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뼈, 撓骨, Radius: 『감염된 언어』에 대한 긴 메모
중얼 연습 2025. 6. 16. 17:27 |지난 달 낙상 사고로 우측 원위부 요골 골절을 당하여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 중이다. 무료한 재활 기간 동안 문득 26년 전에 서울의대간호대 교지 <연건> 14호(1999년 가을호)에 '노뼈, 撓骨, Radius:『감염된 언어』에 대한 긴 메모'라는 글을 발표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이 없는 분은 베껴 쓴 문장이 대부분인 앞부분은 건너 뛰고 '노뼈, 撓骨, Radius - 해부학 용어 한글화에 대한 이견(異見)'부터 읽어도 좋다.
노뼈, 撓骨, Radius: 『감염된 언어』에 대한 긴 메모
황승식(의학 3)
고종석은 나의 스승이다. 그동안 나를 가르쳐주신 훌륭한 선생님과 교수님들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되바라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상당부분 그의 영향이다. 이러한 나의 고백이 고종석에게 어이없는 무고(誣告)가 될 지, 아니면 엉뚱한 재미가 될 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스승이, 단지 지식뿐만 아니라 생각과 사상의 영역에까지 장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범위를 좁히면 나는 감히, 나의 지도교수님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스승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그 이외에 다른 사람을 쉽게 떠올릴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와 어떤 인간적인 끈을 갖고 그를 스승으로 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오로지 그의 텍스트를 통해 사숙(私塾)한 것뿐이다. 그러나 텍스트를 통한 간접적인 배움이 내가 그의 제자를 자임하는데 충분치 못하다는 논리는 공소(空疎)하다. 공자를 친견(親見)할 수조차 없었으나 유교적 이상사회 건설의 일꾼을 자임한 조선의 사대부는 사서삼경과 삼강오륜으로 오백년을 통치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남한의 운동권은 주체사상 총서나 마르크스·레닌 원전을 통해 얻은 결론으로 사회를 해석하여 부도덕한 정권에 대항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음이 그에 대한 반증의 일부이다.
고종석이 ‘한겨레신문’, 지금은 ‘한겨레’로 제호가 바뀌었지만, 기자 시절 써내는 기사는 십여년 전 내가 문장을 막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훌륭한 교본이 되어 왔으며, 지금도 나의 책꽂이 가장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위치에 그의 책들이 꽂혀 있다. 나는 산문집 ‘고종석의 유럽통신’과 ‘책읽기 책일기’를 통해 정확하면서도 풍부한 어휘로 이루어진 우리말 문장의 아름다움을 습득했고, 단편집 ‘제망매’를 통해 그가 건조한 문장으로도 일상을 재구성하여 소설적 재미를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으며, ‘감염된 언어’와 ‘언문세설’을 통해 국어에 대한 그의 애정을 감지했다. 그러나 단지 그의 관심이 문학과 언어에 한정됐다면 나는 그의 제자됨을 참칭(僭稱)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의 텍스트를 통해 개인주의가 옹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배웠고, 자유주의가 천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배웠으며, 극성스럽다못해 악랄하고 뻔뻔한 남한의 극우파와 대조되는, 프랑스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적어도 지난 이백년간 좌익에 대항하여 가다듬은 우익의 당당한 논리를 배웠고,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좌익이 존재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배웠고, 이 점이 가장 중요한데, 우리 사회에서 모든 극단주의에 대한 저항이 소중한 진보라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지금 ‘감염된 언어’라는 텍스트의 일부에 대한 긴 인용과 짧은 주석을 통해 우리 사회에 파고든, 물론 이 글에서 우리 사회는 의학과 의료를 매개하는 집단의 사회로 한정된다,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지루하지만 고종석의 주장을 꼼꼼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대한 그의 주장을 검토한 후에 해부학 용어 한글화에 대한 나의 지적을 덧붙이고자 한다. 어줍잖은 몇가지 사실에서 비약된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편할 대로 앞 뒤 문맥 잘라서, 진중권의 표현대로라면 텍스트를 강간하여, 해석하는 것은 딸國질이 입에 붙은 극우파의 전매특허이므로 그들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대한 의견(意見)
