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증거기반의학의 정신, 철학의 정신

당연해 보이는 것에 대한 의심


번역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부딪쳤던 난관은 우리말 제목을 붙이는 일이었다. 이 책은 의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지적 운동evidence-based medicine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데, 우리는 통상 그 운동을 부르는 우리말 이름부터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책을 읽고 우리글로 옮기는 일은 적절한 번역어를 골라내는 데에서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던 의학 연구의 관행에 의문을 던지고 제기된 논점들을 하나하나씩 점검해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 글은 증거기반의학이 제기하는 여러 논점들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을 소개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고도로 분업화된 오늘날의 학문 세계에서 철학의 역할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 요체는 널리 받아들여지는 지식이나 개념 체계라고 할지라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한 번 더 의심하고 따져 묻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의학계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던 증거기반의학을 관통한다. 그러한 정신이 어떻게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에서 적용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조금 더 포괄적인 시각에서 증거기반의학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통념을 고찰하려 한다.

우선,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을 확정한 이유에 대해 상세히 논의한다. ‘근거중심의학’, ‘근거기반의학’ 등 여러 이름이 통용되고 있지만 각 이름을 사용해야 할 이유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헌은 드물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증거기반의학’을 선택한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다음,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이 맺는 관계에 대한 여러 견해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증거기반의학은 오늘날 의학의 주요 방법론으로 대두했지만 대중에게는 여전히 그 이름조차 생소하며, 동시에 관심 있는 전문가들은 기초과학과 그 방법론이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증거기반의학의 창시자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과학적 의학’으로 부르려 했으나 결국 ‘증거기반의학’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추적하면서, 증거기반의학과 기초과학의 관계를 성찰하겠다.


1.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


번역 작업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과제는 ‘evidence-based medicine’(주: 번역어를 택한 이유를 밝히는 대목에서는 ‘evidence’, ‘based’, ‘medicine’, ‘evidence- based medicine’, ‘증거기반의학’, ‘non-evidential’을 그대로 노출시켰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었다. 현재 한국 의학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번역어는 '근거중심의학'(주: 대한의학회가 만들고 정부가 지원하는 임상진료지침 정보센터에서 택하고 있는 표현이 ‘근거중심의학’이다.)인 것 같다. ‘근거중심-’이라는 표현은 다양한 영역의 문헌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관련 전문 서적에서는 ‘근거중심간호’나 ‘근거중심한의치료’ 같은 표현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강독 과정에서 우리는 ‘근거중심’은 이 방법론적 운동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으며, 그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 가능한 다른 선택지와 각 대안의 장단점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겠다.


2. Evidence: 증거인가 근거인가? 


evidence의 번역어로 다음 두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①증거. 

②근거.


많은 의료인은 증거보다 근거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있다. 한국어 단어 ‘증거’와 ‘근거’가 서로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단어 모두 주장을 담고 있는 가설·이론·판단을 옹호하기 위해 쓰이는 자료를 뜻한다. ‘증거’는 법률적 효력과 같이 뒤집기 어려운 경우에 쓰인다는 직관이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 현재 ‘증거’보다 ‘근거’를 선호하는 이유는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이 의과학이 제시한 연구 결과가 가설을 확실히 뒷받침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최선의 판단도 원리상 전복될 수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의료계는 ‘증거’보다는 ‘근거’를 번역 용어로 더 많이 쓰고 있다.

우리는 의료계에 통용되는 근거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근거’가 아니라 ‘증거’로 옮겨야 한다. 증거가 불확실하며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지적은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앞선 지적이 증거기반의학이 주장하는 새로운 의학의 핵심은 아니다. 어떤 경험 자료가 가설이나 이론을 뒷받침하는 상황을 철학적으로 성찰해보면, 경험에 기반을 둔 주장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으므로 확실하지 않다는 말은 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부정하는 과학자나 의료인은 없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증거의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에 주목한다. 즉, 어떤 증거의 품질이 더 좋고 더 나쁜지, 그리고 어떤 자료가 증거가 될 수 있고 될 수 없는지에 대한 구분 기준을 탐구한다.

이런 생각을 그림 1.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다시 살펴보자.

증거기반의학이 제시하는 위계 구조에 따르면, 무작위 시험과 관찰 연구 설계로 대표되는 비교임상연구를 잘 수행하면 양질의 증거를 얻을 수 있다. 전문가 판단과 메커니즘 추론을 통해서는 품질이 나쁜 증거만 얻을 수도 있다. 전문가 판단은 증거의 자격 자체가 의심스럽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은 그림 1.1에서처럼 여러 연구 설계의 품질을 범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전문가 판단이나 메커니즘 추론으로 품질이 나쁜 증거를 얻을 수 있다는 평가를 검토하여 증거라는 용어가 적절한 까닭을 설명하려고 한다.

먼저 전문가 판단을 살펴보자.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은 전문가 판단에 가설을 입증하는 일과는 다른 비증거적 역할non-evidential role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역할은 하윅에 따르면(11장 4절) 환자의 가치와 상황을 최고 품질의 증거와 결합시키는 일, 플라세보 효과를 강화하는 일, 암묵적 지식에 해당하는 숙련 기술을 사용하는 일 등이다. 우리는 의료인들의 전문성과 판단이 합리적 이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첫 번째 역할을 수행하려면, 치료 효과에 대한 정보는 물론 환자의 가치와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역시 판단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두 번째 역할을 수행하려면, 의료인은 언제 플라세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어떻게 플라세보 효과를 강화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의료인 자신이 충분한 암묵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세 번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의료인 자신이 충분히 숙련됐다는 자각을, 즉 자신이 충분히 전문가라는 자각이 없이는 전문적인 의료 행위를 제공할 수 없다.

전문가 판단과 비교임상연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환자에게 영향을 준다. 전문가 판단은 다양한 실천적 가치에 의해 옹호된다. 반면 비교임상연구에서 검증한 가설은 연구 결과 데이터로 옹호된다. 이는 인식론·과학철학의 용어를 활용하여 특별히 입증confirmation이라고 부른다. 어떤 가설에 대해, 그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있다면 그 가설은 입증된다. 또 그 증거의 수준이 강력할수록 입증의 강도도 세다.(주: 상세한 논의는 본문 1장의 역주와 헴펠의 <자연 과학 철학> 4장 77-102쪽을 참조하라.) 따라서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이 증거 위계(그림 1.1)를 사용하여 보여주고자 했던 입장은, 각 증거들이 제공하는 입증의 강도, 다시 말해 인식적 자격 또는 참에 대한 보증의 강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증거기반의학 위계에 따르면, 전문가 판단은 입증력이 없거나 약한 반면 성공적인 비교임상연구는 가설을 강력하게 입증한다.

메커니즘 추론이 내놓은 증거가 품질이 나쁜 증거로 취급되는 이유도 살펴보자.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어떤 치료 A가 환자에게 유관한 효과를 낸다는 가설에 대하여 메커니즘 추론의 결론은 제대로 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본다. 메커니즘 추론이 참이라고 주장했던 가설이 실은 거짓이라고 밝혀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잘 수행된 비교임상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메커니즘 추론이 내놓은 가설과 충돌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에, 메커니즘 추론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런 추론에는 숨겨진 전제가 있다. 비교임상연구가 메커니즘 추론보다 범주적으로 더 강한 입증력이 있다는 전제 없이는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없다. 물론 하윅은 이런 전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만(10장), 적어도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이 양질의 증거라는 말로 무엇을 지시하는지 확인할 때 유용하다.

결국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어떤 치료 A가 효과적이라는 가설에 대해, 어떤 연구 결과가 해당 가설을 강하게 입증한다면, 그 결과는 양질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림 1.1에서 상위에 있는 증거가 좋은 까닭은 적절한 연구 설계로 수행됐기 때문이고, 방법론적으로 우월한 증거일수록 가설을 입증할 때 믿을 만하다.

따라서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셈이다. 비교임상연구가 제시하는 증거에는 전문가 판단이 반영하는 다양한 종류의 가치와는 구분되는 인식적 힘이 있다. 또한 메커니즘 추론에 비해 비교임상연구는 양질의 증거다. 우리는 이런 인식적 자격, 또는 입증력 차이에 주목한다. 증거를 증거로 만들어주는 한편 증거의 품질을 올리기도 하는 요소는 바로 이 자격 또는 입증력이다. 증거기반의학이 말하는 증거의 핵심이 입증력이라는 사실에 비춰 볼 때, ‘근거’가 아니라 ‘증거’라는 말을 쓰면 의미가 강해진다는 의학계의 우려는 기우다. 증거가 미약한 입증이거나 증거가 방대한 입증이거나,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면 뒤집어질 수 있다는 점에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한국어 ‘증거’에는 법률적 효력에 대한 평가도 담겨 있다. 그러나 증거기반의학이 입증력이라는 인식적이고 과학철학적인 쟁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 판단에 대한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근거’에 담긴 여러 느슨한 의미를 덜어내려고 한다. 어떤 증거의 법률적 효력 역시 입증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증거라는 말에 담긴 법률적 의미는 인식적 의미에 어느 정도 의존한다.

논의의 결론은 이렇다. ‘근거’는 어떤 추론이나 결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이유를 가리킨다. ‘증거’는 어떤 가설에 대해 입증력이 있는 자료에 대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법률적 효력 역시 입증력에 의존한다. 증거기반의학이 말하는 증거의 용법을 검토해보면, 증거는 특수한 종류의 정당화, 즉 쟁점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쓰이는 자료를 가리킨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유로 ‘근거’ 대신 ‘증거’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3. Based: 중심인가, 기반인가


Based는 증거, 그리고 개별 의사의 결정이나 보건 당국의 지침과 같은 의료 실무 사이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에 대한 번역어는 두 가지가 있다.


①중심.

②기반.


