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 Epidemiology' 학술지 최신 호(2014년 25권 6호)에 흥미로운 레터 두 편이 실렸다. 이론 역학 분야의 떠오르는 스타인 타일러 밴더윌 교수(하버드 보건대학원 역학보건통계학과)가 이전 호에 발표한 “교란과 매개 변수를 보정한 회귀 분석에서 인종의 인과적 해석에 관하여”라는 논문에 대해 같은 학교 낸시 크리거 교수가 강력한 비판(비난?)을 담은 레터를 투고했고 저자의 답변이 담겼다. 이론 역학에서 중요한 개념인 교란, 매개, 상호작용과 DAGs와 같은 방법론에 대한 기초 이해가 없으면 논쟁 지점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크리거 교수의 우려는 이해되지만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문장을 읽다보면 밴더윌 교수의 논문의 핵심을 충분히 검토했는지는 의문스럽다. 밴더윌 교수의 최근 작업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적인 반응보다 브로드벤트 교수(요하네스버그대 철학과)의 지적처럼 역학이 지나치게 인과성에 매몰되고 있으므로 설명과 예측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비판이 좀더 근본적인 반응일 듯하다.


On_the_Causal_Interpretation_of_Race.31.pdf



인종의 인과적 해석에 관하여

낸시 크리거(하버드 보건대학원 사회행동과학과)


편집자에게:

밴더윌과 로빈슨이 쓴 논문 “교란과 매개 변수를 보정한 회귀 분석에서 인종의 인과적 해석에 관하여”[1]는 더욱 만연한 건강 불평등과 부당함을 다룬 연구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충분한 지식이 없다.


인용할만한 가치가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을 살펴보자.


. “인종의 효과 개념은 애매하다. 효과는 인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인종은 피부색이나 다른 사람의 지각, 아버지의 피부색과 다른 사람의 지각, 또는 유전적 배경과 같은 요임을 포함할 수 있다. 모든 요인이 개별 또는 결합해서 고려되었다.

. “그러나, 인종은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고, 이와 관련된 반사실적 의문은 대개 연구자들로 하여금 의미 없는 일이라는 인상을 준다. 어떤 흑인의 건강 결과를 만일 백인이었다면 어땠을지 질문하면 이상한 것처럼 보인다.”

. “우리의 논의는 인종 간 결과의 차이에 집중하고 있다. .. 성별과 같이 바꿀 수 없는(nonmanipulable) 노출에도 비슷하게 접근할 수 있다.”


정말인가? 이런 주장은 무슨 학문적 배경에 기초하고 있는가? 그리고, 여기서 “바꿀 수 없는”이나 실행가능한, 또는 개입을 설계하거나 실행하는 일을 결정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이 논문이나 참고문헌만 본다면 보건과 사회과학, 철학 분야에서 이룩한 거대한 성과 체계를 전혀 모르게 된다. 인도주의를 이미 논문의 반사실적 혼동으로 설명했고 개념적으로, 방법론적으로, 경험적으로 찢겨 나갔다. 논문은 “인종”이 유전과 같이 개인의 내재된 생물학적 속성이라고 근거 없이 주장하고 있고 “젠더”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성별”을 개념화하는 심하게 잘못된 접근을 논박하고 있다. (젠더라는 단어는 논문과 해설 전문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생각은 관두자!)[2] 실제로, 롤즈에 따르면 어느 백인이 흑인만큼 잘못 대우 받는지, 또는 남성이 여성만큼 잘못 대우 받는지와 같은 질문은 최소한 18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 반복해서 제기돼 왔다. 많은 연구자의 작업을 통해, 카우프먼이 간결하게 요약한 인과적 용어에서는, “방향 비순환 그래프(DAG, directed acyclic graph)”를 다시 그리려면, 인종부터 사회경제적지위까지 더이상 화살표가 이르지 못하는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3]


이 논문과 해설과 나란히 짐 크로와 건강 불평등에 집중한 답변이  경험적 연구로 발표됐다는 점은 아마도 모순에 어울린다. 민주적 가치가 불어넣은 격렬한 행동의 결과가 미국에서 인종 관계, 인종 분류, 인종 건강 불평등을 바꿔왔다. “다룰 수 없는”이라니, 정말인가?