고종석은 자신의 스승으로 복거일을 들고 있다. 이리하여 ‘족보’상으로는 복거일이 나의 할아버지 스승뻘 되겠는데 내가 지금까지 접해본 복거일의 텍스트는 결코 스승으로 섬길만한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아직 하산할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내 자신을 탓해야 할 지, 스승의 평가가 지나침을 감히 지적해야 할 지, 스승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복거일은 참으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가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문학을 업으로 삼고 있으며, 가끔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다. 90년대 벽두에 그가 상재(上梓)한 『현실과 지향 - 한 자유주의자의 시각』은 민중주의나 파시즘에 경도되지 않은 자유주의자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정운영이 그 책의 발간과 때를 같이 하여 출판저널에 기고한 쟁점비평을 시작으로 촉발된 세칭 ‘자유주의 논쟁’은 본격적으로 벌어질 기회를 맞이하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고종석은 그것이 우리 지식인 사회의 자폐성·자족성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데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다행히도(?) 고종석은 ‘배덕자’의 변명이라는 소제목으로 복거일의 주장에 내재한 ‘대중주의적·민중주의적’ 견해와 민주주의의 결핍이 사실은 복거일이 옹호하는 자유주의·개인주의에 치명적임을 지적하고 있어서 불안한 제자를 안심시키고 있다.
작년 하반기 인터넷 조선일보가 멍석을 깔고 복거일이 패를 돌린 ‘영어공용어화 논쟁’을 고종석은 ‘자유주의 논쟁’과 격을 같이 하여 ‘민족주의 논쟁’이라고 부르기를 주장한다. 복거일의 산문집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가 겨냥하고 있는 바는 단순히 민족어가 아니라 민족주의 전반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자유주의 논쟁’ 당시 복거일의 비판자들은 대부분 좌파였고, 이번 논쟁에서는 대부분 우파라는 점이다. 나는 여기에서 영어공용어화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욱하는 민족적 감정으로 복거일과 고종석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런 종류의 비난은 인터넷 조선일보에 팥다발 같이 올라있다. 물론 나는 영어공용어화라는 주장 자체는 온 국민이 모국어와 더불어 영어를 읽고 쓸 수 있게 강요함이 불가피하다는 단순한 반증에서 분명히 그런 주장은 자유주의적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적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통렬한 비판은 진중권이 ‘말’ 1월호에 기고한 “복거일, 당신은 ‘멋진 신세계’를 꿈꾸는가”에서 들을 수 있으므로 나까지 여기서 돌팔매질을 해야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내가 복거일과 고종석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지점은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를 공론화했다는 점이다. 민족주의 얘기만 나오면, 민족주의 곧 애국, 비민족주의 곧 매국의 등식이 수립되고 얘기는 끝나버리는 우리 사회의 현실 말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는 파시즘과 군국주의, 그리고 옹졸한 국수주의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 남북한이 함께 일본 정벌에 나선다는 만화가 최고 인기 작가에 의해 그려져 버젓이 팔리고, 비록 정신나간 부함장이긴 하지만 일본에 핵미사일 발사를 시도하다 불발에 그친다는 시나리오의 영화가 관객을 집단 마취시키고 있는 사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이 점에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좋든 싫든 이른바 지식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얼마 전에 나온 임지현 교수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 신화와 허무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라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급히 내리는 결론이지만 민족주의는 그것이 비록 이념의 허울을 둘러쓰고 있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고정불변의 이념이 아니며 결정적으로 집단적 감정 상태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복거일과 고종석이 주장하는 다른 문제, 즉 일본산 외래어와 서양말 번역투에 대해 한국어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다소 지루하겠지만 이 글 전체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므로 나는 고종석의 주장을 좀 길게 인용하고자 한다. 