도 했다. 분노에 찬 어떤 네티즌은 그렇게 큰 아이들이 나중에 ‘약 안쓰고 어르신 모시기(안어모)’를 만들어 봉양해도 되겠느냐는 촌철살인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톰 니콜스 미국 해군대학교수는 2017년 발표한 「전문가와 강적들이라는 책에서 전문가는 투명한 소통에 기초한 교육을 수행할 책임이 있고, 대중은 배워서 알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이미 1938년에 발표한 소설 ‘월드 브레인’에 “오늘날 일정한 기본 통계 교육은 읽기와 쓰기만큼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항목이 되고 있다.”는 명문을 남겼다. 전문 지식조차 간단한 키워드만 검색 엔진에 입력하면 셀 수 없이 많은 결과가 쏟아져 나온다. 인터넷 시대 교육은 검색 능력이 아니라, 정보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최근 헌법 개정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헌법 내 과학기술이라는 용어 사용과 과학기술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에 관한 의견 등을 조사해 과학기술인의 개헌 의견을 알리기 위한.행동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교육의 권리와 의무를 천명한 현행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와,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와 같은 조항을 담고 있다. 개정 헌법의 교육의 권리와 의무 조항에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 통계맹 퇴치를 선언적으로라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2054년은 통계맹 퇴치 원년이 아니라 민주주의 폐기 원년으로 역사에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톰 니콜스 (2017), 전문가와 강적들, 오르마.

Gerd Gigerenzer (2008), Rationality for Mortal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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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5일 창비주간논평에 기고한 글이다. 무슨 이유인지 창비주간논평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 기사 제휴 중인 평화뉴스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메르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파일

[창비주간논평] 황승식 / 국민건강도 못 챙긴 정부, 의료수출을 꾀하려는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라는 영화가 있다. 1989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26살에 만들어 그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적어도 제목을 아는 사람은 많다. 이십여년 전 하숙방 근처 비디오대여점에서 친구 녀석과 나는 제목만 믿고 이 영화를 빌렸다.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면서 살구색 속살로 화면을 가득채운 에로 영화를 보게 되리라는 기대는 산산히 부서졌다. 앤디 맥도웰과 제임스 스페이더의 풋풋한 젊은 시절을 본 지루한 영화였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메르스 유행이 확산되던 지난 6월 중순 중앙메르스역학조사위원회에 합류하게 됐다. 역학조사관이 작성해 제출한 역학조사서를 취합 분석하다보니 기억 속에 제목만 남아 있던 오래된 영화를 떠올리게 됐다. 유행은 시작됐고, 환자의 진술은 엇갈리며, 생존을 위해 거짓말도 피하지 않았다. 환자의 진술만으로 메르스 감염 경로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 폐쇄회로티비에 찍힌 비디오파일 분석이 필수가 됐다. 어떤 환자는 유력한 감염 경로를 애써 부인하다 카드 사용 내역에 근거한 폐쇄회로 화면을 보여주자 그제서야 사실을 말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국민건강도 못 챙긴 정부, 의료수출을 꾀하려는가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은 국외로부터 국내 유입을 막는 검역이 유행을 막는 첫 번째 단계다. 방역 당국은 이 단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 환자들은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따라 곧장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응급실을 숙주 삼아 의료인과 다른 환자를 감염시키기 시작했다. 6인실에 환자, 보호자, 간병인, 내원객, 의료진까지 쉴새없이 드나드니 병실이 아니라 메르스를 나르는 운송수단이 됐다.


감염병의 유행을 막는 방역은 근대 국가의 핵심 업무임에도 정부는 여전히 취약함을 드러냈다. 유언비어를 막는다면서 정보 공개는 소홀했다. 화려한 첨단 의료의 그늘에는 병원 감염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무능한 보건이 숨겨져 있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 당국은 해킹 프로그램으로 불법 감청을 수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인 건강은 못 챙기고 정보나 들여다봤다면 근대 국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메르스 유행은 사실상 종식 선언만 앞두고 있다. 정부는 메르스 유행 당시 보건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꺼냈던 정책을 대부분 거둬들였다. 예방의학계가 요구한 질병관리청의 승격 신설은 쑥 들어갔고, 병원계가 요구한 메르스 손실 보상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질병관리본부장의 차관급 격상과 병원 내 감염관리료의 소폭 인상이라는 생색으로 채워졌다.