1. VanderWeele TJ, Robinson WR. On the causal interpretation of race in regressions adjusting for confounding and mediating variables. Epidemiology. 2014;25:473–484.

2. Krieger N. Discrimination and health inequities. In: Berkman L, Kawachi I, Glymour M, eds. Social Epidemiology. 2nd e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63–125.

3. Kaufman JS. Commentary: race: ritual, regression, and reality. Epidemiology. 2014;25:485–487.

4. Krieger N, Chen JT, Coull BA, Beckfield J, Kiang MV, Waterman PD. Jim Crow and premature mortality among the US black and white population, 1960–2009. An age-period-cohort analysis. Epidemiology. 2014;24:494–504.


저자 답변:

타일러 J. 밴더윌(하버드 보건대학원 역학보건통계학과), 휘트니 R. 로빈슨(노스캐롤라이나대 역학과)


우리는 다음과 같이 낸시 크리거 교수의 레터[1]에 대해 다양한 지점에서 답하고자 한다.


우리가 애매함과 변경가능함을 우려했던 서술[2]은 인종 효과를 주제로 다룬다고 인용했던 인과성 추론 문헌에서는 보편적인 태도다. 인과성 추론 문헌은 건강 불평등 문헌과 상호작용하며 우리 논문이 대화하고 있는 주요 문헌이다. 다른 중요한 많은 문헌을 누락시킨 점은 유감스럽고 이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 주제가 광범위하고 많은 분야를 아우르는 반면 우리가 기여한 바는 방법론적 질문이라는 작은 대목에 집중하여 반사실성에 대한 공식 문헌과 연계하는 특수하고 좁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크리거 교수가 지적한 바와 달리, 우리 논문은 인종이나 인종의 효과를 “유전과 같이 개인의 내재된 생물학적 속성”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우리는 “인종 효과”를 문화적 맥락, 차별, 경제적 배경을 포함시켜 서술했다. 우리는 인종을 주로 유전적인 것으로 개념화하려는 입장에 대한 크리거 교수의 우려를 이해하지만, 우리 논문은 그렇게 단순화시키지 않았다.


“인종을 바꿀 수 없음”에 관해서, 우리는 크리거 교수와 의견이 같다. 인종 불평등과 인종 차별 조치는 사회적 행동으로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인종 범주와 인종 인식도 마찬가지로 바꿀 수 있다고 동의한다. 우리가 제기한 요점은 제한된 시기와 장소에서 개인 수준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자가 인종 범주를 고정시켜 사용하는데 놓여져 있고, 어떤 사람을 한 인종 범주에서 다른 범주로 옮기는 (범주가 아닌) 개인에 대한 일반적인 개입이 아니다. 이와 같은 개인에 대한 개인은 아마 항상은 아닐테지만, 대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인종 범주를 바꾸는 개입은 상상할 수 있지만, 잠재적 결과에 대한 인과성 추론이라는 관점에서, 정의를 고정시킨 변수값을 바꾸기보다는 변수의 정의를 바꾸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반복해 말하지만, 우리는 인종 범주, 인종 집단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조치, 인종과 건강 결과의 관련성을 바꿀 수 있다는 데 크리거 교수와 견해를 같이한다.


성별도 비슷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간단히 언급했다. 비슷한 분석과 해석이 다른 종류의 불평등에도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1. Krieger N. On the causal interpretation of race [letter]. Epidemiology. 2014;25:937.

2. VanderWeele TJ, Robinson WR. On the causal interpretation of race in regressions adjusting for confounding and mediating variables. Epidemiology. 2014;25:473–484.

Posted by 사이버독 cyber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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