고종석은 인류문화사적 관점에서 가장 감동적인 시기로 일본 에도 중기 이래의 란가쿠와 메이지 시대 이후의 번역 열풍을 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한문 문명권과 그리스·로마 문명권을 융화시키며 동서 문화 교섭의 가장 빛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18세기 말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 등이 네덜란드어 해부학서(!)를 『카이타이신쇼(解體新書)』라는 제목으로 번역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시작된 란가쿠는 초기의 의학에서 화학, 물리학, 천문학, 군사학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궁극적으로 세계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만들 발판을 마련했다. 고종석이 지적하는 일본인들의 위대함은 유럽 문화의 전지구화를 마무리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면서도 한자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 유산 속에 완전히 녹여버렸다는 데에 있다는 점이다. 난학자들은 네덜란드어(와 네덜란드어에 투영된 유럽의 여러 언어들)를 통해서 유럽의 개념들을 일본어로 옮기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고, 그것은 메이지 유신 뒤 유럽 문화의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훨씬 더 커다란 규모의 번역사업으로 확장됐다. 그러나 이들의 번역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유럽 문명과의 접촉이 앞섰던 중국을 통해서 유럽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런 매개 없이 유럽 문화를 독자적으로 흡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본이나 동아시아에 비슷한 개념의 어휘들이 있을 경우엔 문제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들이 옮기려고 한 네덜란드어 단어들 가운데는 낯선 개념이 태반이었으므로 그들의 고생은 더 컸다. 그것은 대단한 열정과 재능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통역사들과 난학자들은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케이요오시(形容詞형용사), 후쿠시(副詞부사), 니치요오비(日曜日일요일), 세이산카리(靑酸加里청산가리), 산소(酸素산소), 스이소(水素수소), 카가쿠(化學화학), 주우료쿠(重力중력), 큐우신료쿠(求心力구심력), 코오세이(恒星항성), 사이보오(細胞세포), 엔제쓰(演說연설), 사이반쇼(裁判所재판소) 따위의 말들은 모두 당시 에도의 난학자들과 나가사키의 통역사들이 네덜란드어를 번역해서 만들어낸 말이다.
막부 말기에 요오가쿠(洋學양학)의 중심은 란가쿠에서 에이가쿠(英學: 영어를 통해 서양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로 바뀌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래 양학은 최전성기를 맞아 무수한 번역어들이 생겨났다. 물밀 듯이 일본 열도를 휩쓰는 서양 문화에 따라 유럽 전체와 그 언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뒤따랐고, 그 바탕 위에서 새 번역어들은 더 정교해졌다. 그 번역어들 중에는 리세이(理性이성), 론리(論理논리), 이시키(意識의식), 이시(意志의지), 구타이(具體구체), 랏칸(樂觀낙관), 히칸(悲觀비관), 코오칸(交換교환), 분파이(分配분배), 도쿠센(獨占독점), 초치쿠(貯蓄저축), 세이지(政治정치), 세이후(政府정부), 센쿄(選擧선거), 케이사쓰(警察경찰), 호오테이(法庭법정), 한케쓰(判決판결), 호쇼오(保證보증), 토오키(登記등기), 세이키(世紀세기), 칸초오(間諜간첩), 슈기(主義주의), 세이간(請願청원), 코오쓰우(交通교통), 하쿠시(博士박사), 린리(倫理윤리), 소오조오(想像상상), 분메이(文明문명), 게이주쓰(藝術예술), 코텐(古典고전), 코오기(講義강의), 이가쿠(醫學의학), 에이세이(衛生위생), 호오켄(封建봉건), 사요오(作用작용), 텐케이(典型전형), 샤카이(社會사회)처럼 뜻이 비슷하거나 적어도 약간은 뜻이 서로 통한다고 생각되는 어휘를 중국의 고전에서 찾아내 서양어의 단어에 대응시킨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자를 결합해 일본인들 스스로 새로 만들어낸 말이다.
