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 업저버 임솔 기자와 개인적 인연으로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발간 기념 인터뷰를 했다.


원문 기사: "의사들이여, '계산맹에서 벗어나자" 숫자에 속지 않고 올바르게 위험소통하는 방법


#1. 여성의 유방암 발생 확률은 0.8%이다. 유방암에 걸렸을 경우 유방촬영술에서 양성이 나올 확률은 90%이다. 유방암에 걸리지 않더라도 유방촬영술에서 양성이 나올 확률은 7%이다. 한 여성이 유방촬영술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면 실제로 유방암에 걸렸을 확률은 얼마일까?


#2. 1000명 중 8명의 여성이 유방암에 걸린다. 8명 중 7명에서 유방촬영술 검사결과 양성이 나온다. 유방암에 걸리지 않은 992명 여성 중 70명에서도 유방촬영술 결과 양성이 나올 것이다. 유방촬영술 양성 중 얼마나 많은 여성이 유방암에 걸렸을까? 


#3. 양성이 나왔지만 실제 유방암은 아닌 ‘위양성’ 여성들은 양성을 통보받은 순간 마치 일생이 끝난 것처럼 받아들인다. 1번과 2번에서 위양성 수치를 어떻게 계산할까? 또한 의사들은 이들이 고통 속에 빠져 있지 않도록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확률로 계산한 1번은 계산이 복잡하고 계산 자체가 하기도 어렵다. 자연빈도로 계산한 2번은 7명으로 쉽게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번의 계산도 마찬가지다. 또한 3번에 해당하는 70명의 여성들은 실제 유방암이 아니라고 최종 진단될 때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의사들의 정확한 설명이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책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저자인 게르트 기거렌처(Gerd Gigerenzer)는 흐릿한 생각을 막고 복잡한 계산을 피해 ‘계산맹’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준다.


특히 의료인의 계산맹은 환자들에게도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책임감있는 번역에 동참하면서 ‘의료인의 계산맹 탈출 도우미’를 자처한 인하의대 사회의학교실 황승식 교수<사진>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다. 


-저자인 게르트 기거렌처에 대해 소개해달라.


게르트 기거렌처는 막스플랑크협회 인간개발연구소장을 오랫동안 맡고 있는 인지심리학계의 거장이다. 심리학 관점에서 경제적 의사결정을 설명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 고 아모스 트버스키와는 학문적 라이벌 관계다. 독일 학자라는 이유에서인지 국내에는 소개가 부족했다. 지난 2008년 ‘생각이 직관에 묻다(Gut Feelings)’는 저서가 번역된 이후 2번째 번역본에 불과하다.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원서인 ‘Calculated Risks'는 2003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까지도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어 이번 번역에 참여하게 됐다. 본인 역시 그의 책을 읽고 확률이 아닌 자연빈도로 위험을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 향후 기회가 된다면 기거렌처가 책임 편집한 의료인을 위한 책 ’Better Doctors, Better Patients, Better Decisions: Envisioning Health Care 2020‘도 번역해보고 싶다.


-책을 통해 숫자, 확률에 빠진 대다수 의료인이 ‘계산맹’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우선 '확실성의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에 따르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밖에 없다. 불확실성을 알고 정확하게 위험을 계산해 의사소통을 하는 ‘위험소통’을 일깨우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의사가 환자들에 의사를 전달할 때는 보통 확률로 표현한다. 그러나 백분율, 퍼센트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 만약 ‘내일 비가 올 확률’이라면 정확히 어떤 확률을 말하는 것일까? 예년과 같은 조건, 습도, 온도일 경우 내일 비가 올 확률이 50%가 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지역적 요인인지, 본인이 비를 맞을 확률인지 등 확실하지 않은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인구집단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 예방의학 전문가는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지만, 개별 환자들에 결과를 적용하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매순간 위험소통 상황에 직면하는 임상의사들이 알아두면 좋을 내용이 담겨져 있다. 


