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이럴 땐 이렇게" 의학 예문 의견

어쩌다 보니 책을 번역하게 됐고, 번역하다 보니 공부할 꺼리가 많아 관련 서적을 계속 사보게 됐다. "번역, 이럴 땐 이렇게"는 통번역 강의 10년 경력의 저자가 경험을 살려 만든 책으로 일단 번역 초고를 만든 다음 문장을 매끄럽게 만드는 방법과 예문이 잘 제시되어 있다. 2부 번역 강의 4절 과학이 의약 분야 예문이기도 해서 몇 가지 의견을 남겨 놓는다.

70쪽. 6. Early detection is vital to preventing cancer. 암 예방에는 조기 검진이 최선책이다.

- early detection은 대개 조기 발견으로 옮긴다. screening을 검진으로 옮긴다. vital을 최선이라고 옮긴 부분도 약해 보인다. 나라면 "암 예방에는 조기 발견이 필수적이다."고 옮길 듯하다. 문장의 정확한 출처를 모르겠지만 내용이 잘못됐다는 점이 문제다. 조기 발견과 조기 검진은 암을 예방할 수 없고 조기 치료를 통해 사망률을 낮출 수 있을 뿐이다. 조기 검진을 열심히 하면 발견율이 높아져 암 환자가 늘어나게 된다. 한국에서 유방암과 갑상선암 발생률의 폭발적인 증가가 좋은 사례다.

164쪽. Nature's Drugs 학생번역: 자연의 약, 수정번역: 천연약품 대세

- 예문의 뉴스위크 기사는 청자 고둥의 치명적인 독에서 프리알트(Prialt)라는 새로운 진통제를 개발한 사례가 실려 있다. 천연 상태의 물질에서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는 경우 '천연물 신약'이라고 부른다. 그냥 '천연물 신약'이라고 옮기던가, '늘어나는 천연물 신약' 정도로 옮길 듯하다.

177쪽. 7 | I think I will get a second opinion. 다른 의사에게 검진을 받아 봐야겠어요.

- second opinion은 암과 같이 위중한 질환인 경우 다른 의사에게 진단을 확인을 의뢰하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처럼 상급종합병원에 접근성이 좋아 의료 쇼핑이 만연한 나라에서 매우 흔하다. 위에 설명한대로 screening을 주로 '검진'이라고 옮긴다. 이 문장은 "다른 의사에게 다시 진찰[진단]을 받아볼게요."로 옮기면 좋겠다.

177쪽. 8 | The doctor is conducting a clinical trial of the drug. 의사가 그 약을 임상 실험을 하고 있다.

- clinical trial은 식약처 고시나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에 '임상 시험'으로 명시되어 있다. 의약보건 전문지 기자가 '임상 실험'으로 표현한 기사를 보고 혀를 찬 적이 아직도 있다. 통번역 강의 10년 경력에 과학 분야를 별도 절로 서술하고 있는 책에서 놓칠 만한 실수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의사가 해당 약의 임상 시험을 수행 중이다." 정도가 적당하다.

177쪽. 10 | Sometimes, a blood donor can be a disease carrier. 헌혈자가 질병 보균자일 수가 있다.

- 헌혈 혈액에서 조사하는 항목은 세균이 아니라 주로 바이러스다. 만성 바이러스 감염자는 보균자가 아니라 보유자로 쓴다. "헌혈자가 유병자일 수도 있다." 또는 carrier의 의미를 살려 "헌혈자가 질병을 옮길 수도 있다."로 옮기면 좋겠다.

177쪽. 11 | He developed complications. 그가 합병증을 일으켰다.

- 합병증을 일으켰다로 쓰면 그가 주체인지 객체인지 헷갈릴 수 있다. 물론 문맥을 통해 환자임을 쉽게 알 수도 있다. "그가 합병증이 생겼다."로 옮기면 좋겠다.

177쪽. 12 | The persistent use of the pesticide generates more resistant pests. 해충제를 계속 사용하면 해충에게 내성이 생긴다.

- pesticide는 살충제 또는 농약으로 옮긴다. 해충제는 명백한 오류다.

이처럼 통번역 전문가도 전문 분야 번역은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전문 서적은 전공자가 번역하고 편집자가 잘 다듬는 방식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