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낙상 사고로 우측 원위부 요골 골절을 당하여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 중이다. 무료한 재활 기간 동안 문득 26년 전에 서울의대간호대 교지 <연건> 14호(1999년 가을호)에 '노뼈, 撓骨, Radius:『감염된 언어』에 대한 긴 메모'라는 글을 발표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이 없는 분은 베껴 쓴 문장이 대부분인 앞부분은 건너 뛰고 '노뼈, 撓骨, Radius - 해부학 용어 한글화에 대한 이견(異見)'부터 읽어도 좋다.

노뼈, 撓骨, Radius: 『감염된 언어』에 대한 긴 메모

황승식(의학 3)

고종석은 나의 스승이다. 그동안 나를 가르쳐주신 훌륭한 선생님과 교수님들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되바라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상당부분 그의 영향이다. 이러한 나의 고백이 고종석에게 어이없는 무고(誣告)가 될 지, 아니면 엉뚱한 재미가 될 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스승이, 단지 지식뿐만 아니라 생각과 사상의 영역에까지 장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범위를 좁히면 나는 감히, 나의 지도교수님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스승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그 이외에 다른 사람을 쉽게 떠올릴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와 어떤 인간적인 끈을 갖고 그를 스승으로 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오로지 그의 텍스트를 통해 사숙(私塾)한 것뿐이다. 그러나 텍스트를 통한 간접적인 배움이 내가 그의 제자를 자임하는데 충분치 못하다는 논리는 공소(空疎)하다. 공자를 친견(親見)할 수조차 없었으나 유교적 이상사회 건설의 일꾼을 자임한 조선의 사대부는 사서삼경과 삼강오륜으로 오백년을 통치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남한의 운동권은 주체사상 총서나 마르크스·레닌 원전을 통해 얻은 결론으로 사회를 해석하여 부도덕한 정권에 대항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음이 그에 대한 반증의 일부이다.

고종석이 ‘한겨레신문’, 지금은 ‘한겨레’로 제호가 바뀌었지만, 기자 시절 써내는 기사는 십여년 전 내가 문장을 막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훌륭한 교본이 되어 왔으며, 지금도 나의 책꽂이 가장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위치에 그의 책들이 꽂혀 있다. 나는 산문집 ‘고종석의 유럽통신’과 ‘책읽기 책일기’를 통해 정확하면서도 풍부한 어휘로 이루어진 우리말 문장의 아름다움을 습득했고, 단편집 ‘제망매’를 통해 그가 건조한 문장으로도 일상을 재구성하여 소설적 재미를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으며, ‘감염된 언어’와 ‘언문세설’을 통해 국어에 대한 그의 애정을 감지했다. 그러나 단지 그의 관심이 문학과 언어에 한정됐다면 나는 그의 제자됨을 참칭(僭稱)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의 텍스트를 통해 개인주의가 옹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배웠고, 자유주의가 천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배웠으며, 극성스럽다못해 악랄하고 뻔뻔한 남한의 극우파와 대조되는, 프랑스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적어도 지난 이백년간 좌익에 대항하여 가다듬은 우익의 당당한 논리를 배웠고,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좌익이 존재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배웠고, 이 점이 가장 중요한데, 우리 사회에서 모든 극단주의에 대한 저항이 소중한 진보라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지금 ‘감염된 언어’라는 텍스트의 일부에 대한 긴 인용과 짧은 주석을 통해 우리 사회에 파고든, 물론 이 글에서 우리 사회는 의학과 의료를 매개하는 집단의 사회로 한정된다,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지루하지만 고종석의 주장을 꼼꼼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대한 그의 주장을 검토한 후에 해부학 용어 한글화에 대한 나의 지적을 덧붙이고자 한다. 어줍잖은 몇가지 사실에서 비약된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편할 대로 앞 뒤 문맥 잘라서, 진중권의 표현대로라면 텍스트를 강간하여, 해석하는 것은 딸國질이 입에 붙은 극우파의 전매특허이므로 그들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대한 의견(意見)

고종석은 자신의 스승으로 복거일을 들고 있다. 이리하여 ‘족보’상으로는 복거일이 나의 할아버지 스승뻘 되겠는데 내가 지금까지 접해본 복거일의 텍스트는 결코 스승으로 섬길만한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아직 하산할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내 자신을 탓해야 할 지, 스승의 평가가 지나침을 감히 지적해야 할 지, 스승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복거일은 참으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가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문학을 업으로 삼고 있으며, 가끔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다. 90년대 벽두에 그가 상재(上梓)한 『현실과 지향 - 한 자유주의자의 시각』은 민중주의나 파시즘에 경도되지 않은 자유주의자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정운영이 그 책의 발간과 때를 같이 하여 출판저널에 기고한 쟁점비평을 시작으로 촉발된 세칭 ‘자유주의 논쟁’은 본격적으로 벌어질 기회를 맞이하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고종석은 그것이 우리 지식인 사회의 자폐성·자족성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데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다행히도(?) 고종석은 ‘배덕자’의 변명이라는 소제목으로 복거일의 주장에 내재한 ‘대중주의적·민중주의적’ 견해와 민주주의의 결핍이 사실은 복거일이 옹호하는 자유주의·개인주의에 치명적임을 지적하고 있어서 불안한 제자를 안심시키고 있다.

작년 하반기 인터넷 조선일보가 멍석을 깔고 복거일이 패를 돌린 ‘영어공용어화 논쟁’을 고종석은 ‘자유주의 논쟁’과 격을 같이 하여 ‘민족주의 논쟁’이라고 부르기를 주장한다. 복거일의 산문집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가 겨냥하고 있는 바는 단순히 민족어가 아니라 민족주의 전반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자유주의 논쟁’ 당시 복거일의 비판자들은 대부분 좌파였고, 이번 논쟁에서는 대부분 우파라는 점이다. 나는 여기에서 영어공용어화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욱하는 민족적 감정으로 복거일과 고종석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런 종류의 비난은 인터넷 조선일보에 팥다발 같이 올라있다. 물론 나는 영어공용어화라는 주장 자체는 온 국민이 모국어와 더불어 영어를 읽고 쓸 수 있게 강요함이 불가피하다는 단순한 반증에서 분명히 그런 주장은 자유주의적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적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통렬한 비판은 진중권이 ‘말’ 1월호에 기고한 “복거일, 당신은 ‘멋진 신세계’를 꿈꾸는가”에서 들을 수 있으므로 나까지 여기서 돌팔매질을 해야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내가 복거일과 고종석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지점은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를 공론화했다는 점이다. 민족주의 얘기만 나오면, 민족주의 곧 애국, 비민족주의 곧 매국의 등식이 수립되고 얘기는 끝나버리는 우리 사회의 현실 말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는 파시즘과 군국주의, 그리고 옹졸한 국수주의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 남북한이 함께 일본 정벌에 나선다는 만화가 최고 인기 작가에 의해 그려져 버젓이 팔리고, 비록 정신나간 부함장이긴 하지만 일본에 핵미사일 발사를 시도하다 불발에 그친다는 시나리오의 영화가 관객을 집단 마취시키고 있는 사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이 점에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좋든 싫든 이른바 지식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얼마 전에 나온 임지현 교수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 신화와 허무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라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급히 내리는 결론이지만 민족주의는 그것이 비록 이념의 허울을 둘러쓰고 있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고정불변의 이념이 아니며 결정적으로 집단적 감정 상태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복거일과 고종석이 주장하는 다른 문제, 즉 일본산 외래어와 서양말 번역투에 대해 한국어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다소 지루하겠지만 이 글 전체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므로 나는 고종석의 주장을 좀 길게 인용하고자 한다. 고종석은 인류문화사적 관점에서 가장 감동적인 시기로 일본 에도 중기 이래의 란가쿠와 메이지 시대 이후의 번역 열풍을 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한문 문명권과 그리스·로마 문명권을 융화시키며 동서 문화 교섭의 가장 빛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18세기 말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 등이 네덜란드어 해부학서(!)를 『카이타이신쇼(解體新書)』라는 제목으로 번역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시작된 란가쿠는 초기의 의학에서 화학, 물리학, 천문학, 군사학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궁극적으로 세계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만들 발판을 마련했다. 고종석이 지적하는 일본인들의 위대함은 유럽 문화의 전지구화를 마무리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면서도 한자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 유산 속에 완전히 녹여버렸다는 데에 있다는 점이다. 난학자들은 네덜란드어(와 네덜란드어에 투영된 유럽의 여러 언어들)를 통해서 유럽의 개념들을 일본어로 옮기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고, 그것은 메이지 유신 뒤 유럽 문화의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훨씬 더 커다란 규모의 번역사업으로 확장됐다. 그러나 이들의 번역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유럽 문명과의 접촉이 앞섰던 중국을 통해서 유럽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런 매개 없이 유럽 문화를 독자적으로 흡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본이나 동아시아에 비슷한 개념의 어휘들이 있을 경우엔 문제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들이 옮기려고 한 네덜란드어 단어들 가운데는 낯선 개념이 태반이었으므로 그들의 고생은 더 컸다. 그것은 대단한 열정과 재능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통역사들과 난학자들은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케이요오시(形容詞형용사), 후쿠시(副詞부사), 니치요오비(日曜日일요일), 세이산카리(靑酸加里청산가리), 산소(酸素산소), 스이소(水素수소), 카가쿠(化學화학), 주우료쿠(重力중력), 큐우신료쿠(求心力구심력), 코오세이(恒星항성), 사이보오(細胞세포), 엔제쓰(演說연설), 사이반쇼(裁判所재판소) 따위의 말들은 모두 당시 에도의 난학자들과 나가사키의 통역사들이 네덜란드어를 번역해서 만들어낸 말이다.