더 예를 들어본다면 테쓰가쿠(哲學철학), 추우쇼오(抽象추상), 캬쿠타이(客體객체), 칸넨(觀念관념), 메이다이(命題명제), 코오사이(公債공채), 쿄오산(共産공산), 킨유우(金融금융), 세이토오(政黨정당), 시혼(資本자본), 기카이(議會의회), 시칸(士官사관), 코쿠사이(國際국제), 덴포오(電報전보), 겐리(原理원리), 겐소쿠(原則원칙), 카가쿠(科學과학), 유우키(有機유기), 무키(無機무기), 겐소(元素원소), 분시(分子분자), 겐시(原子원자), 코오센(光線광선), 에키타이(液體액체), 코타이(固體고체), 키타이(氣體기체), 센이(纖維섬유), 온도(溫度온도), 신케이(神經신경), 비주쓰(美術미술), 켄치쿠(建築건축), 지치(自治자치), 다이리(代理대리), 효오케쓰(表決표결), 히케쓰(否決부결), 키노오(歸納귀납), 사요쿠(左翼좌익), 우요쿠(右翼우익), 주우코오교오(重工業중공업), 케이코오교오(輕工業경공업), 다이토오료오(大統領대통령), 키센(汽船기선), 키샤(汽車기차), 테쓰도오(鐵道철도), 카이샤(會社회사), 히효오(批評비평), 타이쇼오(對稱대칭), 고오가이(號外호외), 쇼오쿄오(宗敎종교), 가쿠이(學位학위), 갓키(學期학기), 민조쿠(民族민족), 한도오(反動반동), 초쿠세쓰(直接직접), 칸세쓰(間接간접), 조오호오(情報정보), 겐지쓰(現實현실), 켓산(決算결산), 신카(進化진화), 붓시쓰(物質물질), 기무(義務의무), 센센(戰線전선), 덴토오(傳統전통), 슈우단(集團집단), 요오소(要素요소), 시료오(資料자료)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이렇게 에도 시대 난학자들이 만들어낸 번역어들과 특히 메이지 시대 이래 일본어로 번역된 유럽어 어휘들은 그 대부분이 한자를 매개로 해 한국어 어휘에 흡수되었고, 또 그 상당량은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으로 역수출되었다. 만약에 우리말에서 일본어의 잔재를 뿌리뽑는다는 것이 일부 순수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일본어에서 수입된 한자어까지를 배척하는 것이라면, 고종석의 표현대로 우리들은 외마디 소리 말고는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입밖에 낼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나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자연과학의 용어들은 거의 대부분이 일본어로 번역된 어휘이다. 심지어 ‘민족주의’라는 말조차도 역시 일본인들의 발명품이며 우리말에서 일본어를 몰아내자는 순수주의자들의 멋진 글들도 일본에서 온 말들로 가득차 있다.
이것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부 국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섭섭한 일이다. 나는 역사적 가정법을 써서 일본의 난학자들이나 메이지 이후의 서양학자들이 해냈던 번역작업들을 우리의 조상들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며, 만일 그러했더라면 지금 일본과 우리의 정치경제적 위치는 달랐으리라는 주장을 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단지 서양과의 접촉에서 일본이 우리보다 한 걸음 빨랐고, 일본인들은 놀라운 흡수력으로 서양문화를 흡수해 그것을 한자에 녹여냈으며, 한일합방 뒤 해방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어가 ‘국어’ 행세를 했던 탓에, 우리는 독자적으로 서양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언어체계 속에 녹여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일본 사람들의 노력으로 한자어화된 서양의 문화를 손쉽게 빌어쓰는 길을 걸었다. 확실한 것은, 메이지 이래 일본 열도에서 만들어진 무수한 신조어들은 한자라는 매개를 통해 즉각 한국어에 흡수됨으로써 한국어의 어휘를 배가시키고 한국인들의 세계 인식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말의 풍부화와 그것을 통한 우리 의식의 획기적 전환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었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고종석의 일침을 우리는 새겨들어야 한다.
