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원제: Calculated Risks)』의 계산되지 않은 번역



게르트 기거렌처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계산된 번역이 아니었다. 번역 초고를 받아 감수를 시작한 시점은 한참 전이었다. 저자는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의료 분야 위험 소통의 대가답게 실제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용어와 표현을 다듬다 보니 감수로 무임 승차하려던 계획이 어긋나고 공동 번역이라는 골치 아픈 계획으로 바뀌었다. 무리한 결정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물론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계산맹의 특징으로 확실성에 대한 환상, 위험에 대한 무지, 잘못된 위험 소통, 흐릿한 사고를 들고 있다. 많은 의료인이 보여주는 모습으로 현행 의학 교육에서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다. 물리학과 생물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과학에는 통계적 사고가 혁명적으로 확산됐지만 모든 의사에게 이르고 있지는 않다. 의사의 통계맹은 주로 환경의 문제로 의사 개인의 문제로 환원될 수는 없다. 심지어 저자는 최근 발간된 다른 책에는 의사가 통계맹으로부터 개안되면 환자와 의사의 위험 소통이 원활해질 뿐 아니라 민주주의 기능 강화에도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얼마 전 유명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자신이 유방암과 난소암 위험 유전자를 갖고 있으므로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뉴욕 타임스 지면에 공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많은 언론이 이 사실을 앞다퉈 소개했지만 정작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을 경우 얼마나 위험이 감소하는지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자는 ‘5장. 유방암 검진’에서 유방촬영술 양성 결과가 나왔을 때 실제로 유방암이 있을 확률을 계산하느라 애먹는 다양한 의사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베이즈 정리와 자연 빈도를 이용해 각각 확률을 계산하는 과정, 유방촬영술과 예방적 유방절제술의 비용과 이익을 비교 위험도 감소/절대 위험도 감소/치료 필요 환자수로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의료인이나 예비 의료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출판사에 넘긴 최종 번역 원고에는 저자의 불확실한 기억에 대한 수정,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데이터 소개, 어색한 표현에 대한 설명을 옮긴이 주로 달았다. 전문 분야의 독자가 아닌 이상 본문에 달린 옮긴이 주는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는 편집자의 의견을 고심 끝에 받아들여 모두 덜어냈다. 활자로 인쇄되지 못한 옮긴이 주는 출판사 카페( http://cafe.naver.com/sallimbooks/23781 )에서 확인할 수 있으므로 관심 있는 독자의 방문을 환영한다. 터무니없는 오역과 비문을 없애기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전혀 없다고 말할 허풍은 내 유전자에 없다. 눈 밝은 독자가 찾아내서 홈페이지나 역자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알려주기를 기대한다. 계획에 없던 공동 번역을 흔쾌히 수락해 준 전현우 씨와 읽기 쉽게 만들어준 살림출판사 편집자 이주희 씨께 마지막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13년 7월 황승식

Posted by cyber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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