두 용어는 증거와 의료 실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이다. ‘중심’과 ‘기반’은 모두 증거가 의료 실무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뜻을 전달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우리는 더 세밀한 뜻을 전달하는 데는 기반이라는 용어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두 용어에 대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풀이와 우리의 직관은 다음과 같다.


①기반: 기초가 되는 바탕. 또는 사물의 토대. 어떤 토대 위에 구조물이 올라가 있는 관계를 가리킨다. 증거라는 토대에 의료 행위라는 건물이 서 있는 그림이 연상된다. 

②중심: 사물이나 행동에서 매우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부분. 하나의 주 기둥에 여러 보조 기둥이 있는 구조물에서 주 기둥과 보조 기둥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 증거가 의료 행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그림이 연상된다.


기반의 용법에 따라 그린 그림 속에서, 증거는 의료 행위의 소극적 조건, 다시 말해 의료 행위가 어기면 안 되는 조건으로 제시되었다. 반면 중심이 주는 그림 속에서 증거는 의료 행위의 기초가 되는 다른 여러 이유를 압도하는 무언가로 제시되었다. 증거기반의학은 기반이 제시하는 그림과 더 어울린다. 예를 들어 보건당국이 담배를 오직 역학적 증거에 의해서만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이 조치는 격렬한 사회적 논란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중보건정책은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와 부합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조치의 효과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 역시 감안해야 한다. 또한 증거기반의학은 의료 행위가 환자의 가치를 감안하여 제공돼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따라서 ‘중심’보다는 ‘기반’을 번역어로 골랐다.


4. Medicine: 의학인가 의료인가


Medicine에 대한 번역어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①의학.

②의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의학’을 인체의 구조나 기능, 질병, 치료, 예방, 건강 유지의 방법이나 기술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의학을 지지하는 견해에 따르면, 증거기반의학은 어떤 치료가 환자에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옳은 지식을 확보하는 절차를 제공하고, 나아가 그 절차가 왜 옳은 지식을 보장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방법이다. 이는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다루지 않고, 의료와 유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의학’은 이런 문제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집합을 가리킨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의료’를 의술로 병을 고치는 일로 풀이하고 있다. 증거기반의학은 의료 현실을 폭넓게 변화시키려 한다. 이런 변화의 범위를 감안할 때, 의료가 적당한 용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 있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의학을 변화시켜 의료 역시 변화시키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증거 위계 피라미드(그림 1.1)를 통해 전문가 판단은 증거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전문가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문가 판단은 증거 자격이 없다는 평가가 의학의 문제라면, 전문가의 역할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이를 의학이 다루는 증거 산출 절차와 구분해야 한다는 제안은 의료의 문제다. 

의학은 결국 의료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예를 들어 ‘예방의학’ 역시 그렇다. 예방의학의 목표는 역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조기 사망을 줄이는 데 필요한 조치를 개발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 있다. 대부분의 의학 지식은 임상 현장에 적용되어야 의미가 있다. 의학의 기본 속성에 비추어 보아, ‘의학’이라는 용어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증거기반의학’에서 ‘증거’는 이 운동이 어떤 의료적 개입의 효과성 가설에 대한 입증력을 분별하고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므로 골랐다. ‘기반’은 증거가 의료 행위의 제약 조건으로 기능해야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골랐다. ‘의학’은 이 운동이 의료 현장과 관련된 지식을 축적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골랐다.


5. 증거기반의학과 '과학'


이름을 확정하면서 증거기반의학 자체의 내용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우리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주제는 바로 과학과 증거기반의학의 관계다. 역학 연구를 다룬 뉴스를 접한 대중의 반응부터, 증거기반의학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의 주장, 심지어 증거기반의학의 역사와 방법론 모두에 걸쳐 과학과 증거기반의학의 관계는 주목할 만한 연구 주제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증거기반의학을 적용한 임상 역학 연구를 뉴스에서 접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2016년 8월 AP 통신 탐사보도팀은 치실의 효과에 관한 논란을 취재 보도했다. 이 기사는 국내 언론에 인용 보도되면서 각종 뉴스를 달궜고, 이를 접한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다. 기사에 따르면, 치실에 대한 비교임상연구 결과 치실이 플라그 제거와 치주염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당국과 치의학계, 그리고 관련 산업계가 치실 사용을 계속해서 권장해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가공되지 않은 반응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런 반응 가운데, 특히 다음은 이 에세이의 맥락에서 조명할 가치가 있다.


 증거기반의학에 의한 연구를 ‘과학적’ 연구 방법이라고 부름. 많은 사람들, 또는 많은 국내 보도는 이들 비교 임상연구의 결과를 주저 없이 ‘과학적’이라고 부른다. AP 통신보도 역시 기사 본문에서 ‘scientific’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다. 실제 체계적 고찰 연구를 검토하여 과학적이라고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증거기반의학’이라는 말 자체의 역사와 현재 진행 중인 논란에 비춰 볼 때 이런 용어법에는 문제가 있다.


본문 2장에서 간략히 소개된 것처럼, 고든 기얏이 ‘증거기반의학’을 가리키기 위해 처음 선택했던 용어는 ‘과학적 의학scientific medicine’이었다. 이 표현은 기존 의학이 비과학적이라는 함축을 내포했기에 수용되기 쉽지 않았다. 생명 과학의 발전을 대중에게 알린 많은 성과들은 의과학의 성과였다. 항생제나 장기 이식을 가능하게 한 의학의 발전에 비과학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는 없다. 증거기반의학은 이런 성과만으로는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 않은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증거기반의학을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과학’이라고 부른다면 오해를 살 만하다. 

최근 이오아니디스는 증거기반의학이 ‘납치’되었다고 주장했다. 증거의 품질을 평가할 때 무작위 시험 또는 메타 분석 수행에만 주목하면, 다른 여러 바이어스 유발 요소들이 무시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허점을 노리고 특별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왜곡된 연구를 품질이 높은 연구로 위장할 경우 그 시도를 막기는 어렵다. 특히 생물학적 개연성이 없는 가설에 대한 임상연구조차도 증거기반의학은 품질이 높은 연구로 평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증거기반의학은 비교 임상연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방법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운동으로 평가되며, 결국 중보기도에 대한 임상연구(10장 3절 1항)처럼 생물학적 개연성이 없어 기초과학에 의해 지지받지 못하는 연구도 정당한 연구로 취급할 수 있는 방법론적 운동으로 평가된다.

기얏이 ‘과학적 의학’ 대신 ‘증거기반의학’이라는 말을 택했다는 사실, 그리고 증거기반의학의 ‘납치’에 대한 우려는 증거기반의학을 과학과 등치시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반면 임상연구 보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면, 대중은 과학과 증거기반의학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인과 대중의 상반된 반응을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6.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그림 1.1에서 살펴본 증거 위계에서 출발하자. 증거기반의학은 비교임상연구를 환자에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가장 적절한 증거로 평가하며, 메커니즘 추론은 그보다 못한 증거로 평가한다. 메커니즘 추론에 대한 저평가는 하윅의 <증거기반의학의 철학> 이전에는 충분히 정당화되지 않았다(1장). 여기서는 메커니즘 추론에 대한 저평가를 정당화할 만한 이유를 검토하여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어떻게 보아야 적절한지에 대해 조금 더 논의하겠다. 

증거기반의학이 메커니즘 추론을 저평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메커니즘 추론이 임상연구 결과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메커니즘 추론과는 달리 임상연구는 환자에서의 결과와 간극 없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하윅이 지적하듯(10장), 첫 번째 논거만으로 메커니즘 추론을 저평가할 수는 없다. 양측이 충돌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느 편이 더 우월한 논거라고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논거는 임상연구가 환자에서의 결과와 간극이 없다는 데 있다. 이런 논거는 환자에서의 결과에 대한 하윅의 분석을 활용하면(3장) 정당화된다. 임상연구는 환자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여 수행되므로 효과 크기를 나타낼 다양한 변수를 사용할 수 있으며, 또한 이 지표를 활용하여 여러 치료의 효과 크기를 비교할 수도 있다. 특히 플라세보 대조시험은 플라세보와 시험약의 효과 크기를 비교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반면 많은 학자들이 메커니즘 추론이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외적 타당도’ 문제, 즉 어떤 연구 결과가 실제 임상에서 성공적으로 적용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도 메커니즘 추론은 그리 훌륭한 해결책은 아니다. 과학을 통해 얻은 결과가 임상에서 실제로 효과가 있는 약물로 이행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10장 6절 3항).

물론 이러한 논거로도 메커니즘 추론에 대한 저평가를 온전히 납득할 수는 없다. 하윅의 경우,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은 저급한 증거가 아니라 훌륭한 증거로 보아야 하며, 증거기반의학은 이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다만 메커니즘 추론은 환자에서의 결과와 간극이 크고 비교임상연구는 간극이 작다고 평가하는 이유를 정리해 평가한 작업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하윅의 연구로도 답변이 되지 않은 상태이며, 향후 연구 과제로 남긴다. 

다만 꼭 짚고 넘어갈 만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다. 이른바 ‘증거기반의학의 납치’ 문제다. 대체의학과 같이, 생물학적 개연성이 낮은 의료 행위를 시도하는 일부 의료인에게 증거기반의학이 통계적으로 정교하게 꾸민 증거를 제공할 수 있는 우회로가 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증거기반의학의 개념을 잘 분석해 보면, 이에 응답하는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는 어렵지 않다.