난학 이래의 일본 학자들이 유럽의 개념들을 번역하거나 새로운 개념들에 이름을 줄 때 한자를 사용했듯이, 유럽의 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어들을 만들 때 대체로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에 기댄다.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예컨대 의학분야에서는 그리스어가 우세하고 식물학에서는 라틴어 쪽이 압도적이라든가 하는 차이는 있지만, 아무튼 이 두 언어에 기대어서 새로운 용어들을 만든다. 이런 그리스·라틴형 신조어들은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문화적 힘이 큰 나라에서 더 많이 만들어진다. 그 말들이 주로 프랑스어권에서 만들어진 시절도 있었고, 독일어권에서 만들어진 시절도 있었다. 예컨대 근대 화학의 초창기 시절, 원소 이름을 비롯한 대부분의 화학 용어들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졌고,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만들어진 생화학·의학 용어들은 많은 수가 독일어를 고향으로 삼았다. 지금은 주로 영어권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여기서 영어권이란 영국이 아니라 주로 미국을 가리킨다. 자연과학을 비롯해 학문의 전분야에서 이제 미국의 선도성은 확고하니, 결국 새로운 용어, 그리스·라틴형 신조어는 미국에서, 즉 영어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서 잠시 보편어로서의 라틴어와 한문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자. 로마가 멸망한 뒤로도 라틴어는 오래도록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학자와 사제를 포함한 지식 계급의 언어였다. 라틴어는 특히 르네상스 시기에 영광을 얻었다. 이 시기에 라틴어는 인문주의의 보편언어로까지 승격됐다. 특히 과학자들은 라틴어 이외의 다른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라틴어는 우선 보편적이어서 서로 다른 언어권 학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박물관 언어’로서 무엇보다도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 발전에 기여한 위대한 저자들은 거의 라틴어로 글을 썼다. 천문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 티코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이, 해부학과 생리학에서의 안드레아스 베살레와 윌리엄 하비가 대표적인 예다. 학자들이 라틴어로 글을 쓰는 관행이 단지 권위를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통과 전파를 위해서였다는 사실은 특히 강조돼야 한다. 민족어들이 집필 언어로 발전하는 것에 발맞추어서, 그 민족어로 된 책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이 잦게 되었다. 라틴어로 번역이 되어야만 외국의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었고, 또 같은 언어권에서도 라틴어로만 작업을 하는 학자들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라틴어 자리에 영어를 대입하면 현대 의학분야에 대한 설명으로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학자들이 더 이상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게 된 뒤로도, 라틴어(그리고 그리스어)는 과학 술어에 남았다. 19세기 유럽 과학자들은 연구의 새로운 영역과 새로운 개념들을 명명하면서 라틴어(그리고 그리스어)에 의지했다, 그것이 각 언어별 혼동을 피하고 국제적 표준을 세울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식물학, 동물학, 해부학의 국제용어는 여전히 라틴어로 표현된다. 과학의 다른 분야에서도 라틴어에서 차용된 단어나 라틴어 어근을 이용해서 만든 술어들이 흔히 발견된다. 이렇듯, 라틴어는 엄밀히 말해 ‘사어(死語)’가 아니다.
유럽에서의 라틴어와 마찬가지로, 고전 중국어 즉 한문은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국제 공통 문어였다.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일본에서도 한문으로 된 문학작품들, 역사 서적들, 외교 문서들 따위는 그들 나라의 문화적 유산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한국에서는 훈민정음이 창제돼 민족어로 집필이 가능해진 15세기 이후에도, 한문은 여전히 서기 언어의 주류로 남아 19세기 말까지 위세를 잃지 않았다.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민족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지식인 사회에서 ‘퇴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비록 그들이 상대방 나라의 언어를 모를지라도 한문이라는 공통 문어를 통해서 의사를 소통할 수 있었다. 라틴어가 유럽인들의 보편어였듯, 한문은 동아시아인들의 보편어였다. 그리고 이제 영어가 라틴어와 한문을, 지식인과 대중을 묶으려 하고 있다.