막부 말기에 요오가쿠(洋學양학)의 중심은 란가쿠에서 에이가쿠(英學: 영어를 통해 서양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로 바뀌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래 양학은 최전성기를 맞아 무수한 번역어들이 생겨났다. 물밀 듯이 일본 열도를 휩쓰는 서양 문화에 따라 유럽 전체와 그 언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뒤따랐고, 그 바탕 위에서 새 번역어들은 더 정교해졌다. 그 번역어들 중에는 리세이(理性이성), 론리(論理논리), 이시키(意識의식), 이시(意志의지), 구타이(具體구체), 랏칸(樂觀낙관), 히칸(悲觀비관), 코오칸(交換교환), 분파이(分配분배), 도쿠센(獨占독점), 초치쿠(貯蓄저축), 세이지(政治정치), 세이후(政府정부), 센쿄(選擧선거), 케이사쓰(警察경찰), 호오테이(法庭법정), 한케쓰(判決판결), 호쇼오(保證보증), 토오키(登記등기), 세이키(世紀세기), 칸초오(間諜간첩), 슈기(主義주의), 세이간(請願청원), 코오쓰우(交通교통), 하쿠시(博士박사), 린리(倫理윤리), 소오조오(想像상상), 분메이(文明문명), 게이주쓰(藝術예술), 코텐(古典고전), 코오기(講義강의), 이가쿠(醫學의학), 에이세이(衛生위생), 호오켄(封建봉건), 사요오(作用작용), 텐케이(典型전형), 샤카이(社會사회)처럼 뜻이 비슷하거나 적어도 약간은 뜻이 서로 통한다고 생각되는 어휘를 중국의 고전에서 찾아내 서양어의 단어에 대응시킨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자를 결합해 일본인들 스스로 새로 만들어낸 말이다.

더 예를 들어본다면 테쓰가쿠(哲學철학), 추우쇼오(抽象추상), 캬쿠타이(客體객체), 칸넨(觀念관념), 메이다이(命題명제), 코오사이(公債공채), 쿄오산(共産공산), 킨유우(金融금융), 세이토오(政黨정당), 시혼(資本자본), 기카이(議會의회), 시칸(士官사관), 코쿠사이(國際국제), 덴포오(電報전보), 겐리(原理원리), 겐소쿠(原則원칙), 카가쿠(科學과학), 유우키(有機유기), 무키(無機무기), 겐소(元素원소), 분시(分子분자), 겐시(原子원자), 코오센(光線광선), 에키타이(液體액체), 코타이(固體고체), 키타이(氣體기체), 센이(纖維섬유), 온도(溫度온도), 신케이(神經신경), 비주쓰(美術미술), 켄치쿠(建築건축), 지치(自治자치), 다이리(代理대리), 효오케쓰(表決표결), 히케쓰(否決부결), 키노오(歸納귀납), 사요쿠(左翼좌익), 우요쿠(右翼우익), 주우코오교오(重工業중공업), 케이코오교오(輕工業경공업), 다이토오료오(大統領대통령), 키센(汽船기선), 키샤(汽車기차), 테쓰도오(鐵道철도), 카이샤(會社회사), 히효오(批評비평), 타이쇼오(對稱대칭), 고오가이(號外호외), 쇼오쿄오(宗敎종교), 가쿠이(學位학위), 갓키(學期학기), 민조쿠(民族민족), 한도오(反動반동), 초쿠세쓰(直接직접), 칸세쓰(間接간접), 조오호오(情報정보), 겐지쓰(現實현실), 켓산(決算결산), 신카(進化진화), 붓시쓰(物質물질), 기무(義務의무), 센센(戰線전선), 덴토오(傳統전통), 슈우단(集團집단), 요오소(要素요소), 시료오(資料자료)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이렇게 에도 시대 난학자들이 만들어낸 번역어들과 특히 메이지 시대 이래 일본어로 번역된 유럽어 어휘들은 그 대부분이 한자를 매개로 해 한국어 어휘에 흡수되었고, 또 그 상당량은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으로 역수출되었다. 만약에 우리말에서 일본어의 잔재를 뿌리뽑는다는 것이 일부 순수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일본어에서 수입된 한자어까지를 배척하는 것이라면, 고종석의 표현대로 우리들은 외마디 소리 말고는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입밖에 낼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나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자연과학의 용어들은 거의 대부분이 일본어로 번역된 어휘이다. 심지어 ‘민족주의’라는 말조차도 역시 일본인들의 발명품이며 우리말에서 일본어를 몰아내자는 순수주의자들의 멋진 글들도 일본에서 온 말들로 가득차 있다.

이것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부 국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섭섭한 일이다. 나는 역사적 가정법을 써서 일본의 난학자들이나 메이지 이후의 서양학자들이 해냈던 번역작업들을 우리의 조상들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며, 만일 그러했더라면 지금 일본과 우리의 정치경제적 위치는 달랐으리라는 주장을 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단지 서양과의 접촉에서 일본이 우리보다 한 걸음 빨랐고, 일본인들은 놀라운 흡수력으로 서양문화를 흡수해 그것을 한자에 녹여냈으며, 한일합방 뒤 해방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어가 ‘국어’ 행세를 했던 탓에, 우리는 독자적으로 서양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언어체계 속에 녹여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일본 사람들의 노력으로 한자어화된 서양의 문화를 손쉽게 빌어쓰는 길을 걸었다. 확실한 것은, 메이지 이래 일본 열도에서 만들어진 무수한 신조어들은 한자라는 매개를 통해 즉각 한국어에 흡수됨으로써 한국어의 어휘를 배가시키고 한국인들의 세계 인식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말의 풍부화와 그것을 통한 우리 의식의 획기적 전환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었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고종석의 일침을 우리는 새겨들어야 한다.

난학 이래의 일본 학자들이 유럽의 개념들을 번역하거나 새로운 개념들에 이름을 줄 때 한자를 사용했듯이, 유럽의 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어들을 만들 때 대체로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에 기댄다.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예컨대 의학분야에서는 그리스어가 우세하고 식물학에서는 라틴어 쪽이 압도적이라든가 하는 차이는 있지만, 아무튼 이 두 언어에 기대어서 새로운 용어들을 만든다. 이런 그리스·라틴형 신조어들은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문화적 힘이 큰 나라에서 더 많이 만들어진다. 그 말들이 주로 프랑스어권에서 만들어진 시절도 있었고, 독일어권에서 만들어진 시절도 있었다. 예컨대 근대 화학의 초창기 시절, 원소 이름을 비롯한 대부분의 화학 용어들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졌고,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만들어진 생화학·의학 용어들은 많은 수가 독일어를 고향으로 삼았다. 지금은 주로 영어권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여기서 영어권이란 영국이 아니라 주로 미국을 가리킨다. 자연과학을 비롯해 학문의 전분야에서 이제 미국의 선도성은 확고하니, 결국 새로운 용어, 그리스·라틴형 신조어는 미국에서, 즉 영어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서 잠시 보편어로서의 라틴어와 한문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자. 로마가 멸망한 뒤로도 라틴어는 오래도록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학자와 사제를 포함한 지식 계급의 언어였다. 라틴어는 특히 르네상스 시기에 영광을 얻었다. 이 시기에 라틴어는 인문주의의 보편언어로까지 승격됐다. 특히 과학자들은 라틴어 이외의 다른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라틴어는 우선 보편적이어서 서로 다른 언어권 학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박물관 언어’로서 무엇보다도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 발전에 기여한 위대한 저자들은 거의 라틴어로 글을 썼다. 천문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 티코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이, 해부학과 생리학에서의 안드레아스 베살레와 윌리엄 하비가 대표적인 예다. 학자들이 라틴어로 글을 쓰는 관행이 단지 권위를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통과 전파를 위해서였다는 사실은 특히 강조돼야 한다. 민족어들이 집필 언어로 발전하는 것에 발맞추어서, 그 민족어로 된 책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이 잦게 되었다. 라틴어로 번역이 되어야만 외국의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었고, 또 같은 언어권에서도 라틴어로만 작업을 하는 학자들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라틴어 자리에 영어를 대입하면 현대 의학분야에 대한 설명으로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학자들이 더 이상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게 된 뒤로도, 라틴어(그리고 그리스어)는 과학 술어에 남았다. 19세기 유럽 과학자들은 연구의 새로운 영역과 새로운 개념들을 명명하면서 라틴어(그리고 그리스어)에 의지했다, 그것이 각 언어별 혼동을 피하고 국제적 표준을 세울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식물학, 동물학, 해부학의 국제용어는 여전히 라틴어로 표현된다. 과학의 다른 분야에서도 라틴어에서 차용된 단어나 라틴어 어근을 이용해서 만든 술어들이 흔히 발견된다. 이렇듯, 라틴어는 엄밀히 말해 ‘사어(死語)’가 아니다.

유럽에서의 라틴어와 마찬가지로, 고전 중국어 즉 한문은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국제 공통 문어였다.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일본에서도 한문으로 된 문학작품들, 역사 서적들, 외교 문서들 따위는 그들 나라의 문화적 유산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한국에서는 훈민정음이 창제돼 민족어로 집필이 가능해진 15세기 이후에도, 한문은 여전히 서기 언어의 주류로 남아 19세기 말까지 위세를 잃지 않았다.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민족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지식인 사회에서 ‘퇴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비록 그들이 상대방 나라의 언어를 모를지라도 한문이라는 공통 문어를 통해서 의사를 소통할 수 있었다. 라틴어가 유럽인들의 보편어였듯, 한문은 동아시아인들의 보편어였다. 그리고 이제 영어가 라틴어와 한문을, 지식인과 대중을 묶으려 하고 있다.