가장 중요한 지적은, 앞서 ‘증거’ 개념을 상세하게 분석한 결과에서 나온다. ‘증거’는 단순히 비교임상연구의 결과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이 말은 환자에서의 효과에 대한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논거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증거’에는 과학에 기반을 둔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하윅의 제안처럼,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은 임상연구와 함께 어떤 가설의 입증 수준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하임릭 구명법이 기반을 둔 메커니즘 추론은 그것만으로도 효과를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이 무엇인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다만 실험실 연구를 통해 획득한 치료 방법이 기대했던 것보다 환자 관련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경험적 증거(10장 6절), 그리고 젬멜바이스 사례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사례에서처럼(10장 부록 표 3) 생물학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되었던 가설이 실제로는 참이었던 여러 역사적 사례에 비춰 볼 때, 생물학적 개연성이 임상연구 가설이기 위해 반드시 만족해야 할 조건이어야 한다는 요구는 의외의 발견을 막는 족쇄로 작동할지도 모른다. 생물학적 개연성을 임상연구 가설을 평가할 때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 조건은 제한적으로만 유효하고, 증거기반의학에 따른 연구가 향후에 다룰 가설은 생물학적 개연성이 있는지 여부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례에 비춰 보았을 때 과도하다.


7.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증거기반의학과 과학 사이의 차이를 대부분 모른다. 앞서 제시한 치실 사례에서, ‘과학’이라는 표현은 어떤 가설의 참을 보증하는 방법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과학’의 이런 용법은 증거기반의학의 장점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도움이 될 만큼 정교하다고 할 수 없다. 임상연구 가설을 입증할 때 실제로 사용되는 방법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치실 사례에 대한 언론 보도와 대중의 반응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 실제 체계적 고찰연구에 대한 언급이 없음. AP 통신 기사의 근거가 된 체계적 고찰연구펍메드 링크가 본래 AP 통신 기사에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기사를 읽거나 논평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실제 연구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국내 언론은 AP 통신 기사와는 달리 펍메드 링크나 논문 본래 링크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비록 명시적으로 ‘증거기반의학’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AP 통신 기사는 결국 증거기반의학에 따른 치과 의료가 제공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연구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반응은 증거기반의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증거기반의학에 따르면 사용할 수 있는 증거를 최대한 활용하여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도 체계적 고찰 연구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반응이 많았다. 또한 국내 언론은 이번 논란의 초점인 치실의 효과에 대한 체계적 고찰 연구를 소개하지 않아 독자들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증거기반의학에 의해 얻은 연구를 전문가만의 전유물, 즉 전문가가 아니면 전모를 알아보기 힘든 연구가 아니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연구로 만들어야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증거기반의학의 구조를 알고 그 결과물을 실제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이들 연구의 내용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이 줄어들 것이다. ‘과학’이라는 표현 속에 구체적인 방법론이 가려져 있는 상태를 내버려 두지 말고, 임상연구가 내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공중보건과 의학적 판단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증거기반의학 문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의학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기자는 코크란 연합에서 제공하는 자료와 같이 우리말로 제공되는 자료들을 참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8. 결론


철학의 정신과 증거기반의학의 정신은 서로 통한다. 철학은 통념을 의심하고, 체계적으로 반성하는 학문이다. 증거기반의학은 가설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가용한 증거를 모두 감안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증거기반의학이 현재 의료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무엇이든,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을 둘러싼 구체적인 논쟁들이 어떻게 진행되든지 간에, 증거기반의학은 그 정신만으로도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에 걸맞은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고심했고 그 결과를 번역어와 역주로 남겼다. 그러나 그마저도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우리는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특히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을 구성 낱말별로 꼼꼼히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시도, 그리고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설명하고 평가하기 위한 시도는 증거기반의학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비록 여기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 이뤄질 논의가 빈 틈을 채워줄 것이다.

‘증거기반’ 운동은 의학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과학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증거기반정책’은 영미권에서는 학계뿐만 아니라 당국의 실제 정책까지도 결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통념을 의심하고 관련 증거를 모두 사용하여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정신을 공유한다. 의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증거기반’ 운동이 퍼져나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우리 몸에 대한 여러 말,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여러 말은 아직 충분히 증거에 기반을 두지 않고, 또 우리는 충분히 의심하지도 않으며 사용할 수 있는 증거를 조직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도 못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실제로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지적 운동이 필요하며 이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이뤄져야만 한다.

의학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함으로써 시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기대수명을 늘리는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의학계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개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려 한다면 다양한 차원에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의학계의 지형을 실질적으로 바꾸어온 ‘증거기반’ 운동이 한 가지 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의학계는 증거기반 운동의 발원지이면서 동시에 그 방법론이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진 영역이다.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가 ‘철학의 부재’에 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식의 결과중심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의 배후에 놓여 있는 그 정신에 주목해야 한다. 환자 자신의 가치에 비추어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인은 폭넓고 공정하게 증거를 수집, 종합하고 주어진 증거에 바탕을 두고 합리적으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추론을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인지에 관한 가치 판단과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든 정책이든) 대상의 가치에 대한 섬세한 감각과 증거에 대한 민감성, 요컨대 비판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다.


9. 감사의 말


2015년 3월 <역학의 철학> 번역서를 생각의 힘 출판사에서 펴내고 소개하느라 시간이 흐른 뒤 <역학의 철학> 본문에 언급된 책 한 권이 눈에 쏙 들어왔다. 존 워럴과 제러미 하윅이 증거기반의학의 방법론적 기반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 대목에, 제러미 하윅이 쓴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 참고문헌으로 나와 있었다. 역학, 철학, 과학철학을 전공한 번역진이 다시 의기투합하여 번역 작업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텍스트였다. 초교를 완성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책이 나오게 된 까닭은 대표 역자의 게으름 탓이 가장 크지만, 모든 역자 신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긴 탓이라는 소소한 변명을 남겨둔다.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 번듯한 번역서의 모양을 갖추게 된 데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의 김건형 교수와 연세대학교 인문사회의학협동과정 박승만 선생은 초교를 완성하는 독회에 참석해서 중요한 의견을 남겨주셨다. 김건형 교수와 중앙보훈병원 신장내과 김범 전문의는 편집 원고를 통독하고 번역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상세한 지적을 보내주셨다. 생각의힘 출판사 편집부 유승재 과장은 의학용어와 철학용어가 어지럽게 직교한 번역 원고를 가독성 있는 원고로 바꾸기 위해 분투하셨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출판계 상황에도 <역학의 철학>에 이어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을 번역서로 내기로 용단을 내려준 생각의힘 출판사 김병준 대표께 커다란 감사를 드린다.

<역학의 철학>이 인구집단 측면의 관련성이 인과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문답이라면,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은 무작위 시험을 통해 얻은 증거는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문답이다. 가짜 뉴스 시대에 보건의료 분야에도 만연한 가짜 정보를 가려내는 능력을 확보하는데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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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성의 전당 2018.07.11 18: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377876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를 기본적 자기 정의로 전제하고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라는 ‘존재’적인 측면의 의문을 해결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고 전제로서 여기고 있는, 그 믿음을 먼저 해체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나’는 누구이기는 한 걸까?
    정말 ‘나’는 무엇이기나 한 걸까?
    지금까지 당연시 여기고 있던 이것이 정말 ‘나’일까?

    ‘지금의 나’에 대한 믿음을 먼저 해체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해체하고 나면, 남는 것은 오직 “나는 누구인가?”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측면에서 “나는 누구인가?”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 출처 : 불멸의 자각 www.uec2018.com

    정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궁금하시면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2017년 2월 15일 자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 '통계적 유의성'을 폐지한다면'은 재현성 위기를 소재로 작성했다. 원제는 '2026년, 통계적 유의성 폐지 원년'으로 써보냈는데 바뀌었다.


미래오디세이: '통계적 유의성'을 폐지한다면

황승식(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온라인 뉴스 매체 ‘복스닷컴’은 지난 달 “2018년에는 사라져야 할 여덟 가지 잘못된 건강․과학 상식”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게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 산하 모든 과학과 보건 연방 기관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과학적 태도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매체 과학 데스크가 기획한 기사다. 유권자가 사실에 근거해 투표한다, 중독은 도덕적 실패다, 아편유사제가 만성허리통증 치료에 효과적이다, 플라세보는 쓸모없다, 비만 해결에 운동이 최고다, 동종요법이 효과가 있다, 기후변화는 “토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통계적 유의성”이 “강한 과학적 증거”를 뜻한다. 이 여덟 가지 상식이 사라져야 할 미신으로 제시되었다.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간단한 통계적 검정을 통과하면 “통계적 유의성”이 있다고 선언한다. 엄밀하게는 p값으로 정의되는 확률이 0.05 미만이면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를 얻었고 출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영가설이 참이라고 가정할 때, 관찰된(또는 더 극단적인) 결과가 일어날 확률’이라는 p값의 정확한 정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최근 몇 년 간 0.05라는 문턱값으로 얻은 결과가 매우 강한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절감하고 있다. 총알을 난사하듯이 통계적 검정을 수행해 요행으로 얻은 하나의 유의한 결과를 보고하는 p해킹도 학계에 만연해있다.


p값이 0.05 미만이면 실험 결과가 우연한 기회로 얻어졌을 확률이 5% 미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거짓 양성으로 밝혀질 확률이 5% 미만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실제로는 차이가 없는데 실험에서 차이가 있다고 나오는 확률을 거짓 양성률이라고 부른다. 실험의 거짓 양성률은 5%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문턱값을 0.005 미만으로 낮추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많은 사회과학 연구자는 결과가 재현되지 않는“재현성 위기”를 고통스럽게 인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미국통계학회는 ‘통계적 유의성과 p값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1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통계학회가 통계학의 기본적인 문제에 관해 처음으로 발표한 성명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p값은 과학적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판단하는 데 흔히 사용하는 척도지만 가설이 참이거나, 결과가 중요한지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p값을 오용하면 재현되지 않는 연구 결과가 증가하게 된다. 특히 p값이 0.05 미만과 같은 특정 문턱값을 통과했다고 해서 과학적 결론을 이끌어내거나 정책적 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미국통계학회의 성명서가 학계에 준 충격은 상당히 컸다. 성명서가 20년 전에 발표됐다면 생명공학 연구가 훨씬 발전했으리라는 만시지탄의 감회와, 이번 성명서를 계기로 연구자가 p값에 대한 회의를 품어 다양한 통계분석 방법을 사용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많았다. 반면 p값이 옳지 않으니 사용하지 말라는 주장은 자동차 사고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 운전을 하지 말라는 억측과 다름없으므로, 통계를 요리책처럼 취급하지 말고 과학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신중한 반응도 있었다.