고종석이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바는 영어공용어화의 반대가 지닌 계급적 함의에 대한 것이다.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반대한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걸 허락하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며,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나는 정보 사회가 무계급 사회일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에는 반대하지만 자연어 처리에 대한 기술 발전 속도로 볼 때 실시간 번역이 그리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스승의 마지막 주장에는 동의를 유보한다. 가장 좋은 언어정책은 언어를 그냥 놓아두는 것이라고 보는 스승이, ‘영어 공용어화’라는, 국가의 든든한 뒷배경이 필요한 지극히 인위적인 언어정책을 제언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적이고, 민족주의를 가장 나쁜 특수주의라고 비판했으면서도, 한국민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지 않아) 지식과 정보사회로 추방당할 것을 우려하는 대목도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한겨레21의 지면에서 추출하여 스승에게 전한다.
그러나 스승이 주장하는 개인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복음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고종석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라고 설파한다. 이는 우리 모두가 중국인이고, 한국인이듯, 먼 미래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미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도 10대 때부터 배우고 있는 영어에 그리스 이래의 유럽 문화가 담겼다는 의미에서만은 아니다. 그리스 이래의 (또는 이집트 이래의) 유럽 문화는 지금 우리 제도, 우리 일상생활, 우리 사상의 본질적 부분이 되어 있다. 그것은 복거일이 지적하듯, 이미 우리의 ‘지배적’ 전통이 되었다. 그것이 ‘외래 문명’이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 ‘외래 문명’의 힘에 많은 부분이 밀려난 우리의 ‘재래 문명’ - 한문 문명 - 역시 우리가 조금 일찍 받아들인 외래 문명일 뿐이다. 말을 바꾸어, 유럽에서 온 그 ‘외래 문명’은 우리가 조금 늦게 받아들인 재래 문명일 뿐이라고 지적하며 스승은 복음을 계속한다.
그 두 ‘외래 문명’ 또는 그 두 ‘재래 문명’ 사이의 시간차는 고작 1천수백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1천 수백 년은 인류가 자연상태를 벗어나 문화를 만든 이후부터 따져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거기에 대해, 그 1천수백 년의 밀도는 그 이전 수만 년의 밀도보다 훨씬 더 촘촘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유럽 문명을 전통화하며 살아낸 지난 1백여 년의 밀도는 그 이전 1천수백 년의 밀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촘촘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인과 우리를 나누는 특질들은, 중국인과 우리를 나누는 특질들처럼, 그들과 우리를 인류로서 묶는 특질들에 견주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적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그리스인이라는 말은 우리가 모두 개인이라는 말이다. 인류의 기본적 단위로서의 개인, 궁극적 소수로서의 개인 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는 스승이 전파하는 개인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전도사를 자처할 작정이다.
노뼈, 撓骨, Radius - 해부학 용어 한글화에 대한 이견(異見)
1학년 후배와 나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4년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들이 배우고 있는 지식에 대해 대화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4년의 시간 간격이 주는 차이보다 훨씬 큰 혼란을 겪는다. 이는 4년이라는 기간 동안의 지식 발전의 경사를 내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그보다는 의사 소통의 기본이 되는 용어의 불일치에서 온다. 특히 해부학 용어에 이르면 그 혼란은 당황으로 증폭된다. 나는 ‘요골’이라 부르며, 후배는 ‘노뼈’라고 부른다. 나는 ‘척골’이라고 부르며, 후배들은 ‘자뼈’라고 부른다. 내가 ‘관상동맥’이라고 부르는 동맥을 후배들은 ‘심장동맥’이라고 부른다. 