고종석이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바는 영어공용어화의 반대가 지닌 계급적 함의에 대한 것이다.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반대한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특정집단이 독점하는 걸 허락하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며,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나는 정보 사회가 무계급 사회일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에는 반대하지만 자연어 처리에 대한 기술 발전 속도로 볼 때 실시간 번역이 그리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스승의 마지막 주장에는 동의를 유보한다. 가장 좋은 언어정책은 언어를 그냥 놓아두는 것이라고 보는 스승이, ‘영어 공용어화’라는, 국가의 든든한 뒷배경이 필요한 지극히 인위적인 언어정책을 제언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적이고, 민족주의를 가장 나쁜 특수주의라고 비판했으면서도, 한국민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지 않아) 지식과 정보사회로 추방당할 것을 우려하는 대목도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한겨레21의 지면에서 추출하여 스승에게 전한다.

그러나 스승이 주장하는 개인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복음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고종석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라고 설파한다. 이는 우리 모두가 중국인이고, 한국인이듯, 먼 미래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미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도 10대 때부터 배우고 있는 영어에 그리스 이래의 유럽 문화가 담겼다는 의미에서만은 아니다. 그리스 이래의 (또는 이집트 이래의) 유럽 문화는 지금 우리 제도, 우리 일상생활, 우리 사상의 본질적 부분이 되어 있다. 그것은 복거일이 지적하듯, 이미 우리의 ‘지배적’ 전통이 되었다. 그것이 ‘외래 문명’이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 ‘외래 문명’의 힘에 많은 부분이 밀려난 우리의 ‘재래 문명’ - 한문 문명 - 역시 우리가 조금 일찍 받아들인 외래 문명일 뿐이다. 말을 바꾸어, 유럽에서 온 그 ‘외래 문명’은 우리가 조금 늦게 받아들인 재래 문명일 뿐이라고 지적하며 스승은 복음을 계속한다.

그 두 ‘외래 문명’ 또는 그 두 ‘재래 문명’ 사이의 시간차는 고작 1천수백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1천 수백 년은 인류가 자연상태를 벗어나 문화를 만든 이후부터 따져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거기에 대해, 그 1천수백 년의 밀도는 그 이전 수만 년의 밀도보다 훨씬 더 촘촘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유럽 문명을 전통화하며 살아낸 지난 1백여 년의 밀도는 그 이전 1천수백 년의 밀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촘촘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인과 우리를 나누는 특질들은, 중국인과 우리를 나누는 특질들처럼, 그들과 우리를 인류로서 묶는 특질들에 견주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적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그리스인이라는 말은 우리가 모두 개인이라는 말이다. 인류의 기본적 단위로서의 개인, 궁극적 소수로서의 개인 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는 스승이 전파하는 개인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전도사를 자처할 작정이다.

노뼈, 撓骨, Radius - 해부학 용어 한글화에 대한 이견(異見)

1학년 후배와 나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4년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들이 배우고 있는 지식에 대해 대화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4년의 시간 간격이 주는 차이보다 훨씬 큰 혼란을 겪는다. 이는 4년이라는 기간 동안의 지식 발전의 경사를 내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그보다는 의사 소통의 기본이 되는 용어의 불일치에서 온다. 특히 해부학 용어에 이르면 그 혼란은 당황으로 증폭된다. 나는 ‘요골’이라 부르며, 후배는 ‘노뼈’라고 부른다. 나는 ‘척골’이라고 부르며, 후배들은 ‘자뼈’라고 부른다. 내가 ‘관상동맥’이라고 부르는 동맥을 후배들은 ‘심장동맥’이라고 부른다. 해부학적으로 위치와 방향을 가리키는 용어들, 즉 외측과 가쪽, 내측과 안쪽, 복측과 배쪽 등의 용어가 결합되어 파생된 해부학 용어들은 더더욱 의사 소통이 쉽지 않게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대화할 때는 ‘요골’이라고 부르지 않고 ‘라디우스’라고 부름으로써 의사 소통을 완료한다. ‘노뼈’는 아직까지 내 어휘 목록에서 낯설다.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번역한 해부학 용어와 20세기 말 다시 그 용어를 한국어로 풀어쓴 해부학 용어가 뜻이 쉽게 통하지 않고 바로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유래한 해부학 용어로 후배와 나는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그들과 나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20세기말까지의 시간간격을 4년으로 압축시켜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해부학 용어 한글화는 내가 본과 1학년 시절에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즉 지금 후배들이 배우고 있는 한글 용어 가운데 위치와 방향을 지시하는 용어 등은 나도 이미 그 시절에 배워서 눈에 익숙한 단어들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들고 있는 1학년 후배의 해부학 총론을 만약 한글 용어 뒤에 노출시킨 익숙한 영어표기가 없다면 불과 몇 페이지도 읽어내지 못한다. 이미 1학년 후배의 해부학과 나의 해부학은 그 내용에서 일치할 지 몰라도 그 형식에서는 다른 것이 된 것이다. 나는 어려운 한자어, 결코 한문이 아닌, 해부학 용어를 순 우리말 용어로 개정하는 작업에 담긴 의의의 일부에는 동의한다. 국한문 혼용은 개화기 지식인들의 주제이지 세기말 지식인들의 주제가 아니다. 국한문 혼용이냐, 한글 전용이냐는 논쟁이 서로의 차이점만 확인한 채 종결되는 것이 비일비재함에도 언중(言衆)들은 세로쓰기보다는 가로쓰기를 선호하고 한자표기보다는 한글전용을 옹호함으로써 학계의 그런 논의를 비웃고 있다. 즉 해부학 용어에서도 가능하면 우리말 표기가 새로운 세대들의 지식흡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만 나는 해부학 용어 한글화에 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운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할 차례가 되었다. 대부분의 논거들은 앞에 인용한 나의 스승의 글에 암시되어 있다. 우선 우리가 ‘노뼈’라고 부르든 ‘요골’이라고 부르든 그것이 가리키는 바는 ‘Radius’라는 점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특히 해부학 용어 한글화 운동이 이른바 ‘국어 순화’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한자어를 뿌리뽑겠다는 생각은 언어순수주의자들에서 파생하여, 정도는 다르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생각이다. 그러나 18세기 독일에서 벌어졌던 순수한 독일어 운동은 지금 몇 개의 어휘들만을 남긴 채 파산하였으며, 이승만 정권 당시 시도된 순한글화 운동은 현재의 우리말 어휘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말았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그러한 운동의 무모함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 심각한 점은 인종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은 전체주의가 사회에 창궐할 때마다 비슷한 운동이 힘을 얻어 부활하곤 한다는 점이다. 외래어나 번역투를 인위적으로 몰아내 한국어를 순화하겠다는 충동은 근본적으로 전체주의적이다. ‘국어 순화’의 ‘순화’는 삼청교육대의 저 악명 높은 ‘순화교육’의 ‘순화’다. 실상, 순결을 향한 집착, 즉 순화 충동은 흔히 죽임의 충동이다. 믿음의 순결성, 피의 순결성, 이념의 순결성에 대한 집착이 역사의 구비구비에 쌓아놓은 시체더미들을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국어 순화’의 충동에 내재된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요골’이라고 부를 때보다 ‘노뼈’라고 부름으로써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이 확고하게 다져질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언어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의 극단적 표현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진중권의 입을 빌어 설명하겠다. 언어관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근대 철학자들의 언어관, 즉 소통수단으로서의 언어관으로 이는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본주의, 산업혁명으로 특징지워지는 초기 근대의 멘탈리티를 대변한다. 다른 하나는 훔볼트에서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공동체 생활형식의 표현으로서의 언어관. 이는 후기 근대에 널리 인정되고 있는 관점이다. 앞의 관점이 언어를 한갓 망치나 끌 같은 연장으로 보는 도구주의적 성격을 띤다면, 후자는 언어 속에서 그 이상의 것 즉, 한 언어공동체의 세계관과 세계감정의 표현을 본다. 문제는 극단주의다. 가령 극단화된 도구주의적 언어관은 모든 것을 기술합리성만으로 설명하는 천박한 환원주의나 인간적 가치의 수단화, 도구화로 나아가게 된다. 다른 한편 하이데거의 언어관을 극단화하여 언어를 실제화하면 괴상한 언어신비주의 내지 존재신학에 빠지게 된다. 전자, 즉 천박한 자유주의와 후자, 즉 우익 근본주의가 만났을 때, 혹은 전자가 후자에게 투항을 해버릴 때, 한편으로 모든 인간적 가치의 수단화와 도구화, 다른 한편으로 이 로봇들의 세계관의 공백을 메워주는 심오한(?) 신화와 정치신학이 결합된 끔직한 (네오)파시스트적 사회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해부학 용어로 돌아와보자. 현재 해부학 용어 가운데 한글화의 표적이 되고 있는 대상은 대부분이 위에서 언급한 에도 시대 난학자들과 메이지 시대 서양학자들이 번역한 단어들이다. 중국에서 수천년 전에 들어온 한자어들은 그 일부만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신장’은 ‘콩팥’으로, ‘대장’은 ‘큰창자’로 바뀐 것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보편어로서의 한문이 지식인 사회에서 사용된 관계로 그나마 순우리말로 붙일 수 있는 해부학 용어들은 몇가지 되지 않으며 설령 찾아낸다고 해도 한자어에 비해 비속한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많아 쉽사리 채택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즉 ‘심장’을 ‘염통’이라고 고칠 수는 없으며, ‘방광’을 ‘오줌보’라고 고치는 날도 그리 빨리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한글화라는 작업의 내용이 일본에서 번역한 단어들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이며 때로는 적합한 순우리말 단어를 찾아내 대치시키는 노력이라는 점, 또 그 영역이 해부학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난학자들과 서양학자들이 들인 공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완전히 새로 만들어낸 단어들에 대해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세포와 분자와 신경에 대해서는 딱하게도 우리말로 바꿀 단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식 습득의 장점 이외에 강조하고 있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나는 선뜻 지지할 수가 없다. 해부학 용어는 기본적으로 의학과 의료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전문용어이지 일반인들과 대화하기 위한 용어는 아닌 것이다. 실제로 환자의 부러진 팔을 두고 ‘노뼈’라고 얘기하든 ‘요골’이라고 얘기하든 그것을 배운 사람이 아니고는 환자가 더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 발음상으로도 나는 ‘노뼈’를 발음할 때 느끼는 뻑뻑한 울림보다는 ‘요골’을 발음할 때 느끼는 걸걸한 울림이 더 좋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표기할 때라면 몰라도 내 입말 습관에서 ‘노뼈’가 ‘요골’보다 먼저 튀어나올 일은 없을 듯하다. 오히려 나는 고쳐야 할 것으로 의무기록의 맨 앞에 붙어 있는 노란 딱지, 자문의뢰서를 흔히 이렇게 부른다, 끝 부분마다 무슨 주문(呪文)처럼 기록되어 있는 ‘고진선처 앙망하나이다’라는 봉건 잔재 가득한 문장부터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학적 검진’처럼 분명한 오역의 경우를 ‘신체 검진’과 같은 용어로 교정해야 하며, 악문과 오문이 넘쳐나는 의학논문을 정확한 문장으로 손질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언어' 감염자다.