0.05라는 통계적 유의수준은 확률통계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개념이다. ‘미국심리학자’ 1982년 5월 호에 실린 해설 논문에 따르면, 현대 통계학의 아버지인 로널드 피셔가 ‘농업부저널’ 1926년 33호에 발표한 논문이 현대적 기원이다. 관행적으로 적용해온 확률오차의 3배가 표준편차의 2배와 같으므로 약 4.56%로 계산되는데, 피셔가 설명하기 쉽게 반올림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 있게 나와 있다. 피셔가 욕조 안에서 오른쪽 발가락을 문지르다 5가 좋아 보여 문턱값을 0.05로 결정했다는 설명도 간간히 보이지만 도시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피셔의 논문과 저서 어디에도 0.05를 기준으로 과학적 결론을 내리라는 문장이 등장하지 않는다. 0.05라는 유의수준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데는 후대의 학문적 관행 탓이 크다.


2026년은 피셔가 현대적 의미의 통계적 유의성 개념을 창안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연구자는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구시대적 표현으로 과학적 중요성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은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연구 결과를 맹목적으로 전달해서는 안 된다. 물어야 할 질문은 통계적으로 유의한가가 아니라 효과크기를 드러내는 실제로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여야 한다. 현대 과학을 근본에서 흔드는 재현성 위기가 2026년에 해소되리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이미 학계 일각에서 통계적 유의성 개념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2026년을 통계적 유의성 폐지의 원년으로 선언한다면 통계학의 역사 연표에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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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1일 자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 2035년, 평균의 종말'은 스티글러 선생의 책자 1장의 내용을 골자로 일부 내용을 덧붙였다. 후반부 증거기반의학은 친절한 설명을 붙이지 못해 아쉽다. 지난 원고가 분량이 부족하다고 해서 이번 원고는 충분히 써보냈더니 케틀레 선생의 조직가로서의 족적에 대한 문장 일부가 편집됐다.


미래오디세이: 2035년, 평균의 종말

황승식(서울대교수·보건대학원)


통계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시카고대 스티븐 스티글러 교수가 지난 해 발간한 「통계학을 떠받치는 일곱 기둥 이야기」는 현대 통계학의 학문적 근간을 자료 집계, 정보 측정, 가능도, 상호 비교, 회귀, 설계, 잔차라는 기둥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첫째 기둥으로 제시하는 자료 집계는 19세기까지는 관측의 결합이라고도 부르던 평균의 계산이다. 초등학생도 계산할 수 있는 간단한 산술 평균이 현대 통계학을 세운 첫째 기둥이라는 지적은 획기적이다. 스티글러 교수는 평균을 계산하기 위해 여러 관측에서 실제 정보를 얻으려면 정보를 버려야 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개별 측정값을 무시하고 평균과 같이 하나의 요약값으로 제시하는 방식이 등장한 역사는 얼마나 오래됐을까?


피타고라스학파는 이미 기원전 280년에 세 가지 평균, 즉 산술 평균, 기하 평균, 조화 평균의 존재를 증명했다. 서기 1000년 무렵 철학자 보에티우스가 피타고라스학파의 평균 세 가지를 포함해 평균의 개수를 열 개로 늘렸다. 이때까지 사람들은 평균을 철학적 의미, 선분의 비례, 음악의 음률을 다루었고 자료 요약 목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1500년대 초반 야콥 쾨벨이 쓴 측량서 세밀화에는 성인 남성의 발 길이인 피트를 측정하는 모습이 나온다. 사람마다 발 길이가 다르므로 시민 대표 열여섯 명을 모아 한 줄로 세워 16피트를 1로드로 결정했다. 로드를 정하고 열여섯 구획으로 똑같이 나눴으므로 이 구획이 성인 남성 발 길이 열여섯 개의 산술 평균이지만 책에 이 용어가 나오지는 않았다.


1635년 그레셤대 천문학과 헨리 겔리브랜드 교수는 티코 브라헤가 만든 표에 근거해 나침반으로 진북을 찾는 데 필요한 보정값인 자침 편차 계산값 열한 개를 얻었다. 자침 편차 자료를 정리한 결과 표에 최초로 산술 평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실제로 겔리브랜드가 산술 평균이라고 제시한 값은 최댓값과 최솟값의 평균값이라 엄밀하게는 현대적 의미의 산술 평균과 다르지만 이미 쓰던 방법에 이름을 붙인 업적이 크다. 고대인도 산술 평균을 알았지만 겔리브랜드 이전까지 누구도 저작물에 계산법의 명칭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1660년 무렵 과학자 로버트 보일이 측정을 결합하는 방식의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16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산술 평균은 여러 출판물에 등장하고 공식 인정을 받게 됐다.


18세기 들어 평균 개념은 학계에 빠르게 확산됐다. 1755년 토머스 심슨은 메이클스필드 백작에게 보낸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편지에서 평균의 유용성과 오차 곡선의 개념을 역설했다. 1777년 다니엘 베르누이는 다른 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평균 계산이 규범이 됐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1809년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곡선으로도 유명한 정규 곡선을 유도하는데 평균이 가장 좋은 추정량이라는 가정을 이용했다. 1810년 마침내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표본의 평균이 인구집단의 평균을 따라 정규 분포한다는 중심 극한 정리를 창안해 현대 통계학의 중요한 개념을 다졌다.


1830년 네덜란드 왕국에서 독립한 신생 벨기에 왕국은 행정조직은 개편하고 국가 차원의 통계조사를 계획했다. 체계적인 조사 수행을 위해 내무장관 리츠는 자신의 친구 아돌프 케틀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많은 수를 관찰하고 수집한 다음 특정한 법칙을 찾아내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던 수학자 케틀레는 엄청나게 열정적인 조직가이기도 했다. 1833년 영국을 방문해 통계지부 설치를 도왔고, 1841년 벨기에로 돌아와 통계중앙위원회를 결성했으며, 1853년 최초로 국제통계학회를 조직해 통계 관련 간행물의 통일된 방법과 용어를 개발하기 위한 국제 협조를 호소하기도 했다. 케틀레는 오늘날 비만 측정 지표인 체질량지수를 개발한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평균인’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업적이 더욱 중요하다. 평균인은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신체적 특성뿐만 아니라 자살 성향과 같은 특성까지도 평균을 냈을 때 그 평균값들로 이뤄진 가상의 존재를 말한다. 케틀레는 평균인이 사회의 가장 전형적인 존재로서 사회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보았고, 평균인의 이상화가 사회에 대한 예술과 문학의 대표성을 더욱 강화하여 정치가들이 여론에 귀를 기울여 정치를 발전시키리라 믿었다.


케틀레의 평균인 개념은 이후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1840년대 앙투안 오귀스탱 쿠르노는 평균인이 매우 기괴한 모습이라고 비판하며, 직삼각형을 모아 변마다 평균을 낸다면 삼각형이 모두 닮은꼴이지 않은 한 결과물은 직삼각형이 아니라고 비꼬았다. 1865년 클로드 베르나르는 의학과 생리학에 평균을 쓸 경우 반드시 오류가 생긴다며, 어떤 남성의 소변을 24시간 모두 모아 분석한 평균은 존재하지 않는 소변을 분석한 결과로, 허기질 때 나오는 소변과 소화시킬 때 나오는 소변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케틀레는 이런 비난에 굴하지 않고 집단을 대표하는 전형을 평균인이 잡아내므로 집단의 표본을 비교 분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평균인 개념은 자연과학의 방법을 사화과학에 활용하는 이론적 구성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 등장한 증거기반의학은 개별 환자의 치료 결과가 아니라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거친 치료 결과를 최고 수준의 증거로 인정하자는 의학계의 운동이다. 주요 언론의 건강 지면을 도배하며 대중의 이목을 끄는 신약 효과 기사가 대부분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 결과에 기대고 있다. 신약의 효과 검증은 모집한 대상자를 치료군과 대조군에 무작위 배정하고 치료약과 대조약을 투약한 후 두 군의 평균적인 치료 성과를 통계적으로 비교하는 과정을 거친다. 대상자마다 개별 특성이 모두 다르고 효과 크기도 모두 다르지만 평균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으면 신약의 효과를 인정받지 못하고 시장에 출시할 수도 없다. 개인별 맞춤형 진단과 치료로 대표되는 정밀의학의 시대에는 개인별 임상시험 수행 결과를 종합하는 이른바 다수 1인(N-of-1) 임상시험이 확산될 전망이다.


평균으로 대표되는 자료 집계는 본질에서 정보 버리기, 즉 조지프 슘페터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 활동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평균을 계산하다보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에 어긋나거나 심지어 훼손시키는 정보를 원칙에 따라 버려야 한다. 어떤 문제에서는 관련 정보를 하나도 잃지 않는 자료 요약인 충분 통계량 개념을 쓸 수 있지만 빅데이터 영역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버드대 토드 로즈 교수는 2016년 발간한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분석하고 나서 집계하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의 자료 축적과 분석 방법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겔리브랜드가 산술 평균이라는 용어를 제안한 지 400주년이 되는 2035년은 통계학 연표에 평균의 종말을 선언하는 연도로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대니얼 R. 헤드릭 (2011), 정보화 혁명의 세계사, 너머북스.