신임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는 의사 출신으로 병원정보화에 많은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의료서비스는 창조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핵심 컨텐츠”(신년 기자회견)라거나 “해외 의료수출 활성화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집권 후반기에 의료서비스 분야의 창조경제 실현과 의료수출 활성화 정책을 구현할 인물을 찾은 셈이다.


정부의 거짓말은 국가적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결국 이번 인사를 통해 메르스 유행을 통해 민낯을 드러낸 부실한 국가방역체계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의지가 없음을 선언했다. 해결하기 어렵고 성과도 내기 어려운 개혁은 치워두고, 집권 초기부터 밀어붙인 의료서비스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이겠다는 포석이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중동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메르스 유행을 경험한 국가의 의료서비스를 환영하며 수입할 국가는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이다.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에는 거짓말은 알코올 중독과 같아서 완치가 어렵다는 대사가 나온다. 작년 세월호 사고 이후나, 올해 메르스 유행 이후나, 정부 당국자의 거짓말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메르스 환자 한 명의 거짓말은 역학 조사를 힘들게 하고 유행을 연장시켰을 뿐이다.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의 거짓말은 국민의 신뢰를 거둬들여 메르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난을 예비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황승식(인하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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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심수봉, 나는 야구광, 1987년. [링크]


1. 그랬거나 말거나 1982년의 베이스볼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 결승전에서 좌측 폴을 맞춘 한대화 선수의 결승 홈런을 따라한다며 셀 수 없이 많은 공을 동네 전봇대를 향해 날렸고, 비례하여 옆집 유리창은 깨져나갔다. 고교야구 광팬이었던 큰누님의 강권으로 해태 타이거즈 어린이 회원에 가입했다. 화니백화점 5층 모집 코너에 찾아가 연회비 5천 원을 내고 모자, 점퍼, 팬북, 사인볼과 라디오까지 받아왔다. 빨간색 타이거즈 어린이 회원 점퍼와 야구 모자는 교복과 같았다. 디자인이 예뻤던 베어스 점퍼와 모자를 쓰고 왔던 철준은 애꿎은 시비 끝에 다음 날 다른 옷을 입고 와야 했다.[각주:1]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광주학살이라는 원죄를 저지른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탓에 비판의 목소리도 컸지만 지역 연고 고등학교 야구의 폭발적 인기를 고스란히 흡수해 연착륙했다. 해태 타이거즈는 6개 구단 중 가장 적은 14명의 선수로 시작했다. 김성한은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10승과 13홈런을 기록했다. 김봉연은 발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하고도 타석에 들어서 홈런을 기록했다. 소수정예로 고군분투 끝에 원년 시즌 4위를 차지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승률 .188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원년 우승을 차지한 OB 베어스 상대 16전 전패라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각주:2]


1983년 전기리그는 너구리 장명부 투수를 영입한 삼미 슈퍼스타즈와 코끼리 김응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해태 타이거즈가 불꽃 튀는 선두 경쟁을 벌였다. 그해 6월 7일 두 팀의 전기리그 마지막 3연전이 무등경기장에서 열렸다. 2.5 경기차로 선두 삼미를 뒤쫓던 해태는 초조했다. 이상윤, 김성한, 주동식을 내세워 3연전을 쓸어담은 해태는 반경기차 선두로 올랐다. 내친김에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그해 가을 후기리그 우승팀 MBC 청룡을 4승 1무로 제압하여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다. 훗날 광주팬은 그해 3연전을 ‘광주대첩’이라고 이름붙여 기억하고 있다.[각주:3]


2. 그랬거나 말거나 1988년의 베이스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렸다. 개막식이 열린 9월 17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토요일 오전 친구들과 탁구 한 판을 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후 티비 앞에 앉았다. 아이가 굴렁쇠를 굴리고, 성화대에서 비둘기를 태우고, 코리아나가 부르는 ‘손에 손잡고’를 친구들과 함께 손에 손잡고 목청껏 불렀다. 망치를 들고 노래를 가르쳤던 음악 선생님의 반복 학습 효과는 확실했다.