우리는 모두 감염자다. 의학적으로도 내 피부는 셀 수 없이 많은 포도상구균이 상재하고 있고, 내 위장관은 대장균과 협동하여 대사를 진행시키고 있으며, 심지어 내 폐는 결핵균에 의해 감염되어 있다. 그리고 나의 언어는 시간상으로는 고대 그리스·로마와 고대 중국과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와 현대의 한국에 걸쳐 있으며, 공간상으로는 동아시아와 서구를 포함하여 사이버스페이스까지 접속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세상이 나의 언어 속에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폭력적 현실의 세계와 대비되어 행복하다. 만일 이 풍부한 언어들에서 순수한 우리말만을 남기고 전부 제거해야 한다고 하면,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나는 마치 골수이식을 받고 무균실에서만 생활해야 되는 환자처럼 한 마디 말도, 한 줄의 문장도 써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노뼈’와 ‘요골’과 ‘라디우스’를 발음함으로써, ‘현대 한국인’이고 ‘근대 일본인’이며, 동시에 ‘고대 그리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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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1일 자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 마지막 칼럼으로 '2086년, 자동차의 퇴출'이라는 제목으로 써보냈다. 시리즈 마지막 칼럼이라는 생각에 느슨해졌는지 다시 읽어봐도 문장의 밀도가 낮다.

[미래오디세이] 2086년, 자동차의 퇴출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에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장착할 것이다. 위성 안내를 받는 각 자동차는 운전자 능력에 맞춘 실수 감지 장치와 추돌 방지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어떤 길은 막히므로 피해야 하고 어떤 길로 가야 빠른지 알려준다. (…) 도시 진입로에 가상 톨게이트와 전자 칩 카드를 만들어 주행거리를 표시하고 해당 금액이 은행 계좌에서 이체되도록 할 것이다. 도시에서 차량은 시민의 공동 재산이 되어 한 사람이 쓰고 난 후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할 것이다. (…) 전기 엔진을 사용하면 내연기관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전기 엔진은 개발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영원히 개발 못할지도 모른다. (…) 앞으로 전 세계 모든 도시에서 자동차 운행을 금지시킬 수밖에 없다. 운행 금지 결정은 도시와 교통의 모든 관계를 뒤흔들어 놓을 것이며 한편으로는 원격 근무와 정보 경제 발달을 촉진할 것이다.”

이는 1998년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펴낸 <21세기 사전> 중 ‘자동차’ 항목의 일부다. 한국에서도 내비게이션과 하이패스 시스템은 운전자가 자동차에 장착하는 필수 옵션이 된 지 오래다. 우버로 대표되는 자동차 공유 서비스 시장 규모는 확대일로에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해 당사자의 갈등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아탈리의 비관적 예측과 달리 2017년 기준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54% 증가한 110만대로 총 보유량은 300만대를 넘어섰고, 한국도 2016년 전기차 보급률이 3.8%를 기록했다.

아탈리가 자동차 항목의 마지막 문장에 제시한 자동차 운행 금지 결정이라는 전망은 급진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예측일까? 2009년 스페인 갈리시아주 폰테베드라는 자동차 시내 통행을 전면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시내 도로는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이 사라지고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2013년 이후 대기 오염은 61% 감소했다. 2009년 이래로 단 한 명의 교통사고 사망자도 없었다. 시내를 여행하는 사람의 70%는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게 됐다. 자동차 통행 금지 결정 이후로 교통 체증과 대기 오염이 줄어들자 1만2000명의 시민이 도심으로 이사해 살게 됐다. 주차공간을 찾느라 도로를 배회하는 운전이 교통 체증의 주범이었으므로 도시 외곽에 지하주차장을 만들어 도로 주차를 대신하였다.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린 시장은 내리 4번 연속 시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폰테베드라 시내 통행 금지 결정 이후 외곽의 교통 상황은 악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폰테베드라가 인구 8만명에 불과한 소도시라 자동차 통행 금지라는 과격한 정책이 실행될 수 있지 않았을까? 메르세데스 벤츠와 포르쉐가 탄생한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2017년부터 대기오염이 높은 날 디젤 엔진 배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차량은 시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정책을 시작했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 3월에 발표한 문서에 따르면 전 세계 13개 주요 도시가 자동차 퇴출 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는 2019년까지 도심에서 모든 자동차 통행을 완전히 금지할 계획이다. 스페인 마드리드도 2020년까지 도심 2㎢ 면적을 차량 통행 금지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독일 함부르크는 2035년까지 시내 40% 면적을 공원과 놀이터 등 녹지로 채워 자동차가 다니기 어렵게 만들 계획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올해 말까지 자전거 고속도로를 도시 외곽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프랑스 파리는 2020년까지 디젤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고 자전거도로를 2배로 늘릴 예정이다. 영국 런던도 2020년까지 디젤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혼잡통행료를 무겁게 부과할 계획이다. 벨기에 브뤼셀은 전 유럽에서 가장 넓은 차 없는 지역을 지정해 보행자 편의를 높일 예정이다. 멕시코시티와 콜롬비아 보고타도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도심에서 퇴출시키는 정책을 시행 중이고 확대할 계획이다.

<하늘에서 본 지구>와 <하늘에서 본 한국>을 펴낸 세계적 항공 사진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은 2006년 전시회를 위해 내한했을 때 시사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은 완전히 차량으로 마비된 인상이고, 한 사람이 SUV 차량을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12년이나 지난 2018년 연초 서울시는 미세먼지가 심할 때 출퇴근 시간대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추진하다 중단하고 자발적으로 차량운행 자제를 유도하는 소극적 대책으로 전환한 바 있다. 2016년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가 불거진 한참 뒤인 지난 4월에야 환경부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디젤차 판매 축소를 유도하여 ‘클린 디젤’ 정책의 폐기를 선언했다. 오락가락하는 디젤 정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자동차업계가 부담하게 된 셈이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는 세계 인구의 10명 중 9명이 대기오염에 영향을 받고 있고 매년 600만명 이상이 사망한다고 추산했다. 지난해 서울환경연합이 수도권 거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세먼지 발생 원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중국 등 주변국 영향’을 꼽는 비율이 45%로 가장 많았지만, 2016년 환경부가 미국 항공우주국과 공동으로 국내 대기질을 조사한 결과는 다르다. 한국 내 초미세먼지의 52%는 국내에서 생성된 것이고, 나머지 34%는 중국 내륙에서, 9%는 북한에서 생겨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감축은 자동차 통행을 줄이고 차량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한 다음 중국 탓을 하는 것이 순리다. 1886년 카를 벤츠는 “말 없이 달리는 마차를 만들겠다”며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2086년 자동차가 퇴출된 미래 서울시에 들른 고틀립 다임러는 청계천 도로를 순환하는 자동차에 관광객으로 올라타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자동차는 외형만 과거의 자동차일 뿐 내연기관이 아니라 전기모터로 구동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가 퇴출된 미래 도시 시민이 잃을 것이라고는 미세먼지요, 얻을 것은 맑은 공기와 건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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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6일 자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에는 '2069년, 지도의 소멸'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써보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지도예찬: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특별전을 관람하고 돌아온 흥분에 평소 전공 분야의 관심을 보태 연재 시리즈 중 가장 빨리 완성한 칼럼 중 한 편이다.

[미래오디세이] 2069년, 지도의 소멸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지도예찬: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특별전을 관람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조선왕조 500년을 풍미했던 조선지도는 오늘날 동아시아의 지리학 연구와 지도 제작 분야에서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특별전에는 ‘동국대지도’ ‘대동여지도’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요 소장품 외에도 국내 20여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중요 지도와 지리지가 전시돼 있다.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는 공간을 주제로 한 지도를 만날 수 있다. 태종 2년(1402년) 5월 제작해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로 평가받고, 역사학자 제리 브로턴 영국 퀸메리대학교 교수가 쓴 <욕망하는 지도: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의 한 장을 당당히 차지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다만, 원본을 소실하고 사본조차 일본이 보관하고 있는 탓에 복제본의 일부만 전시실이 아닌 도록에 수록한 점은 아쉽다.