스티븐 스티글러 (2017), 통계학을 떠받치는 일곱기둥 이야기, 프리렉.

조재근 (2017), 통계학, 빅데이터를 잡다, 한국문학사.

Simon Raper (2017 December), The shock of the mean, Significance.

Todd Rose (2016), The End of Average, Harpe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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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필진 한 명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준비없이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 필진에 합류하게 됐다. 두 달에 한 번 미래에 대한 잡설을 풀어놓는 일은 고역이다. 2017년 10월 26일 자 '미래오디세이: 2054년, 통계맹 퇴치 원년'은 기거렌처 선생의 책자 내용을 가져와 통계맹 퇴치라는 희망섞인 미래에 약간의 불안을 뿌렸다. 초고 분량이 짧다는 연락을 받고 두어 문단을 급히 추가하느라 도입부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미래오디세이: 2054년, 통계맹 퇴치 원년

황승식(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


때는 2054년, 소르본대학 대강당에서 수세기 동안 인류를 역병처럼 괴롭혀온 지적장애인 통계맹 퇴치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확률론 등장 400주년, 조지 불의 ‘사고 법칙’ 발간 200주년, 레너드 새비지의 ‘통계학 기초’ 발간 100주년을 동시에 기념하는 연도였다. 이 행사는 유럽연합 의장과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공동 주최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통계맹”이라는 주제로 패널 토론을 진행했으며, 사회는 소르본대학 경제학자 에밀 에쿠 교수가 맡았다. 패널로 섭외된 베를린에서 온 정치경제학자, 베이징에서 온 통계학자, 스탠퍼드에서 온 심리학자, 파리에서 온 과학사학자가 두 시간에 걸쳐 통계맹의 등장과 퇴치에 이르는 역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치경제학자가 먼저 2007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통계적 사고는 점점 복잡해지는 세계에서 필수불가결한 덕목이 되고 있으므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함을 지적한 최초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통계학자는 메르켈 총리가 아니라 마오 주석이 일찍이 1940년대에 혁명 동지들에게 숫자 두뇌를 갖춰야 하고 기초 통계를 알아야 함을 강조했지만 문화혁명으로 인해 지체됐다고 반박했다. 심리학자가 즉각 ‘타임머신’을 쓴 현대 SF 소설의 아버지인 허버트 조지 웰스가 이미 20세기 초에 통계적 사고는 시민권의 필수 요소임을 강조했다며 되받아쳤다.


확률론이 등장한 1654년, ‘사고 법칙’이 발간된 1854년, ‘통계학 기초’가 발간된 1954년, 그리고 통계맹이 퇴치된 2054년까지 1754년을 제외하고 예외 없이 통계학에서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과학사학자는 1761년에 사망한 토머스 베이즈가 아마도 1754년에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된 유명한 정리를 발견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부연 설명했다. 심리학자가 통계맹이 이름을 얻게 된 해는 1988년으로, 존 앨런 파울로스 뉴욕대 교수가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발간하면서 대중에게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언급하자, 과학사학자는 퓰리처상 수상작인 ‘괴델, 에셔, 바흐’의 저자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인디애나대 교수가 1982년 발표한 문헌을 파울로스 교수가 인용하는 일을 깜빡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미국에서 DNA 검사법이 도입된 지 서른 해가 지난 2016년에야 국제사법연합이 법정에서 확률 대신 자연빈도에 기초한 소통을 의무화시켰고, 2020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노력으로 모든 의사가 자연빈도를 익혀 검사 결과에 해석에 필요한 조건부확률을 이해하게 됐다. 세계보건기구는 회원국에서 투명한 위험 소통을 목표로 하는 항정신오염법을 통과시켜, 의과대학생이 상대위험도가 아니라 절대위험도로 위험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은 통계적 사고에 기반한 계산맹 평가 문항을 포함시켰고, 15세 학생 95%가 통과한 어떤 국가는 통계맹 퇴치를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통계맹 퇴치를 위한 교육 훈련에 약 100억불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는 추정도 발표됐다.


위는 저명한 인지심리학자인 게르트 기거렌처 막스플랑크협회 인지개발연구소장이 2008년에 발표한 『인류의 이성: 인간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대처하는가」라는 책 에필로그에 실린 가상 대담의 일부다. 기거렌처 소장의 희망섞인 기대와 달리 2017년 현재 세계는 왜곡된 정보로 가득한 가짜뉴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은 주요 언론이 365일 24시간 가짜뉴스를 쏟아내고 있다는 표현을 SNS에 여과없이 내보냈고, 전직 한국 대통령을 탄핵시킨 스모킹건인 태블릿피시가 발견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증거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직 많다. 대중은 모든 숫자와 통계는 당연히 조작됐다고 믿고 있다. 1천명을 무작위로 뽑아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는 겨우 1천명이 어떻게 5천만명을 대표하는 의견이냐는 비난에 무력하다. 백신 음모론에 심취한 어떤 한의사는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라는 카페를 만들어 예방접종 거부를 선동하기도 했다. 분노에 찬 어떤 네티즌은 그렇게 큰 아이들이 나중에 ‘약 안쓰고 어르신 모시기(안어모)’를 만들어 봉양해도 되겠느냐는 촌철살인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톰 니콜스 미국 해군대학교수는 2017년 발표한 「전문가와 강적들이라는 책에서 전문가는 투명한 소통에 기초한 교육을 수행할 책임이 있고, 대중은 배워서 알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이미 1938년에 발표한 소설 ‘월드 브레인’에 “오늘날 일정한 기본 통계 교육은 읽기와 쓰기만큼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항목이 되고 있다.”는 명문을 남겼다. 전문 지식조차 간단한 키워드만 검색 엔진에 입력하면 셀 수 없이 많은 결과가 쏟아져 나온다. 인터넷 시대 교육은 검색 능력이 아니라, 정보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최근 헌법 개정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헌법 내 과학기술이라는 용어 사용과 과학기술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에 관한 의견 등을 조사해 과학기술인의 개헌 의견을 알리기 위한.행동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교육의 권리와 의무를 천명한 현행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와,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와 같은 조항을 담고 있다. 개정 헌법의 교육의 권리와 의무 조항에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 통계맹 퇴치를 선언적으로라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2054년은 통계맹 퇴치 원년이 아니라 민주주의 폐기 원년으로 역사에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톰 니콜스 (2017), 전문가와 강적들, 오르마.

Gerd Gigerenzer (2008), Rationality for Mortal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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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5일 창비주간논평에 기고한 글이다. 무슨 이유인지 창비주간논평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 기사 제휴 중인 평화뉴스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메르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파일

[창비주간논평] 황승식 / 국민건강도 못 챙긴 정부, 의료수출을 꾀하려는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라는 영화가 있다. 1989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26살에 만들어 그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적어도 제목을 아는 사람은 많다. 이십여년 전 하숙방 근처 비디오대여점에서 친구 녀석과 나는 제목만 믿고 이 영화를 빌렸다.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면서 살구색 속살로 화면을 가득채운 에로 영화를 보게 되리라는 기대는 산산히 부서졌다. 앤디 맥도웰과 제임스 스페이더의 풋풋한 젊은 시절을 본 지루한 영화였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메르스 유행이 확산되던 지난 6월 중순 중앙메르스역학조사위원회에 합류하게 됐다. 역학조사관이 작성해 제출한 역학조사서를 취합 분석하다보니 기억 속에 제목만 남아 있던 오래된 영화를 떠올리게 됐다. 유행은 시작됐고, 환자의 진술은 엇갈리며, 생존을 위해 거짓말도 피하지 않았다. 환자의 진술만으로 메르스 감염 경로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 폐쇄회로티비에 찍힌 비디오파일 분석이 필수가 됐다. 어떤 환자는 유력한 감염 경로를 애써 부인하다 카드 사용 내역에 근거한 폐쇄회로 화면을 보여주자 그제서야 사실을 말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국민건강도 못 챙긴 정부, 의료수출을 꾀하려는가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은 국외로부터 국내 유입을 막는 검역이 유행을 막는 첫 번째 단계다. 방역 당국은 이 단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 환자들은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따라 곧장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응급실을 숙주 삼아 의료인과 다른 환자를 감염시키기 시작했다. 6인실에 환자, 보호자, 간병인, 내원객, 의료진까지 쉴새없이 드나드니 병실이 아니라 메르스를 나르는 운송수단이 됐다.


감염병의 유행을 막는 방역은 근대 국가의 핵심 업무임에도 정부는 여전히 취약함을 드러냈다. 유언비어를 막는다면서 정보 공개는 소홀했다. 화려한 첨단 의료의 그늘에는 병원 감염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무능한 보건이 숨겨져 있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 당국은 해킹 프로그램으로 불법 감청을 수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인 건강은 못 챙기고 정보나 들여다봤다면 근대 국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메르스 유행은 사실상 종식 선언만 앞두고 있다. 정부는 메르스 유행 당시 보건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꺼냈던 정책을 대부분 거둬들였다. 예방의학계가 요구한 질병관리청의 승격 신설은 쑥 들어갔고, 병원계가 요구한 메르스 손실 보상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질병관리본부장의 차관급 격상과 병원 내 감염관리료의 소폭 인상이라는 생색으로 채워졌다.


신임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는 의사 출신으로 병원정보화에 많은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의료서비스는 창조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핵심 컨텐츠”(신년 기자회견)라거나 “해외 의료수출 활성화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집권 후반기에 의료서비스 분야의 창조경제 실현과 의료수출 활성화 정책을 구현할 인물을 찾은 셈이다.