해부학적으로 위치와 방향을 가리키는 용어들, 즉 외측과 가쪽, 내측과 안쪽, 복측과 배쪽 등의 용어가 결합되어 파생된 해부학 용어들은 더더욱 의사 소통이 쉽지 않게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대화할 때는 ‘요골’이라고 부르지 않고 ‘라디우스’라고 부름으로써 의사 소통을 완료한다. ‘노뼈’는 아직까지 내 어휘 목록에서 낯설다.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번역한 해부학 용어와 20세기 말 다시 그 용어를 한국어로 풀어쓴 해부학 용어가 뜻이 쉽게 통하지 않고 바로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유래한 해부학 용어로 후배와 나는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그들과 나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20세기말까지의 시간간격을 4년으로 압축시켜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해부학 용어 한글화는 내가 본과 1학년 시절에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즉 지금 후배들이 배우고 있는 한글 용어 가운데 위치와 방향을 지시하는 용어 등은 나도 이미 그 시절에 배워서 눈에 익숙한 단어들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들고 있는 1학년 후배의 해부학 총론을 만약 한글 용어 뒤에 노출시킨 익숙한 영어표기가 없다면 불과 몇 페이지도 읽어내지 못한다. 이미 1학년 후배의 해부학과 나의 해부학은 그 내용에서 일치할 지 몰라도 그 형식에서는 다른 것이 된 것이다. 나는 어려운 한자어, 결코 한문이 아닌, 해부학 용어를 순 우리말 용어로 개정하는 작업에 담긴 의의의 일부에는 동의한다. 국한문 혼용은 개화기 지식인들의 주제이지 세기말 지식인들의 주제가 아니다. 국한문 혼용이냐, 한글 전용이냐는 논쟁이 서로의 차이점만 확인한 채 종결되는 것이 비일비재함에도 언중(言衆)들은 세로쓰기보다는 가로쓰기를 선호하고 한자표기보다는 한글전용을 옹호함으로써 학계의 그런 논의를 비웃고 있다. 즉 해부학 용어에서도 가능하면 우리말 표기가 새로운 세대들의 지식흡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만 나는 해부학 용어 한글화에 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운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할 차례가 되었다. 대부분의 논거들은 앞에 인용한 나의 스승의 글에 암시되어 있다. 우선 우리가 ‘노뼈’라고 부르든 ‘요골’이라고 부르든 그것이 가리키는 바는 ‘Radius’라는 점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특히 해부학 용어 한글화 운동이 이른바 ‘국어 순화’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한자어를 뿌리뽑겠다는 생각은 언어순수주의자들에서 파생하여, 정도는 다르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생각이다. 그러나 18세기 독일에서 벌어졌던 순수한 독일어 운동은 지금 몇 개의 어휘들만을 남긴 채 파산하였으며, 이승만 정권 당시 시도된 순한글화 운동은 현재의 우리말 어휘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말았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그러한 운동의 무모함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 심각한 점은 인종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은 전체주의가 사회에 창궐할 때마다 비슷한 운동이 힘을 얻어 부활하곤 한다는 점이다. 외래어나 번역투를 인위적으로 몰아내 한국어를 순화하겠다는 충동은 근본적으로 전체주의적이다. ‘국어 순화’의 ‘순화’는 삼청교육대의 저 악명 높은 ‘순화교육’의 ‘순화’다. 실상, 순결을 향한 집착, 즉 순화 충동은 흔히 죽임의 충동이다. 믿음의 순결성, 피의 순결성, 이념의 순결성에 대한 집착이 역사의 구비구비에 쌓아놓은 시체더미들을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국어 순화’의 충동에 내재된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요골’이라고 부를 때보다 ‘노뼈’라고 부름으로써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이 확고하게 다져질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언어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의 극단적 표현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진중권의 입을 빌어 설명하겠다. 언어관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근대 철학자들의 언어관, 즉 소통수단으로서의 언어관으로 이는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본주의, 산업혁명으로 특징지워지는 초기 근대의 멘탈리티를 대변한다. 다른 하나는 훔볼트에서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공동체 생활형식의 표현으로서의 언어관. 이는 후기 근대에 널리 인정되고 있는 관점이다. 앞의 관점이 언어를 한갓 망치나 끌 같은 연장으로 보는 도구주의적 성격을 띤다면, 후자는 언어 속에서 그 이상의 것 즉, 한 언어공동체의 세계관과 세계감정의 표현을 본다. 