1988년 한국시리즈 우승팀도 해태 타이거즈였다. 출범한 지 채 십 년이 안 된 시점에 최초로 3년 연속 우승과 4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타이거즈 투타의 기둥인 선동열과 김성한의 활약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선동열은 최우수 평균자책점과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김성한은 홈런, 타점, 최다 안타, 최고 장타율 타이틀 4관왕과 함께 시즌 MVP를 수상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신흥 강자로 등장한 빙그레 이글스를 맞아 4승 2패로 꺾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은 태평양 돌핀스로 바뀌었다. 개막 직전인 1988년 3월 9일에서야 만년 꼴찌팀인 청보 핀토스를 인수한 탓에 전력은 바닥이었다. 시즌 초반 1승 13패라는 부진 끝에 창단 감독을 맡은 강태정 감독이 경질되고 임신근 감독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치뤘다. 시즌 종료 후 OB 베어스 감독에서 물러난 김성근 감독을 영입해 다음 해인 1989년 시즌 3위라는 호성적을 거둬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3. 그랬거나 말거나 1998년의 베이스볼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DJP 연합에, 이인제 탈당에, IMF 경제위기라는 상황에서도 이회창 후보를 39만여 표 차로 간신히 누르고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역사 상 최초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이듬 해 1998년 한국 프로야구는 경제위기 직격탄을 맞은 재벌그룹이 대부분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 선수단 운영비가 줄어 선수들 사기가 많이 꺾였다. 잠실 야구장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경기를 리드하던 후반 3루측 원정 관중석에서 어김없이 울려퍼지던 ‘목포의 눈물’이 사라진 해도 이 무렵이다.[각주:4]


모그룹인 해태가 경제위기로 휘청거리자 해태 타이거즈의 위기는 가중됐다. 1996년과 1997년 2년 연속 우승의 주역인 이종범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보내자 정규시즌 5위로 마감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김응용 감독의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라는 유행어도 이 당시 만들어졌다. 시즌을 마치자마자 최연소 구원왕을 차지한 임창용까지 우승에 목마른 삼성 라이온즈에 현금 트레이드하면서 타이거즈의 흑역사가 시작됐다.


1998년 인천 연고 야구팀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였다. 재정난에 허덕인 쌍방울 레이더스 투타의 핵심인 조규제와 박경완을 영입하고, 정민태라는 에이스를 필두로 선발진 5인 전원이 10승 이상을 거뒀으며, 스캇 쿨바라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를 클린업에 넣은 결과는 당연하게도 정규시즌 1위 성적이었다. 한국 시리즈에서는 4승 2패로 LG 트윈스를 꺾고 창단 첫 우승과 함께 인천 연고 야구팀 최초로 프로야구 우승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4. 그랬거나 말거나 2009년의 베이스볼


2009년 4월부터 5월까지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 ‘베쓰볼 인천 인천야구 백년사’ 전시회가 열렸다. 인천 야구 100년사를 정리하고, 인천 야구의 우수성을 재조명하자는 취지였다. KBO, SK 와이번스, 인천고, 동산고 등 12곳의 개인, 기관, 학교로부터 300여 점의 자료를 대여해 전시했다. 인천을 연고로 하는 SK 와이번스가 김성근 감독의 지도 아래 2007년과 2008년에 이어 한국시리즈 3년 연속 우승을 기원하며 2009년 시즌의 개막을 며칠 앞두고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가 시작하자마자 궁금해서 한 번, 아내와 돌을 갓 넘은 첫째를 데리고 한 번, 지도학생들과 한 번, 세 번이나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회 물품 중 일부는 문학구장 인근 신기시장 야구역사박물관에 옮겨져 전시 중이다.