정부의 거짓말은 국가적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결국 이번 인사를 통해 메르스 유행을 통해 민낯을 드러낸 부실한 국가방역체계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의지가 없음을 선언했다. 해결하기 어렵고 성과도 내기 어려운 개혁은 치워두고, 집권 초기부터 밀어붙인 의료서비스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이겠다는 포석이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중동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메르스 유행을 경험한 국가의 의료서비스를 환영하며 수입할 국가는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이다.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에는 거짓말은 알코올 중독과 같아서 완치가 어렵다는 대사가 나온다. 작년 세월호 사고 이후나, 올해 메르스 유행 이후나, 정부 당국자의 거짓말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메르스 환자 한 명의 거짓말은 역학 조사를 힘들게 하고 유행을 연장시켰을 뿐이다.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의 거짓말은 국민의 신뢰를 거둬들여 메르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난을 예비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황승식(인하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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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심수봉, 나는 야구광, 1987년. [링크]


1. 그랬거나 말거나 1982년의 베이스볼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 결승전에서 좌측 폴을 맞춘 한대화 선수의 결승 홈런을 따라한다며 셀 수 없이 많은 공을 동네 전봇대를 향해 날렸고, 비례하여 옆집 유리창은 깨져나갔다. 고교야구 광팬이었던 큰누님의 강권으로 해태 타이거즈 어린이 회원에 가입했다. 화니백화점 5층 모집 코너에 찾아가 연회비 5천 원을 내고 모자, 점퍼, 팬북, 사인볼과 라디오까지 받아왔다. 빨간색 타이거즈 어린이 회원 점퍼와 야구 모자는 교복과 같았다. 디자인이 예뻤던 베어스 점퍼와 모자를 쓰고 왔던 철준은 애꿎은 시비 끝에 다음 날 다른 옷을 입고 와야 했다.[각주:1]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광주학살이라는 원죄를 저지른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탓에 비판의 목소리도 컸지만 지역 연고 고등학교 야구의 폭발적 인기를 고스란히 흡수해 연착륙했다. 해태 타이거즈는 6개 구단 중 가장 적은 14명의 선수로 시작했다. 김성한은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10승과 13홈런을 기록했다. 김봉연은 발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하고도 타석에 들어서 홈런을 기록했다. 소수정예로 고군분투 끝에 원년 시즌 4위를 차지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승률 .188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원년 우승을 차지한 OB 베어스 상대 16전 전패라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각주:2]


1983년 전기리그는 너구리 장명부 투수를 영입한 삼미 슈퍼스타즈와 코끼리 김응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해태 타이거즈가 불꽃 튀는 선두 경쟁을 벌였다. 그해 6월 7일 두 팀의 전기리그 마지막 3연전이 무등경기장에서 열렸다. 2.5 경기차로 선두 삼미를 뒤쫓던 해태는 초조했다. 이상윤, 김성한, 주동식을 내세워 3연전을 쓸어담은 해태는 반경기차 선두로 올랐다. 내친김에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그해 가을 후기리그 우승팀 MBC 청룡을 4승 1무로 제압하여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다. 훗날 광주팬은 그해 3연전을 ‘광주대첩’이라고 이름붙여 기억하고 있다.[각주:3]


2. 그랬거나 말거나 1988년의 베이스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렸다. 개막식이 열린 9월 17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토요일 오전 친구들과 탁구 한 판을 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후 티비 앞에 앉았다. 아이가 굴렁쇠를 굴리고, 성화대에서 비둘기를 태우고, 코리아나가 부르는 ‘손에 손잡고’를 친구들과 함께 손에 손잡고 목청껏 불렀다. 망치를 들고 노래를 가르쳤던 음악 선생님의 반복 학습 효과는 확실했다.


1988년 한국시리즈 우승팀도 해태 타이거즈였다. 출범한 지 채 십 년이 안 된 시점에 최초로 3년 연속 우승과 4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타이거즈 투타의 기둥인 선동열과 김성한의 활약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선동열은 최우수 평균자책점과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김성한은 홈런, 타점, 최다 안타, 최고 장타율 타이틀 4관왕과 함께 시즌 MVP를 수상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신흥 강자로 등장한 빙그레 이글스를 맞아 4승 2패로 꺾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은 태평양 돌핀스로 바뀌었다. 개막 직전인 1988년 3월 9일에서야 만년 꼴찌팀인 청보 핀토스를 인수한 탓에 전력은 바닥이었다. 시즌 초반 1승 13패라는 부진 끝에 창단 감독을 맡은 강태정 감독이 경질되고 임신근 감독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치뤘다. 시즌 종료 후 OB 베어스 감독에서 물러난 김성근 감독을 영입해 다음 해인 1989년 시즌 3위라는 호성적을 거둬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최초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3. 그랬거나 말거나 1998년의 베이스볼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DJP 연합에, 이인제 탈당에, IMF 경제위기라는 상황에서도 이회창 후보를 39만여 표 차로 간신히 누르고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역사 상 최초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이듬 해 1998년 한국 프로야구는 경제위기 직격탄을 맞은 재벌그룹이 대부분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 선수단 운영비가 줄어 선수들 사기가 많이 꺾였다. 잠실 야구장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경기를 리드하던 후반 3루측 원정 관중석에서 어김없이 울려퍼지던 ‘목포의 눈물’이 사라진 해도 이 무렵이다.[각주:4]


모그룹인 해태가 경제위기로 휘청거리자 해태 타이거즈의 위기는 가중됐다. 1996년과 1997년 2년 연속 우승의 주역인 이종범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보내자 정규시즌 5위로 마감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김응용 감독의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라는 유행어도 이 당시 만들어졌다. 시즌을 마치자마자 최연소 구원왕을 차지한 임창용까지 우승에 목마른 삼성 라이온즈에 현금 트레이드하면서 타이거즈의 흑역사가 시작됐다.


1998년 인천 연고 야구팀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였다. 재정난에 허덕인 쌍방울 레이더스 투타의 핵심인 조규제와 박경완을 영입하고, 정민태라는 에이스를 필두로 선발진 5인 전원이 10승 이상을 거뒀으며, 스캇 쿨바라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를 클린업에 넣은 결과는 당연하게도 정규시즌 1위 성적이었다. 한국 시리즈에서는 4승 2패로 LG 트윈스를 꺾고 창단 첫 우승과 함께 인천 연고 야구팀 최초로 프로야구 우승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4. 그랬거나 말거나 2009년의 베이스볼


2009년 4월부터 5월까지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 ‘베쓰볼 인천 인천야구 백년사’ 전시회가 열렸다. 인천 야구 100년사를 정리하고, 인천 야구의 우수성을 재조명하자는 취지였다. KBO, SK 와이번스, 인천고, 동산고 등 12곳의 개인, 기관, 학교로부터 300여 점의 자료를 대여해 전시했다. 인천을 연고로 하는 SK 와이번스가 김성근 감독의 지도 아래 2007년과 2008년에 이어 한국시리즈 3년 연속 우승을 기원하며 2009년 시즌의 개막을 며칠 앞두고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가 시작하자마자 궁금해서 한 번, 아내와 돌을 갓 넘은 첫째를 데리고 한 번, 지도학생들과 한 번, 세 번이나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회 물품 중 일부는 문학구장 인근 신기시장 야구역사박물관에 옮겨져 전시 중이다.


2001년 광주에 자동차 공장이 있던 현대-기아차 그룹이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해 KIA 타이거즈로 재탄생했다. 김성한 감독의 지도 아래 2002년과 2003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나 최하위를 차지하는 흑역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조범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년 차인 2009년 시즌 초 김상현을 트레이드하여 메이저리거 출신 최희섭과 함께 CK포를 구축했다. 로페스와 구톰슨이라는 준수한 외인 선발 듀오에 윤석민과 양현종이 가세해 선발진도 탄탄했다. SK 와이번스의 막판 추격을 따돌리고 12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조범현 감독은 한국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우주의 기가 타이거즈를 감싸고 있다”는 야구계에서 드문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SK 와이번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두 자릿수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시리즈 최종전 끝내기 홈런은 프로야구 역사가 한국보다 훨씬 긴 미국에서도 한 번밖에 없고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다. 해태 타이거즈 어린이 회원 1기라는 자랑이 희미해지고 그깟 공놀이에 일희일비하냐며 자책하던 30대 중반의 청년은 잠실야구장 외야 상단에 떨어지는 백구의 궤적을 화면으로 주시하며 굵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각주:5]


5. 그랬거나 말거나 2017년의 베이스볼


트레바리 읽을지도에서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는다길래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기록은 사실 부끄러운 항목이 많다. 부끄러운 기록도 역사고 자랑스런 기록도 역사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부끄러운 기록을 세우고, 현대 유니콘스가 자랑스런 기록을 세운 숭의야구장(구 도원야구장)은 해체돼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 변모했다. 인천행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도원역 정류장에 정차하면 지하철 안에서도 경기장의 웅장한 날개를 볼 수 있다. 축구 전용 경기장 어디에서도 프로야구 초창기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점은 아쉽다. 백년 한국 야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집약된 동대문야구장도 2007년 철거되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바뀌고 말았으니 숭의야구장의 운명은 이미 그때 예정된 셈이다.[각주:6]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소설 속 산물이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마지막 팬클럽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KIA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 팬카페는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2017년 프로야구는 초반 KIA 타이거즈의 선두 질주와 SK 와이번스의 홈런 기록으로 팬심을 사로잡고 있다. KIA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는 시즌 초반 4 대 4 트레이드로 전력을 보강했다. 두 팀이 다시 한 번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을지 여부는 시즌 초반이라 예측하기 어렵지만, 강력한 선발진을 갖춘 타이거즈와 막강한 홈런포로 무장한 와이번스의 대결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두 팀은 오는 7월 4-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3연전을 가질 예정이다. 오는 3연전에는 가족과 함께 문학구장 외야 원두막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신기시장에 들러 인천야구박물관 전시물을 구경해봐야겠다. 