조선 후기 화가 윤두서가 1710년경 만든 우리나라 전국지도인 ‘동국여지지도’는 대폭 증가한 지리 정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기호를 사용했고, 지도의 우측 여백에 범례를 두어 기호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제작했다. 범례는 현대식 지도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중요한 도구인데, 이 지도는 현존 지도 중 범례를 적용한 가장 이른 사례이다.

시간을 주제로 한 전시실에서 흥미로운 지도는 김수홍이 현종 14년(1673년)에 만든 ‘조선팔도고금총람도’이다. 우리나라 전국의 지리 정보에 더하여 각지의 주요 인물과 역사적 사실을 병기한 한 장짜리 목판본 소축척 전국지도다. 서울을 축척과 무관하게 강조하여 상세 지리 정보를 부각시킨 지도로, 중요 정보를 기준으로 변형시킨 현대식 카토그램과 매우 비슷하다. 중요한 자연지명이나 인문지명을 기재하던 당시 관행에서 벗어나 해당 지역의 중요 인물을 선택해 기재했다. 예를 들어 한산도에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곳이라는 설명을 담았다.

특별전의 하이라이트는 김정호가 제작한 전통 지도의 결정판 ‘대동여지도’ 원본 전체를 가로 4m와 세로 7m의 평면에 구현한 것이다. 이전 지도가 행정과 국방 정보에 치중했다면, ‘대동여지도’는 경제와 교통 등 다양한 정보를 수록했고, 특히 도로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사용자가 직접 거리를 계산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전에는 소매에 넣을 수 있도록 작게 만든 지도책인 ‘수진본 지도’, 서울에서 충청도 음성까지의 노정을 그린 지도인 ‘설성이정표’, 전라도에 속한 고을 간 거리 정보를 수록한 표와 지도인 ‘호남도리표’ 등을 전시해 지도의 근대적 발전과 활용을 알려주고 있다. 제2전시실은 현대적 지도 제작 방법과 앞으로 개발될 새로운 지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증강현실을 지원하는 앱을 다운로드해 관람객이 인터랙티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

미래 지도는 과거 지도와 어떻게 다를까? 먼저 제작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다. 현재는 정밀한 항공 사진을 바탕으로 지리 정보를 정리하고 지역을 탐방해 정보를 수정하여 컴퓨터에 입력해 완성하는 방식이다. 해상도가 높은 항공 사진이라도 항공기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나 고층 건물 내부나 지하 시설 등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구글은 스트리트뷰를 촬영하는 차량에 미세먼지 측정 장비를 장착해 미세먼지 농도 지도를 제작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정 지역의 경우 사용자가 드론을 띄워 실시간으로 지도를 제작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라이브드론맵도 이미 등장했다.

지도 제작 기간도 이용자의 편집과 수정이 실시간으로 반영돼 단축될 것이다. 2005년 영국의 비영리기구 오픈스트리트맵재단이 운영하는 오픈 소스 방식의 참여형 지도 서비스인 오픈스트리트맵은 단순 정보 입력은 물론 위성항법장치(GPS)를 통해 사용자의 현재 위치 정보를 기록하고 추가할 수 있다. 오픈스트리트맵은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재난 현장에서 구조활동에 활용됐고, 한국의 독특한 지도 관련 법률로 인해 포켓몬고나 웨이즈와 같은 앱에서도 채택해 사용 중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정부 당국의 부족한 정보 제공에 답답함을 느낀 시민은 온라인 지도를 이용해 발병 지역과 병원을 확인할 수 있는 메르스 확산 지도를 만들어 공개하기도 했다.

지도 제작 내용과 분석도 기술 발전의 속도에 발맞춰 발전할 것이다. 사물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실내 공간과 지하 시설에 대한 지도 작성을 통해 공간 정보가 통합될 것이다. 탐사구조 로봇은 지하 시설이나 재난 시 붕괴된 공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효과적으로 구조를 수행할 것이다. 대장내시경 로봇은 사람의 소화기관 상태를 3차원으로 정교하게 재현하고 필요한 경우 용종 절제술과 같은 치료를 수행할 것이다. 실시간으로 통합된 막대한 양의 데이터는 빅데이터 처리 기법으로 분석하고 집계해 웹 기반 정보 제공과 협력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1569년 메르카토르는 세계를 하나의 원기둥으로 나타낸 투영 도법으로 세계지도를 제작했다. 메르카토르는 유럽인이었으므로 자신이 제작한 세계지도에서 유럽을 한가운데에 두었다. 이 지도로 지적 연구뿐만 아니라 무역의 기회도 확장되어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2018년 일곱 살 아이는 지도예찬 특별전을 관람하고 기념품으로 사온 지구본과 구글어스 앱을 이용해 세계 어느 곳이나 중심에 두고 지리 정보를 탐색하고 있다. 2069년 서울시민이자 세계시민인 김정호씨는 자율주행차로 도로를 안전하게 이용하고 복잡한 고층 건물의 최종 목적지까지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획득할 것이다. 지도는 소멸하지만 지리 정보는 위치 정보와 통합되어 어디에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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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일 자 경향신문 [미래 오디세이]에는 '2065년, 미래 도시의 폭염 극복'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써보냈다. 소설 <듄>에 나오는 프레멘 족의 복장으로 도입부를 시작했는데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듄> 시리즈가 개봉하기 한참 전이라 별 반응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미래오디세이] 2065년, 미래 도시의 폭염 극복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1965년 SF 작가 프랭크 허버트가 창조한 <듄>이라는 소설에는 모래 행성 아라키스에 살고 있는 프레멘이라는 종족이 등장한다. 북아프리카 사막 지역에 사는 베두인 종족을 모티프로 창조한 프레멘은 스틸슈트라는 특수복을 입고 아라키스의 혹독한 조건에 적응한다. 스틸슈트는 고효율 필터와 열교환 필라멘트를 여러 겹으로 쌓고, 체내에서 배출되는 땀, 소변, 침, 피와 같은 모든 종류의 수분을 모아 깨끗한 물로 정수해 재활용하는 옷이다. 영화판 <듄>을 촬영할 당시 스틸슈트를 입은 배우들은 아무 기능이 없는 고무옷을 입고 촬영하느라 고온의 사막에서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서울 기온이 39도까지 올라 111년 관측 사상 가장 높아 역대 최악의 폭염이 현실화됐다. 이미 열흘 넘게 열대야가 지속되고, 습도가 높고 자외선도 강해 더위체감지수 역시 ‘매우 위험’ 수준까지 올라갔다. 전문가들은 올해가 폭염이 가장 심했던 1994년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비록 올해 7월의 일평균 최고기온이 32.1도로 1994년보다 약 0.5도 낮지만 1994년과 달리 7월 말과 8월에 접어드는 시기에도 폭염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려가 크다. 선풍기와 에어컨 바람으로도 폭염을 물리치기 힘든 데다 계절이 바뀌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혹한이 찾아오면 프레멘이 장착한 스틸슈트 한 벌로 기후변화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4년 폭염으로 서울에서만 약 890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고, 전국적으로는 4000명이 넘게 사망했다. 당시만 해도 폭염의 건강 영향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폭염에 대응하는 보건당국의 조치도 거의 없었던 관계로 폭염이라는 재난에 무방비로 당한 셈이었다. 올해 폭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가 과연 1994년만큼 규모가 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8월까지 폭염이 지속된다면 폭염에 취약한 노인 인구가 당시보다 증가했으므로 피해 규모가 1994년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반면 장마가 끝난 직후부터 폭염 예보가 발효됐고, 폭염에 대비한 국민행동요령도 확산됐으며, 무엇보다 이미 80%를 넘어선 에어컨 보급률을 감안하면 당시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세대 효과를 감안하면 1994년의 노인과 2018년의 노인이 같은 건강 상태의 노인이 아니므로 폭염이 노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사람의 비율은 당시보다 낮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매년 여름 한반도에 다가오는 태풍이라는 기상 재난에도 이전과 달리 사망자와 부상자가 줄어든 데는 예보의 발전과 대비 태세의 확립이라는 요인이 크다.

환경 정의의 관점에서 폭염 환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를 줄이는 일이 시급하다. 7월30일 현재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27명으로 이 중 30~40대 사망자는 6명이지만 4명이 실외 작업 도중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폭염 시 국민행동요령에 따르면 실외 작업장에서는 폭염안전수칙(물, 그늘, 휴식)을 항상 준수하고, 특히 취약시간(오후 2~5시)에는 ‘무더위 휴식시간제’를 적극 시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지침에는 ‘폭염주의보(33도) 발령 시 시간당 10분씩, 폭염경보(35도) 발령 시 15분씩 휴식’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지침은 습도가 높은 한국 여름 기상 특성을 무시하고 단순 기온을 기준으로 제안하고 있는 데다, 휴식을 제공하라는 기준 기온이 높아 온열 질환 예방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일용 노동자인 실외 작업 노동자에게 임금을 보장하지 않고 폭염 작업을 중단하라는 권고는 비현실적이다. 폭염이라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유급 휴가를 인정하는 조치를 고용노동부는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건당 수수료 체제로 일하는 택배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폭염 시 배달 제한과 요금 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관급 공사인 경우 폭염 기간 노동시간 단축을 감안해 공사 기간 연장을 승인하고, 민간 공사에도 적용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2065년 미래 도시는 도시의 팽창을 제한하고 도시 확장을 사회 인프라 개발과 발맞추기 위해 엄격히 도시화를 통제할 것이다. 사유보다는 공유 개념이 더 중요해지고 거대 도시보다 중간 규모 도시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재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도 제조업 공장 수준의 자동화가 진행되어 폭염을 걱정하지 않고 공사 기일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부득이하게 폭염에도 일해야 되는 노동자는 스틸슈트 수준의 작업복을 착용하고 근무하게 될 것이다. 24시간 사회를 탈피해 업무량이 줄어들고 꼭 필요한 배송은 드론과 같은 무인배송이 대체할 것이다.