2001년 광주에 자동차 공장이 있던 현대-기아차 그룹이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해 KIA 타이거즈로 재탄생했다. 김성한 감독의 지도 아래 2002년과 2003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나 최하위를 차지하는 흑역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조범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년 차인 2009년 시즌 초 김상현을 트레이드하여 메이저리거 출신 최희섭과 함께 CK포를 구축했다. 로페스와 구톰슨이라는 준수한 외인 선발 듀오에 윤석민과 양현종이 가세해 선발진도 탄탄했다. SK 와이번스의 막판 추격을 따돌리고 12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조범현 감독은 한국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우주의 기가 타이거즈를 감싸고 있다”는 야구계에서 드문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SK 와이번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두 자릿수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시리즈 최종전 끝내기 홈런은 프로야구 역사가 한국보다 훨씬 긴 미국에서도 한 번밖에 없고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다. 해태 타이거즈 어린이 회원 1기라는 자랑이 희미해지고 그깟 공놀이에 일희일비하냐며 자책하던 30대 중반의 청년은 잠실야구장 외야 상단에 떨어지는 백구의 궤적을 화면으로 주시하며 굵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각주:5]


5. 그랬거나 말거나 2017년의 베이스볼


트레바리 읽을지도에서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는다길래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기록은 사실 부끄러운 항목이 많다. 부끄러운 기록도 역사고 자랑스런 기록도 역사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부끄러운 기록을 세우고, 현대 유니콘스가 자랑스런 기록을 세운 숭의야구장(구 도원야구장)은 해체돼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 변모했다. 인천행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도원역 정류장에 정차하면 지하철 안에서도 경기장의 웅장한 날개를 볼 수 있다. 축구 전용 경기장 어디에서도 프로야구 초창기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점은 아쉽다. 백년 한국 야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집약된 동대문야구장도 2007년 철거되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바뀌고 말았으니 숭의야구장의 운명은 이미 그때 예정된 셈이다.[각주:6]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소설 속 산물이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마지막 팬클럽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KIA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 팬카페는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2017년 프로야구는 초반 KIA 타이거즈의 선두 질주와 SK 와이번스의 홈런 기록으로 팬심을 사로잡고 있다. KIA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는 시즌 초반 4 대 4 트레이드로 전력을 보강했다. 두 팀이 다시 한 번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을지 여부는 시즌 초반이라 예측하기 어렵지만, 강력한 선발진을 갖춘 타이거즈와 막강한 홈런포로 무장한 와이번스의 대결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두 팀은 오는 7월 4-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3연전을 가질 예정이다. 오는 3연전에는 가족과 함께 문학구장 외야 원두막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신기시장에 들러 인천야구박물관 전시물을 구경해봐야겠다. 

  1. "[삶과 문화] 삶은 야구다: 베이스볼 키드의 생애. 한국일보 2012년 4월 14일 자" 링크: https://goo.gl/soJUPK 에 실린 문장을 재활용했다. [본문으로]
  2. 마산고에서 야구를 하다 삼미특수강 창원공장점에 취업해 공개 트라이아웃을 거쳐 삼미 슈퍼스타즈에 합류한 감사용 투수를 소재로 한 2004년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 당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영화에서 감사용 배역은 이범수가, 박철순 배역은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 공유가 맡았다. 영화가 개봉될 당시 감사용 씨는 식당 주인과 초등학교 야구감독 등을 거쳐 창원에 있는 할인마트 관리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https://goo.gl/zpxtnw [본문으로]
  3. "[야구의 추억, 일흔 네 번째] 꼴찌 ‘삼미 슈퍼스타스’의 서글픈 스타" 링크: https://goo.gl/yVWQm5 에 당시 3연전 결과가 상세히 나와 있다. 김은식 야구작가는 인천 출신으로 인천 야구의 오래된 팬이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야구의 추억> 시리즈는 2009년 동명의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본문으로]
  4. 김은식 야구작가의 역작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에 역사의 한 장면으로 소개되고 있다. [본문으로]
  5.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을 분석해 당시 SK 와이번스 김정준 전력분석팀장과 경향신문 이용균 야구기자가 <야구멘터리 위대한 승부>라는 단행본으로 펴낸 바 있다. [본문으로]
  6. 박준수 사진작가가 2007년 철거를 앞두고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 들러 동대문운동장의 마지막 모습을 찍은 사진에 김은식 야구작가가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글로 정리한 사진집 <동대문운동장: 아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가 2012년에 나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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