  1. "[삶과 문화] 삶은 야구다: 베이스볼 키드의 생애. 한국일보 2012년 4월 14일 자" 링크: https://goo.gl/soJUPK 에 실린 문장을 재활용했다. [본문으로]
  2. 마산고에서 야구를 하다 삼미특수강 창원공장점에 취업해 공개 트라이아웃을 거쳐 삼미 슈퍼스타즈에 합류한 감사용 투수를 소재로 한 2004년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 당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영화에서 감사용 배역은 이범수가, 박철순 배역은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 공유가 맡았다. 영화가 개봉될 당시 감사용 씨는 식당 주인과 초등학교 야구감독 등을 거쳐 창원에 있는 할인마트 관리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https://goo.gl/zpxtnw [본문으로]
  3. "[야구의 추억, 일흔 네 번째] 꼴찌 ‘삼미 슈퍼스타스’의 서글픈 스타" 링크: https://goo.gl/yVWQm5 에 당시 3연전 결과가 상세히 나와 있다. 김은식 야구작가는 인천 출신으로 인천 야구의 오래된 팬이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야구의 추억> 시리즈는 2009년 동명의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본문으로]
  4. 김은식 야구작가의 역작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에 역사의 한 장면으로 소개되고 있다. [본문으로]
  5.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을 분석해 당시 SK 와이번스 김정준 전력분석팀장과 경향신문 이용균 야구기자가 <야구멘터리 위대한 승부>라는 단행본으로 펴낸 바 있다. [본문으로]
  6. 박준수 사진작가가 2007년 철거를 앞두고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 들러 동대문운동장의 마지막 모습을 찍은 사진에 김은식 야구작가가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글로 정리한 사진집 <동대문운동장: 아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가 2012년에 나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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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 최신 호에 조엘 슈워츠 교수(하버드대 보건대학원)가 학술지를 발간하는 국제역학회를 대표해 환경보호청장 지명자 스콧 프루잇 지명을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길래 급히 옮겨두었다. 불행히도 지난 2월 17일 미국 상원은 프루잇 지명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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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정치, 그리고 건강: 임계점에 이른 환경보호청

국제환경역학회를 대표해 Joel Schwartz가 씀.


1970년 공화당원인 Richard Nixon 대통령이 초당적 지지를 얻어 미국 환경보호청을 설립했다. 깨끗한 대기법과 안전한 식수법과 같은 미국 국민의 건강을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중심 법안도 비슷하게 초당적 지지를 누렸다. 1980년대 초부터 규제에 대한 이데올로기 측면의 반대가 늘어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1980년대 야당인 민주당은 오염 통제 비용을 들여 건강 영향이 적다는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와 같은 반대를 위해 일반적으로 더 많은 과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합세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과학은 끝났고 영향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 주장은 지지할 수 없게 됐다.

 

처음에는 2.5 마이크로미터 이하 미세먼지, 그리고 좀더 최근에는 오존이 조기 사망과 심근경색증을 포함해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폐렴, 심장마비, 뇌졸중 등으로 인한 입원도 비슷한 관련성을 보였다. 건강 영향에 끼치는 추정값은 크다. Fann 등이 환경보호청의 과학자문위원회가 조사한 용량-반응 곡선을 이용해 추정한 결과,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이 13만 명, 비치명적 심근경색증이 18만 명, 천식 악화가 250만 명에 이른다고 조사됐다. 추정에 사용한 역학 연구 관련성은 전세계적으로 수 십 개의 코호트 연구와 수 백 개의 시계열 연구에서 재현된 결과였다. 세계보건기구가 전세계 질병부담 추정에 적용한 결과, 이러한 오염 물질로 인한 조기 사망이 연간 5백만 명이 넘는다고 보고했다. 영국 왕립의사협회도 대기오염으로 인해 영국에서 매년 4만 명이 넘게 사망한다고 추정했다.

 

대기오염 물질로 인해 중개 결과(혈압, 염증, 자율신경계 기능, 혈관 내피 기능, 혈전 생성, 산소 섭취 등)가 변화한다는 관련성을 보여주는 독성학과 통제된 인간 노출 연구는 매우 많다. 비슷한 결과가 인간 패널 연구에서도 보고되어 왔다. 거주지에 실제와 가짜 입자 필터를 사용한 이중 맹검 연구 결과 입자 수준을 낮추면 염증 지표를 낮추고 염증 유발 유전자의 메틸화를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좀더 최근에는 인과 모형화 기법이 증거로 추가됐다. 이러한 증거 체계를 여기서 고찰하기에는 방대하지만, 영국이나 미국 환경보호청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외부 기구인 깨끗한 대기 과학 자문위원회와 같은 정부 기구 외에도 세계보건기구, 유엔 환경계획, 유럽연합과 같은 국제 기구가 소집한 전문가 과학 위원회가 검토한 바 있다. 미국심장협회나 미국심장학회와 같은 주요 의료단체뿐만 아니라 검토한 모든 집단은 대기오염과 건강에 인과 관계가 있다는 과학적 합의를 지지했다.

 

이 과학적 합의는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고 사람이나 기업의 행동을 제한하지 말자는 데 중심을 두는 정치적 신념과 상충된다. 이러한 신념을 지닌 집단은 과학을 공격하거나, 만일 실패할 경우 과학계 자체를 공격해야만 갈등을 풀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국제환경역학회는 과학에 기반한 환경보건기준을 설정하는 기관인 환경보호청 수장에 지명된 Scott Pruitt이 반과학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 깊은 우려를 표한다. 오클라호마 주 법무장관 재직 시 환경 규제를 집행하는 지부를 해산시켰고, 거의 모든 주요한 대기오염 규제에 대해 환경보호청을 고소한 연방주의지부로 대체했다. 저녁 뉴스에 날씨 지도를 보고, 먼 거리를 비행기로 여행하며, 이로 인해 오염을 겪은 사람이 있다는 점이 명백히 알려졌음에도 Pruitt는 주정부가 결정하도록 맡기는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Pruitt이 오클라호마 주 법무장관 재직 시 환경보호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따르면, 자신이 싫어한 규제일뿐 불필요한규제와는 매우 거리가 멀며, 인간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규제이다. 실제로 규제가 실행된 이후 연간 1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다. 이 규제에는 최근 미국에서 미세먼지 감축의 혁혁한 공을 세운 주 경계를 넘는 대기오염을 줄이는 교차주 대기오염 법안과 해산물의 수은과 대기의 먼지 농도를 줄이는 수은 및 대기 독성법안이 포함된다. 이 법안은 미국 경제의 부를 유출하기보다는 비용을 훨씬 초과하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예를 들어, 교차주 대기오염 법안에 대해 규제 영향 분석을 수행한 결과 경제적 이익이 비용의 100배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방법론과 경제성 분석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환경 경제학자로 이뤄진 외부 위원회가 검토했고, 건강 영향 역시 환경보건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 외부 위원회가 검토했다.

 

보수주의자는 환경보호 규제에 대한 이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연구 참여자의 의무 기록을 업계에 공개하지 않으면 환경보호청이 비밀 과학에 의존한 관계로 건강에 대한 증거가 미약하다고 주장하고, 환경보건을 전공한 과학자가 자문위원회에 참여하면 비록 깨끗한 대기 과학 자문위원회의 각 위원이 검토한 수천 개의 논문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자신의 연구를 검토한관계로 이해 상충을 저질렀다고 우긴다. 미국 하원은 심지어 위원회 구성원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자신의 업무에 대한 검토나 평가를 포함하는 자문 활동에 참여할 수 없지만, 실제로 이해 상충을 저지르는 업계 과학자가 검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실질적이고 관련성이 있는 전문가는 위원회의 자문 활동에 잠재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단체와 제휴 또는 대표한다는 이유로 위원회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또한 정부 연구비를 받은 과학자는 환경보호청의 과학 자문위원회 참여가 금지되고,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비영리 기금 연구비를 받은 관련 분야 전문가 모두 배제될 것이다.

 

보수주의자 관점에서 바라지 않는 결과를 산출하는 과학과 과학적 검토 기구에 대한 예산 삭감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국제암연구소에 대한 기금 출연 취소와 환경보호청 연구 예산 삭감 요청 시도가 있었다. 예산 삭감과 함께 과학자 개인에 대한 공격도 시도되고 있다. 하원 과학위원회는 최근 환경보호청을 비난하면 위원회는 환경보호청 관료가 국제암연구소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인 Christopher Portier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문장만 보면 환경보호청이 과격한 환경론자와 공모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 Portier 박사는 미국 질병관리본부 산하 국립환경보건센터의 소장과 독성 물질 및 질병 등록국의 국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질병관리본부로 옮기기 전에는 국립환경건강과학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는 기후 과학자를 공격해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인위적 배출물에 의한 지구 온난화 영향이 불확실하다는 인상을 만들어냈던 것과 같은 방식의 공격이다. Pruitt는 내셔널 리뷰 작년 5월 호 논평에 건강한 논쟁은 미국 민주주의의 활력소이고 지구 온난화는 우리 시대 주요 정책 논쟁 중 하나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 논쟁은 해결되지 않았다. 과학자는 지구 온난화의 단계와 범위, 그리고 인류 행동과의 연계에 대해 여전히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

 

Pruitt의 선거 운동 본부와 주 법무장관의 생각에 동조하는 한 조직은 비슷한 설명을 하는 회사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모았고 오염 통제 규제에 반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얼마 전에는 환경보호청이 석유회사가 유정 오염을 일으켰다고 추정하는데 불평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다른 서한에서는 환경보호청의 감사관으로 하여금 식수 오염의 영향 조사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Pruitt문제를 보지 못하고 발견하지도 못하는정책을 선호한다는 의사를 비쳤다. 올해 그는 유정에 사용된 신규 설비가 메탄 배출 규정을 위반했다고 환경보호청을 고소했다.