사람이 사는 거주 지역과 사람이 살지 않는 비거주 지역으로 국토를 분류하여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인구가 줄어든 지역에 사람들이 각자 흩어져 사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이런 지역에 사는 사람은 행정뿐만 아니라 의료와 같은 민간 서비스를 받기도 어렵다. 거주 지역은 사회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행정 및 민간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해 밀도를 높이고, 비거주 지역은 대규모 농장으로 개발하거나 자연 녹지로 확보해야 한다.

비거주 지역에서 거주 지역으로 이동하는 21세기 인클로저 운동이 성공하면 걷고 싶은 분위기의 거리가 만들어지고 소비가 늘어나며 건강에도 도움이 되어 의료비가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어발식 개발이 아닌 전략적인 국토 이용 계획과 관련 법률 정비가 필수적이다. 비거주 지역을 명확히 만든 미래 도시에서 폭염의 건강 피해는 매년 0명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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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7일 자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에는 '21세기 남성들의 생존법'이라는 제목의 도발적인 내용의 칼럼을 써보냈다. 칼럼이 나가고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칭 선배라는 양반이 맞춤법도 맞지 않는 문장으로 욕설이 담긴 메일을 보내 혀를 찼던 기억이 난다.

[미래오디세이] 21세기 남성들의 생존법

황승식(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가와이 마사시 다이쇼대학 객원교수는 2017년 발간한 <미래 연표>에서 현재 일본이 마주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인 출생아 수의 감소, 고령자의 급증, 사회의 노동력 부족, 그리고 이 세 가지가 서로 얽혀서 발생하는 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에 ‘고요한 재난’이라고 이름 붙였다. 2016년 일본의 연간 출생아 수는 97만6979명에 그쳐 역대 최초로 100만명 이하로 떨어졌고, 1949년 269만6638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3분의 1로 뚝 떨어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출생아 수의 감소 추세가 계속되어 2065년에는 55만7000명, 2115년에는 31만8000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고도 경제 성장을 일군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2017년 한국의 연간 출생아 수는 35만7700명으로 전년보다 4만8500명(11.9%) 감소했고, 출생아 수가 4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보여주는 합계출산율도 전년(1.17명)보다 0.12명(10.3%) 감소한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나타냈다.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2015~2065)’에는 인구 감소 시작 시점이 2032년으로 돼 있지만, 출생아 수가 다시 늘지 않으면 이 시점이 2024년이 될 수 있다고 자체 진단하기도 했다.

저출산이 계속되면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고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면 사회 전 분야에서 인재를 배출할 수 없게 되고 군인, 경찰관, 소방관 등 젊은 힘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회는 급속히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인재가 많을수록 노력하고 경쟁하여 전체 수준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지만, 젊은 세대가 줄어들면 혁신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음악이나 패션 등 새로운 문화를 주도하는 분야는 젊은 세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는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활력을 잃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해왔다. 저출산은 출산·양육 지원뿐 아니라 일자리·주거·청년취업 등 다양한 사회문제의 개선이 이뤄져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백가쟁명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백약무효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통계청이 주최한 ‘2015년 인구총조사 스페셜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던 세계적인 통계전문가이자 얼마 전 고인이 된 한스 로슬링 카롤린스카 의학원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페미니즘을 제시했다.

로슬링 교수는 단순한 인구정책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며 페미니즘을 통해서 변화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과거의 여성과 달리 지금 여성들은 일도 잘해야 하고 가정일도 잘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부담을 지워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다. 스웨덴은 인구정책이 아니라 양성평등과 관련된 변화에서 출산율이 반전됐다. 로슬링 교수가 말하는 양성평등은 전통적인 역할의 파괴다. 육아와 부모 봉양은 아내 일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아내가 일을 하고, 남편이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도 있다. 남녀 역할이 유연해질수록 사회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로슬링 교수는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도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하고,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에서는 싱글맘이나 그 아이들에 대한 낙인이 없다. 동성애에 대한 생각도 바꿔야 한다. 스웨덴은 2명의 장관이 동성애자이고 주교도 동성애자다. 얼마 전 아이 생일 파티에 참석한 친구 20여명 가운데 2~3명은 엄마가 둘이거나 아빠가 둘인 동성애자 커플의 아이들이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유연해져야 아이 키우는 데 부담이 없어지고, 출산율도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로슬링 교수는 여성 혐오에 대해서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스웨덴도 50년 전에는 똑같았지만,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어 남자도 살기 좋아졌다. 로슬링 교수는 페미니즘이 발달할수록 남녀의 기대수명 차이가 줄어드는 현상에 주목하여, 최종목표는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며, 삶의 질을 개선해 더 나은 사회에서 다 같이 살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임을 역설했다.

미래학자로 유명한 자크 아탈리 전 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도 1998년 발간한 <21세기 사전>이라는 책에서 18세기가 그랬듯 21세기도 여성의 시대가 될 것임을 예측했다. 남녀평등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게 될 것이고, 남녀 간 차이뿐 아니라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여성성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하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아탈리는 여성이야말로 교육, 사회보장제도, 분배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사회 발전의 핵심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여성에 대한 탄압이 심해짐에 따라 권력을 빼앗거나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의 형태를 띨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소설가 조선희가 12년 만에 펴낸 신작 <세 여자>는 1920년대 ‘신여성’이자 ‘마르크스 걸’로 성장해 한국 정치사상 전무후무한 ‘여성 혁명가’로 기록된 세 여자, 허정숙·주세죽·고명자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허정숙·주세죽·고명자는 임원근·박헌영·김단야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졌다. 21세기 허정숙·주세죽·고명자는 젠더 혁명가로 인구절벽이라는 ‘고요한 재난’을 극복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21세기 남성의 생존법은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 담벼락에서 맨스플레인을 일삼거나 모 정당 후보의 선거 벽보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온 젠더 혁명에 동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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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2일 자 경향신문 [미래의 눈]에는 '2048년, 미래 도시의 역학 조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써보냈다. 존 스노로 시작해 조앤 스노로 종료하는 의도된 수미상관을 눈치챈 독자는 많지 않았다.

[미래의 눈] 2048년, 미래 도시의 역학 조사

황승식(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존 스노(John Snow)라는 평범한 이름의 의사가 있다. 조지 R. R. 마틴 원작으로 용이 불을 뿜는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존 스노(Jon Snow)와는 철자 하나만 다르다. 스노는 19세기 빅토리아 시기 영국의 다른 의료계 명망가와 달리 요크셔 노동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런던 대학에서 의학사 및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외과의사로 개업했지만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실력으로 더욱 유명했다. 1853년 봄에는 여덟째 아이를 출산한 빅토리아 여왕의 클로로포름 마취를 담당해 최고의 명의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스노는 마취와 관련된 업적만으로도 의학의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지적 탐색 능력이 최고로 발휘되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야는 역학과 공중보건학이었다. 1840년대 말 영국은 콜레라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는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각종 이론이 난무했다. 콜레라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감기처럼 매개체가 있을 것이라는 감염론과 비위생적인 공간에 가득찬 독기(miasma) 때문이라는 독기론이 맞섰다. 에드윈 채드윅이나 윌리엄 파와 같은 공중보건 전문가조차 미신과도 같은 독기론을 지지했다.

스노는 1848년 콜레라 자료에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고 정체 모를 매개체를 통해 옮는다고 생각했다. 콜레라에 감염된 환자의 배설물에 직접 접촉하거나 배설물에 오염된 물을 마셔 생긴다고 믿었다. 감염론을 입증하기 위해 스노는 콜레라가 발생한 빈민촌을 꼼꼼히 조사해 증거를 모았고 런던에 식수를 제공하는 회사의 자료를 모았다. 두 자료를 취합해 스노는 특정 상수회사의 상수도가 오염돼 콜레라 발생이 높다는 가설을 세우고 콜레라가 유행한 브로드가의 펌프를 제거하여 사망자를 줄이는 역사적 성공을 거뒀다.

역학은 개별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의학과 달리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 방법을 찾는 의학의 한 분야다. 스노의 업적은 현대적 의미의 역학 조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모범 사례다. 콜레라 대규모 유행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감염 경로와 원인을 밝혀 콜레라 감염에 대한 새로운 이론과 분석 기법을 창안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콜레라 감염의 원인균인 비브리오 콜레라 박테리아는 스노가 뇌졸중으로 사망한 지 25년이 지난 1883년에서야 독일의 병리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확인했다는 점이다.

150년 전 런던이 직면했던 상황처럼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도시 빈민가도 여전히 많다. 안전한 마실 물이 없는 인구가 11억 명이 넘고, 상하수도와 같은 공중 위생 서비스를 못 받는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30억 명이다. 콜레라와 같은 감염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만 해도 매년 200만 명이다. 새로운 지적 탐색에 열정적이었던 스노가 오래 살았다면 콜레라가 아닌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스노의 업적으로 공중 위생 운동은 전기를 맞았다. 생전 스노의 감염론을 격하게 반대했던 채드윅의 공중 위생 개선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스노의 업적 이후 한층 강화된 제도로 안착했다.