-국가검진이 의무화되고 검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위험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이 더욱 많아졌다. 앞의 사례에서처럼 수검자들에게 위양성의 가능성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의사들이 확실성의 환상을 갖고 있다. 고가의 장비로 진단하면 마치 모든 질병을 다 알아낼 것처럼 이야기한다. 검진의 이득을 부풀려 표현하다 보니 ‘양날의 검’처럼 의사들에게 다시 칼날이 향하고 있다. 검진결과 양성이지만, 사실은 양성이 아닌 ‘위양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반대로 검진에서 음성이 나오더라도 실제로 질병이 있는 ‘위음성’일 때도 있다. 흐릿한 판단과 의사소통으로 책임을 떠안고 법적 소송마저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일부러 과장할 필요는 없더라도 검진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검진의 이득을 설명하되, 양성이 나왔을 때와 실제 질병이 됐을 때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현재 대형 검진전문병원들은 그저 백화점식 검진을 통해 질병 조기 발견의 확신만 심어주고 있다. 고가의 검진을 부추기기보다는, 주기에 맞춘 반복된 검진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의사 입장에서 검진의 정확한 정보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정보 제공에 앞서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검진을 실시하는 질병에 대한 유병률과 검진에 활용되는 검사의 민감도 및 특이도 관련 자료는 이미 나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검진기관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연령별 양성 예측도 결과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물론 개별적인 임상 상황의 의사소통에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직관과 경험에 의존해야 할 때도 많다. 그러나 소아 성장곡선처럼 한 번 만들어두면 쉽게 뼈대를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동시에 의사들도 검진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검진은 분명 수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며, 모든 질병의 조기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가의 검진을 하더라도 발견하지 못하는 질병이 있기 마련이고, 이에 따른 소송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수검자들에 검진 시 방사선 피폭 선량을 설명해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사전에 잘 설명하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위험소통 과제가 될 것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검진은 실시되고 검진기록도 남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으로는 검진의 질 관리가 더욱 필요한 이유가 된다. 


-실제 상황이 닥치더라도 수검자에게 위양성의 사실을 알리기 쉽지 않다. 자칫 검진의 득보다 실을 더 크게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진과 진단은 분명 별개 문제다. 아무런 증상이 없을 때 질병을 알아내기 위한 수단이 검진일 뿐이다. 건강한 사람에서도 위양성, 위음성 결과가 흔히 나올 수 있다. 단지 이 사실을 잘 아는 의사들이 수검자들보다 먼저 이야기해야 할 뿐, 두려움에 떨 필요는 없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의 의사들은 굳이 사전에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검진의 이득을 설명하는 시간조차 모자란다고도 한다. 검진센터 외에는 일반인 수검자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라고 생각한다. 환자가 병원에 오기 전 이미 위양성이 확인된 만큼, 의사들은 더욱 확실성의 환상에 빠지기 쉽다. 수술 받고 좋아지는 환자가 있는 반면,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드는 과정에도 관심 가졌으면 한다.


-현재 정확한 위험소통 방법이 의대 교육에 반영돼 있나? 이제서야 겨우 의사국시 실기시험에 환자와의 소통 항목이 반영된 상태다.


통계학 교육을 포함한 위험소통 교육과정은 전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시드니의대, 맨체스터 의대 등에서 시범적으로 운영 중이다. 많은 의대에 의학통계학 과목이 개설돼 있지만 이론적 강의 위주로 가르칠 따름이다. 의사들 모두가 연구에 전념하진 않는 만큼, 통계 분석을 깊게 배울 필요는 없다. 통계를 해석하고 이를 환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인하의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습시간에 교육하고 있다. 위험소통을 배운다면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 유용하리라고 본다. 검진은 물론 수술, 약물 처방 등의 효과를 정확히 전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계산맹이 사라지고 위험소통의 인식이 확대될 경우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의사 이외에도 관심가져야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의사와 환자의 ‘라포’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인 기거렌처는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의사가 환자에 단순히 ‘시키는 대로 하라’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해야 한다’는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술지 편집인, 제약회사, 언론 등에서도 배울 필요성이 있다. 해석하는 수치가 다르고 통계 적용의 오류가 발생하면서 엉뚱한 근거자료가 제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검진에도 반영돼야 한다. 국가검진의 품질을 높이고 정확한 통계 분석이 선행돼야 대규모 연구가 가능하다. 지금은 그저 실적, 영업을 위해 검진을 확대하다 보니 비교연구가 불가능하다. 국가 단위에서 검진을 책임지고 있는 질병관리본부, 국립암센터,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이 먼저 체계적인 검진통계를 산출해 위험소통에 나서고 민간기관이 따라간다면, 검진 본연의 목적인 조기 사망 예방에 훨씬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cyber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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