 

Pruitt의 배경과 이력을 통해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고 실제로 미국이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기관의 장을 맡기에는 부적절한 선택임을 알 수 있다. 국제환경역학회는 대통령 당선인이 Pruitt의 지명을 철회하거나 미국 상원이 지명을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

 

글쓴이인 Joel Schwartz는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환경건강역학과 교수이고, 하버드대 환경센터 운영위원회 위원이자, 하버드대 위험분석센터 소장이다. 주요 연구 관심 분야는 대기오염, 중금속, 기후변화와 식수의 건강영향 등이다. 토지이용회귀 접근법, 원격 탐사 자료 및 화학 물질 수송 모형의 사용, 용량-반응 모형화, 생물 다양성 모형화와 방법론 연구를 포함한 환경 후성유전학, 유전환경 상호작용, 인과 모형화 데이터 융합에 진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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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로스먼이 2002년에 쓴 'Epidemiology: An Introduction' 초판은 2003년 주재신 박사(질병관리본부)가 번역해 '역학원론'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으나 지금은 절판돼 구하기 어렵다. 어렵게 중고로 구한 번역서 x-xi쪽에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저자의 편지' 원문만 실려 있어 기록삼아 옮겨봤다.



한국 독자에게,


가끔 몽상이지만, 나는 광범위한 거리와 시간을 넘나들며 생각과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문헌 소통의 힘에 경탄해왔다. (옮긴이 주: 케네스 로스먼은 사무실에서 잠이 들며 꿈속에서 가상의 인터뷰를 수행해 '역학' 2004년 15권 5호에 "존 스노와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심지어 오늘날에도, 문장의 메시지를 널리 확산시키려면, 언어 장벽을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어느 저자의 가장 숭고한 목적을 이루기에 번역의 노고는 필수다.


오늘날 세계의 빠른 속도가 번역의 필요를 아직 따라잡고 있지는 못하지만, 급만성 질환의 전세계적 확산은 악화돼왔다. 오래된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성공적인 예방과 치료가 늘어났고, 새로운 건강 위협은 우리의 건강과 사회의 자원을 위협하며 지속적으로 출현했다. 우리는 이런 도전에 맞설 준비를 반드시 해야 한다. 이 역학 원론은 역학의 기본 개념을 유행병에 직면해 대처하게 될 더 많은 청중에 전달하려는 나의 시도다.


책에서 나는 기술적 마법에 의존하기보다는 연구 설계와 데이터 분석으로 바로 나아가는 경로를 택하는 중요성과 역학적 문제를 다루는 기본 접근을 강조했다. 많은 역학 교과 과정에서 학생들은 율과 위험의 구분을 이해할 수 있기도 전에 다변수 모형화를 접하고 있다. 이는 연구 설계와 데이터 분석에 많은 문제점을 일으키는 전조가 되고 있고, 가치가 의심스러운 많은 겉치레뿐인 주제에 우선순위를 넘겨주고 있다. 나는 주재신 박사가 역학적 사고를 역학원론으로 한국 독자에게 전달해주게 되어 기쁘다.


케네스 J. 로스먼

뉴턴, 매사추세츠

2003년 4월 2일

 

Dear Reader,


In an occasional reverie, I have marveled at the power of written communication to transmit thoughts and ideas over vast distances and times. Nevertheless, even today, for the message of written words to diffuse broadly, it must penetrate language barriers. The work of translation is essential to the loftiest goals of any author.


Although the fast pace of today's world has not yet pre-empted the need for translation, it has exacerbated the worldwide spread of diseases both acute and chronic. As old scourges are met with increasingly successful preventions and therapies, new health threats continue to emerge to challenge our health and societal resources. We must prepare ourselves to meet these challenges. This introduction to epidemiology is my attempt to bring the basic concepts of epidemiology to a broad audience, among whom will be those who face the epidemics to come.


In the book I emphasize basic approaches to dealing with epidemiologic problems and the importance of taking a straightforward route to study design and data analysis rather than relying on technological wizardry. In many epidemiologic curricula, students are introduced to multivariable modeling even before they can understand the distinction between rates and risks, which presages many issues in study design and data analysis, are given priority over more flashy topics of dubious value. I am pleased that Dr. Chu has brought this introduction to epidemiologic thinking to a Korean readership.


Kenneth J. Rothman

Newton, Massachusetts

April 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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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 생각은 언젠가 반드시 읽고 쓰는 능력과 마찬가지로 유효한 시민권에 필수적인 것이 될 것이다.” 웰스가 한 말이다.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271쪽)


통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지만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1903년작 『만들어지고 있는 인류 Mankind in the making』에 수학적 분석이 중요하다는 표현이 들어간 문장이 실려있지만 통계학에 관한 언급은 없다. 이 문장이 유명해진 계기는 따로 있다. 저명한 통계학자이며 미국 통계학회장을 지낸 사무엘 윌크스( Samuel S. Wilks: http://goo.gl/0pyp4t )가 1950년 110차 미국 통계학회 연례 회의 연설에서 웰스를 빌어 미래의 시민은 통계적 사고가 읽고 쓰는 능력만큼이나 중요하게 될 것이라는 표현을 남겨 널리 퍼지게 됐다. 웰스의 표현이 바뀌어 온 과정은 텍사스 대학의 제임스 탱커드 주니어가 쓴 「통계학에 대한H. G. 웰스의 언급: 정확한 질문」이라는 소논문에 상세히 나와 있다. ( 출처: http://goo.gl/eYYDxM )


위와 같은 내용을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옮긴이 주에 남긴 적이 있다. 『지금 생각이 답이다』 후주를 보니 논란의 결정판이 아래와 같이 나와 있으므로 기억을 위해 옮겨 둔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1938년 작 『세계 두뇌 World Brain』 http://goo.gl/NXMYiz 에 "오늘날은 통계적 방법에 대한 확실한 기초 훈련이 읽기와 쓰기만큼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되고 있다. A certain elementary training in statistical method is becoming as necessary for anyone living in this world of today as reading and writing."가 실려 있으므로 앞으로는 이 문장과 출처를 정확히 인용하면 된다가 결론이다.


PART 2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떻게 현명한 판단을 내릴까? | 불확실성 다루기


오늘날은 통계적 방법에 대한 확실한 기초 훈련이 읽기와 쓰기만큼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되고 있다. - 허버트 조지 웰스1


1 | 이 짧은 인용문에는 긴 뒷이야기가 있다. 고전적인 책  『새빨간 거짓말, 통계 How to Lie with Statistics』에 "언젠가 통계적 사고는 읽고 쓰는 능력처럼 시민의 소양이 될 날이 올 것이다"라는 묘비명(원문이 epitaph지만 웰스의 묘비명이 아니므로 '예시문' 정도가 적당할 듯하다 - 인용자 주)이 등장한다.  이 인용문은 웰스가 한 말이지만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사실 수백 명이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이 인용문을 사용한다. 나는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서 각주를 달아 출처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웰스는 100권이 넘는 책을 썼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낸 말인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편지를 받았는데, 여기에는 웰스의 예측은 수학의 역할에 관한 것이지 통계에 관한 것이 아닌데도 통계학자들은 이를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 J. W. Tankard (1979)의 논문도 있었다. Tankard는 웰스가 "진정한 수학 훈련"을 촉구했다면서 "계산할 수 있는 능력과 평균, 최솟값, 최댓값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계산력이 읽고 쓰는 능력과 같기 때문이다"(pp 30-31)라는 그의 말을 인용했다. Tankard는 또 이외에는 특별히 통계에 대해 다룬 부분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는 웰스의 전기 작가 중 한 명인 Lovat Dickson을 인용했다.

내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던 차에 영국의 사서 Geoffrey Hunt에게서 웰스의 World Brain (1938/1994) 한 권이 배달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책에 이 문구가 있었다. "오늘날은 통계적 방법에 대한 확실한 기초 훈련이 읽기와 쓰기만큼이나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되고 있다"(p. 141). 이로써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도 이 유명한 인용문의 핵심이 확인되었다. (게르트 기거렌처,  『지금 생각이 답이다』, 384쪽)


p.s 웰스의 원문 중 'a certain'을 '확실한'으로 옮긴 대목이 약간 불만이었는데 영어를 전공한 지인께서 '특정한'이라는 뜻에 가깝다고 설명해주었다. 앞으로 "오늘날 일정한 기본 통계 교육은 읽기와 쓰기만큼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항목이 되고 있다." 정도로 옮겨야겠다.

Posted by 사이버독 cyber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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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 기거렌처 선생의 신작 'Risk Savvy'가 『지금 생각이 답이다』라는 제목으로 옮겨져 나왔다. 원서가 나온 지 한 달 여만에 역서가 나왔으니 판권 계약을 미리 맺고 번역 작업도 빨리 진행한 듯하다. 사실 『지금 생각이 답이다』라는 역서 제목은 전작 'Gut Feelings'에 어울리는 제목이긴 하다. 역서가 판매되자마자 주문해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기거렌처 선생의 의료계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꽤나 세졌음을 알 수 있었다. 번역은 매끄러운 편이라 고유 명사 몇 군데를 빼고 크게 흠잡을 데 없는 편집이라고 생각했던 찰나 인용문 원문을 찾아보기 위해 책 뒤를 펼친 순간 참고문헌 목록이 통째로 빠져 있음을 발견했다. 물론 찾아보기도 없었다.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작업에서도 찾아보기를 넣지 못한 대목이 가장 아쉬웠다.) 참고문헌 목록을 새로 만들어 파일로 올려두었으니 책을 구입한 분 중 참고문헌에 관심 있는 분들은 내려 받기 바란다. 물론 출판사가 2쇄를 찍을 때 참고문헌 목록을 넣어주는 편이 가장 바람직하다.


게르트 기거렌처-지금 생각이 답이다-2014-참고문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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