21세기 세계의 거대 도시는 19세기 런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중 위생 상태가 개선됐다. 감염병학과 쓰레기 관리 기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관련 전문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스노가 브로드 가를 집집마다 확인하여 작성한 지도를 지금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컴퓨터 화면에 지도로 그려낼 수도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인플루엔자 발생에 대한 보고서를 매주 업데이트하고 다양한 도표와 지도로 제공하고 있다. 구글이 개발한 플루 트렌드는 전세계 구글 이용자들의 검색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하여 인플루엔자 확산 현황과 예측 정보를 만들고 있다.

현대 역학의 주된 접근 방법은 19세기 중반 스노의 활동처럼 희생자 개인의 이력과 접촉한 사람을 찾아 정보를 얻는 일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역학 조사관은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폐쇄회로티비에 찍힌 비디오파일과 카드 사용 내역까지 분석했다. 2020년 초 중국 우한에서 최초로 확인된 코로나19 감염병이 전세계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2020년 역학 조사관은 접촉자를 파악하기 위해 LTE 휴대전화 신호도 분석하고 있다. 질병 확산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이용하는 많은 수학적 모형은 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접촉하는 상황만을 가정하고 있다. 개인이 서로 어떤 식으로 접촉하는지 보여주는 현실적 모형이 없고, 수많은 대중의 이동을 모형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계산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004년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연구진은 고성능 슈퍼컴퓨터 클러스터와 애초 도시계획 용도로 개발한 트랜심스(TranSimS)라는 모형을 활용해 몇백만 명을 대상으로 개인 간의 접촉을 모형화한 역학 시뮬레이션 모형 에피심스(EpiSimS)를 개발했다. 에피심스에서는 가상의 병원균을 인구집단에 퍼뜨려 병원균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여러 대응조치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모의실험을 통해 질병이 퍼지는 과정에 사회 연결망 구조를 포함시키자 질병이 지수적으로 급속히 확산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모의실험을 통해 질병 확산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대응조치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대응조치를 발동할 것인가에 달려있음을 알게됐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의 형상, 성질, 상태 등의 정보를 사이버세계에 동일하게 구현하는 개념인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2018년 10대 전략 기술로 선정했다. 2014년 말 싱가포르는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를 시작해 도시를 3차원으로 모사한 도시 가상화 모델을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다. 2048년 미래 도시에 발생한 신종 감염병 역학 조사를 맡은 조앤 스노(Joan Snow)는 아마도 의학·보건학 전공자가 아니라 프로그래밍에 능숙한 데이터 과학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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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증거기반의학의 정신, 철학의 정신

당연해 보이는 것에 대한 의심


번역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부딪쳤던 난관은 우리말 제목을 붙이는 일이었다. 이 책은 의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지적 운동evidence-based medicine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데, 우리는 통상 그 운동을 부르는 우리말 이름부터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책을 읽고 우리글로 옮기는 일은 적절한 번역어를 골라내는 데에서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던 의학 연구의 관행에 의문을 던지고 제기된 논점들을 하나하나씩 점검해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 글은 증거기반의학이 제기하는 여러 논점들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을 소개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고도로 분업화된 오늘날의 학문 세계에서 철학의 역할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 요체는 널리 받아들여지는 지식이나 개념 체계라고 할지라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한 번 더 의심하고 따져 묻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의학계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던 증거기반의학을 관통한다. 그러한 정신이 어떻게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에서 적용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조금 더 포괄적인 시각에서 증거기반의학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통념을 고찰하려 한다.

우선,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을 확정한 이유에 대해 상세히 논의한다. ‘근거중심의학’, ‘근거기반의학’ 등 여러 이름이 통용되고 있지만 각 이름을 사용해야 할 이유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헌은 드물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증거기반의학’을 선택한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다음,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이 맺는 관계에 대한 여러 견해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증거기반의학은 오늘날 의학의 주요 방법론으로 대두했지만 대중에게는 여전히 그 이름조차 생소하며, 동시에 관심 있는 전문가들은 기초과학과 그 방법론이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증거기반의학의 창시자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과학적 의학’으로 부르려 했으나 결국 ‘증거기반의학’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추적하면서, 증거기반의학과 기초과학의 관계를 성찰하겠다.


1.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


번역 작업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과제는 ‘evidence-based medicine’(주: 번역어를 택한 이유를 밝히는 대목에서는 ‘evidence’, ‘based’, ‘medicine’, ‘evidence- based medicine’, ‘증거기반의학’, ‘non-evidential’을 그대로 노출시켰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었다. 현재 한국 의학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번역어는 '근거중심의학'(주: 대한의학회가 만들고 정부가 지원하는 임상진료지침 정보센터에서 택하고 있는 표현이 ‘근거중심의학’이다.)인 것 같다. ‘근거중심-’이라는 표현은 다양한 영역의 문헌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관련 전문 서적에서는 ‘근거중심간호’나 ‘근거중심한의치료’ 같은 표현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강독 과정에서 우리는 ‘근거중심’은 이 방법론적 운동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으며, 그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 가능한 다른 선택지와 각 대안의 장단점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겠다.


2. Evidence: 증거인가 근거인가? 


evidence의 번역어로 다음 두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①증거. 

②근거.


많은 의료인은 증거보다 근거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있다. 한국어 단어 ‘증거’와 ‘근거’가 서로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단어 모두 주장을 담고 있는 가설·이론·판단을 옹호하기 위해 쓰이는 자료를 뜻한다. ‘증거’는 법률적 효력과 같이 뒤집기 어려운 경우에 쓰인다는 직관이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 현재 ‘증거’보다 ‘근거’를 선호하는 이유는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이 의과학이 제시한 연구 결과가 가설을 확실히 뒷받침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최선의 판단도 원리상 전복될 수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의료계는 ‘증거’보다는 ‘근거’를 번역 용어로 더 많이 쓰고 있다.

우리는 의료계에 통용되는 근거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근거’가 아니라 ‘증거’로 옮겨야 한다. 증거가 불확실하며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지적은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앞선 지적이 증거기반의학이 주장하는 새로운 의학의 핵심은 아니다. 어떤 경험 자료가 가설이나 이론을 뒷받침하는 상황을 철학적으로 성찰해보면, 경험에 기반을 둔 주장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으므로 확실하지 않다는 말은 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부정하는 과학자나 의료인은 없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증거의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에 주목한다. 즉, 어떤 증거의 품질이 더 좋고 더 나쁜지, 그리고 어떤 자료가 증거가 될 수 있고 될 수 없는지에 대한 구분 기준을 탐구한다.

이런 생각을 그림 1.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다시 살펴보자.

증거기반의학이 제시하는 위계 구조에 따르면, 무작위 시험과 관찰 연구 설계로 대표되는 비교임상연구를 잘 수행하면 양질의 증거를 얻을 수 있다. 전문가 판단과 메커니즘 추론을 통해서는 품질이 나쁜 증거만 얻을 수도 있다. 전문가 판단은 증거의 자격 자체가 의심스럽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은 그림 1.1에서처럼 여러 연구 설계의 품질을 범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전문가 판단이나 메커니즘 추론으로 품질이 나쁜 증거를 얻을 수 있다는 평가를 검토하여 증거라는 용어가 적절한 까닭을 설명하려고 한다.

먼저 전문가 판단을 살펴보자.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은 전문가 판단에 가설을 입증하는 일과는 다른 비증거적 역할non-evidential role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역할은 하윅에 따르면(11장 4절) 환자의 가치와 상황을 최고 품질의 증거와 결합시키는 일, 플라세보 효과를 강화하는 일, 암묵적 지식에 해당하는 숙련 기술을 사용하는 일 등이다. 우리는 의료인들의 전문성과 판단이 합리적 이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첫 번째 역할을 수행하려면, 치료 효과에 대한 정보는 물론 환자의 가치와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역시 판단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두 번째 역할을 수행하려면, 의료인은 언제 플라세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어떻게 플라세보 효과를 강화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의료인 자신이 충분한 암묵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세 번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의료인 자신이 충분히 숙련됐다는 자각을, 즉 자신이 충분히 전문가라는 자각이 없이는 전문적인 의료 행위를 제공할 수 없다.

전문가 판단과 비교임상연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환자에게 영향을 준다. 전문가 판단은 다양한 실천적 가치에 의해 옹호된다. 반면 비교임상연구에서 검증한 가설은 연구 결과 데이터로 옹호된다. 이는 인식론·과학철학의 용어를 활용하여 특별히 입증confirmation이라고 부른다. 어떤 가설에 대해, 그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있다면 그 가설은 입증된다. 또 그 증거의 수준이 강력할수록 입증의 강도도 세다.(주: 상세한 논의는 본문 1장의 역주와 헴펠의 <자연 과학 철학> 4장 77-102쪽을 참조하라.) 따라서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이 증거 위계(그림 1.1)를 사용하여 보여주고자 했던 입장은, 각 증거들이 제공하는 입증의 강도, 다시 말해 인식적 자격 또는 참에 대한 보증의 강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증거기반의학 위계에 따르면, 전문가 판단은 입증력이 없거나 약한 반면 성공적인 비교임상연구는 가설을 강력하게 입증한다.