문제는 극단주의다. 가령 극단화된 도구주의적 언어관은 모든 것을 기술합리성만으로 설명하는 천박한 환원주의나 인간적 가치의 수단화, 도구화로 나아가게 된다. 다른 한편 하이데거의 언어관을 극단화하여 언어를 실제화하면 괴상한 언어신비주의 내지 존재신학에 빠지게 된다. 전자, 즉 천박한 자유주의와 후자, 즉 우익 근본주의가 만났을 때, 혹은 전자가 후자에게 투항을 해버릴 때, 한편으로 모든 인간적 가치의 수단화와 도구화, 다른 한편으로 이 로봇들의 세계관의 공백을 메워주는 심오한(?) 신화와 정치신학이 결합된 끔직한 (네오)파시스트적 사회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해부학 용어로 돌아와보자. 현재 해부학 용어 가운데 한글화의 표적이 되고 있는 대상은 대부분이 위에서 언급한 에도 시대 난학자들과 메이지 시대 서양학자들이 번역한 단어들이다. 중국에서 수천년 전에 들어온 한자어들은 그 일부만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신장’은 ‘콩팥’으로, ‘대장’은 ‘큰창자’로 바뀐 것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보편어로서의 한문이 지식인 사회에서 사용된 관계로 그나마 순우리말로 붙일 수 있는 해부학 용어들은 몇가지 되지 않으며 설령 찾아낸다고 해도 한자어에 비해 비속한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많아 쉽사리 채택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즉 ‘심장’을 ‘염통’이라고 고칠 수는 없으며, ‘방광’을 ‘오줌보’라고 고치는 날도 그리 빨리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한글화라는 작업의 내용이 일본에서 번역한 단어들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이며 때로는 적합한 순우리말 단어를 찾아내 대치시키는 노력이라는 점, 또 그 영역이 해부학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난학자들과 서양학자들이 들인 공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완전히 새로 만들어낸 단어들에 대해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세포와 분자와 신경에 대해서는 딱하게도 우리말로 바꿀 단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식 습득의 장점 이외에 강조하고 있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나는 선뜻 지지할 수가 없다. 해부학 용어는 기본적으로 의학과 의료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전문용어이지 일반인들과 대화하기 위한 용어는 아닌 것이다. 실제로 환자의 부러진 팔을 두고 ‘노뼈’라고 얘기하든 ‘요골’이라고 얘기하든 그것을 배운 사람이 아니고는 환자가 더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 발음상으로도 나는 ‘노뼈’를 발음할 때 느끼는 뻑뻑한 울림보다는 ‘요골’을 발음할 때 느끼는 걸걸한 울림이 더 좋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표기할 때라면 몰라도 내 입말 습관에서 ‘노뼈’가 ‘요골’보다 먼저 튀어나올 일은 없을 듯하다. 오히려 나는 고쳐야 할 것으로 의무기록의 맨 앞에 붙어 있는 노란 딱지, 자문의뢰서를 흔히 이렇게 부른다, 끝 부분마다 무슨 주문(呪文)처럼 기록되어 있는 ‘고진선처 앙망하나이다’라는 봉건 잔재 가득한 문장부터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학적 검진’처럼 분명한 오역의 경우를 ‘신체 검진’과 같은 용어로 교정해야 하며, 악문과 오문이 넘쳐나는 의학논문을 정확한 문장으로 손질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언어' 감염자다.
우리는 모두 감염자다. 의학적으로도 내 피부는 셀 수 없이 많은 포도상구균이 상재하고 있고, 내 위장관은 대장균과 협동하여 대사를 진행시키고 있으며, 심지어 내 폐는 결핵균에 의해 감염되어 있다. 그리고 나의 언어는 시간상으로는 고대 그리스·로마와 고대 중국과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와 현대의 한국에 걸쳐 있으며, 공간상으로는 동아시아와 서구를 포함하여 사이버스페이스까지 접속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세상이 나의 언어 속에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폭력적 현실의 세계와 대비되어 행복하다. 만일 이 풍부한 언어들에서 순수한 우리말만을 남기고 전부 제거해야 한다고 하면,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나는 마치 골수이식을 받고 무균실에서만 생활해야 되는 환자처럼 한 마디 말도, 한 줄의 문장도 써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노뼈’와 ‘요골’과 ‘라디우스’를 발음함으로써, ‘현대 한국인’이고 ‘근대 일본인’이며, 동시에 ‘고대 그리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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