메커니즘 추론이 내놓은 증거가 품질이 나쁜 증거로 취급되는 이유도 살펴보자.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어떤 치료 A가 환자에게 유관한 효과를 낸다는 가설에 대하여 메커니즘 추론의 결론은 제대로 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본다. 메커니즘 추론이 참이라고 주장했던 가설이 실은 거짓이라고 밝혀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잘 수행된 비교임상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메커니즘 추론이 내놓은 가설과 충돌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에, 메커니즘 추론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런 추론에는 숨겨진 전제가 있다. 비교임상연구가 메커니즘 추론보다 범주적으로 더 강한 입증력이 있다는 전제 없이는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없다. 물론 하윅은 이런 전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만(10장), 적어도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들이 양질의 증거라는 말로 무엇을 지시하는지 확인할 때 유용하다.

결국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어떤 치료 A가 효과적이라는 가설에 대해, 어떤 연구 결과가 해당 가설을 강하게 입증한다면, 그 결과는 양질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림 1.1에서 상위에 있는 증거가 좋은 까닭은 적절한 연구 설계로 수행됐기 때문이고, 방법론적으로 우월한 증거일수록 가설을 입증할 때 믿을 만하다.

따라서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셈이다. 비교임상연구가 제시하는 증거에는 전문가 판단이 반영하는 다양한 종류의 가치와는 구분되는 인식적 힘이 있다. 또한 메커니즘 추론에 비해 비교임상연구는 양질의 증거다. 우리는 이런 인식적 자격, 또는 입증력 차이에 주목한다. 증거를 증거로 만들어주는 한편 증거의 품질을 올리기도 하는 요소는 바로 이 자격 또는 입증력이다. 증거기반의학이 말하는 증거의 핵심이 입증력이라는 사실에 비춰 볼 때, ‘근거’가 아니라 ‘증거’라는 말을 쓰면 의미가 강해진다는 의학계의 우려는 기우다. 증거가 미약한 입증이거나 증거가 방대한 입증이거나,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면 뒤집어질 수 있다는 점에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한국어 ‘증거’에는 법률적 효력에 대한 평가도 담겨 있다. 그러나 증거기반의학이 입증력이라는 인식적이고 과학철학적인 쟁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 판단에 대한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근거’에 담긴 여러 느슨한 의미를 덜어내려고 한다. 어떤 증거의 법률적 효력 역시 입증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증거라는 말에 담긴 법률적 의미는 인식적 의미에 어느 정도 의존한다.

논의의 결론은 이렇다. ‘근거’는 어떤 추론이나 결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이유를 가리킨다. ‘증거’는 어떤 가설에 대해 입증력이 있는 자료에 대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법률적 효력 역시 입증력에 의존한다. 증거기반의학이 말하는 증거의 용법을 검토해보면, 증거는 특수한 종류의 정당화, 즉 쟁점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쓰이는 자료를 가리킨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유로 ‘근거’ 대신 ‘증거’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3. Based: 중심인가, 기반인가


Based는 증거, 그리고 개별 의사의 결정이나 보건 당국의 지침과 같은 의료 실무 사이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에 대한 번역어는 두 가지가 있다.


①중심.

②기반.


두 용어는 증거와 의료 실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이다. ‘중심’과 ‘기반’은 모두 증거가 의료 실무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뜻을 전달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우리는 더 세밀한 뜻을 전달하는 데는 기반이라는 용어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두 용어에 대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풀이와 우리의 직관은 다음과 같다.


①기반: 기초가 되는 바탕. 또는 사물의 토대. 어떤 토대 위에 구조물이 올라가 있는 관계를 가리킨다. 증거라는 토대에 의료 행위라는 건물이 서 있는 그림이 연상된다. 

②중심: 사물이나 행동에서 매우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부분. 하나의 주 기둥에 여러 보조 기둥이 있는 구조물에서 주 기둥과 보조 기둥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 증거가 의료 행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그림이 연상된다.


기반의 용법에 따라 그린 그림 속에서, 증거는 의료 행위의 소극적 조건, 다시 말해 의료 행위가 어기면 안 되는 조건으로 제시되었다. 반면 중심이 주는 그림 속에서 증거는 의료 행위의 기초가 되는 다른 여러 이유를 압도하는 무언가로 제시되었다. 증거기반의학은 기반이 제시하는 그림과 더 어울린다. 예를 들어 보건당국이 담배를 오직 역학적 증거에 의해서만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이 조치는 격렬한 사회적 논란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중보건정책은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와 부합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조치의 효과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 역시 감안해야 한다. 또한 증거기반의학은 의료 행위가 환자의 가치를 감안하여 제공돼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따라서 ‘중심’보다는 ‘기반’을 번역어로 골랐다.


4. Medicine: 의학인가 의료인가


Medicine에 대한 번역어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①의학.

②의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의학’을 인체의 구조나 기능, 질병, 치료, 예방, 건강 유지의 방법이나 기술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의학을 지지하는 견해에 따르면, 증거기반의학은 어떤 치료가 환자에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옳은 지식을 확보하는 절차를 제공하고, 나아가 그 절차가 왜 옳은 지식을 보장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방법이다. 이는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다루지 않고, 의료와 유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의학’은 이런 문제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집합을 가리킨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의료’를 의술로 병을 고치는 일로 풀이하고 있다. 증거기반의학은 의료 현실을 폭넓게 변화시키려 한다. 이런 변화의 범위를 감안할 때, 의료가 적당한 용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 있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의학을 변화시켜 의료 역시 변화시키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증거 위계 피라미드(그림 1.1)를 통해 전문가 판단은 증거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전문가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문가 판단은 증거 자격이 없다는 평가가 의학의 문제라면, 전문가의 역할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이를 의학이 다루는 증거 산출 절차와 구분해야 한다는 제안은 의료의 문제다. 

의학은 결국 의료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예를 들어 ‘예방의학’ 역시 그렇다. 예방의학의 목표는 역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조기 사망을 줄이는 데 필요한 조치를 개발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 있다. 대부분의 의학 지식은 임상 현장에 적용되어야 의미가 있다. 의학의 기본 속성에 비추어 보아, ‘의학’이라는 용어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증거기반의학’에서 ‘증거’는 이 운동이 어떤 의료적 개입의 효과성 가설에 대한 입증력을 분별하고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므로 골랐다. ‘기반’은 증거가 의료 행위의 제약 조건으로 기능해야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골랐다. ‘의학’은 이 운동이 의료 현장과 관련된 지식을 축적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골랐다.


5. 증거기반의학과 '과학'


이름을 확정하면서 증거기반의학 자체의 내용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우리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주제는 바로 과학과 증거기반의학의 관계다. 역학 연구를 다룬 뉴스를 접한 대중의 반응부터, 증거기반의학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의 주장, 심지어 증거기반의학의 역사와 방법론 모두에 걸쳐 과학과 증거기반의학의 관계는 주목할 만한 연구 주제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증거기반의학을 적용한 임상 역학 연구를 뉴스에서 접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2016년 8월 AP 통신 탐사보도팀은 치실의 효과에 관한 논란을 취재 보도했다. 이 기사는 국내 언론에 인용 보도되면서 각종 뉴스를 달궜고, 이를 접한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다. 기사에 따르면, 치실에 대한 비교임상연구 결과 치실이 플라그 제거와 치주염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당국과 치의학계, 그리고 관련 산업계가 치실 사용을 계속해서 권장해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가공되지 않은 반응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런 반응 가운데, 특히 다음은 이 에세이의 맥락에서 조명할 가치가 있다.


 증거기반의학에 의한 연구를 ‘과학적’ 연구 방법이라고 부름. 많은 사람들, 또는 많은 국내 보도는 이들 비교 임상연구의 결과를 주저 없이 ‘과학적’이라고 부른다. AP 통신보도 역시 기사 본문에서 ‘scientific’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다. 실제 체계적 고찰 연구를 검토하여 과학적이라고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증거기반의학’이라는 말 자체의 역사와 현재 진행 중인 논란에 비춰 볼 때 이런 용어법에는 문제가 있다.


본문 2장에서 간략히 소개된 것처럼, 고든 기얏이 ‘증거기반의학’을 가리키기 위해 처음 선택했던 용어는 ‘과학적 의학scientific medicine’이었다. 이 표현은 기존 의학이 비과학적이라는 함축을 내포했기에 수용되기 쉽지 않았다. 생명 과학의 발전을 대중에게 알린 많은 성과들은 의과학의 성과였다. 항생제나 장기 이식을 가능하게 한 의학의 발전에 비과학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는 없다. 증거기반의학은 이런 성과만으로는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 않은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증거기반의학을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과학’이라고 부른다면 오해를 살 만하다. 

최근 이오아니디스는 증거기반의학이 ‘납치’되었다고 주장했다. 증거의 품질을 평가할 때 무작위 시험 또는 메타 분석 수행에만 주목하면, 다른 여러 바이어스 유발 요소들이 무시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허점을 노리고 특별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왜곡된 연구를 품질이 높은 연구로 위장할 경우 그 시도를 막기는 어렵다. 특히 생물학적 개연성이 없는 가설에 대한 임상연구조차도 증거기반의학은 품질이 높은 연구로 평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증거기반의학은 비교 임상연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방법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운동으로 평가되며, 결국 중보기도에 대한 임상연구(10장 3절 1항)처럼 생물학적 개연성이 없어 기초과학에 의해 지지받지 못하는 연구도 정당한 연구로 취급할 수 있는 방법론적 운동으로 평가된다.

기얏이 ‘과학적 의학’ 대신 ‘증거기반의학’이라는 말을 택했다는 사실, 그리고 증거기반의학의 ‘납치’에 대한 우려는 증거기반의학을 과학과 등치시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반면 임상연구 보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면, 대중은 과학과 증거기반의학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인과 대중의 상반된 반응을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6.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그림 1.1에서 살펴본 증거 위계에서 출발하자. 증거기반의학은 비교임상연구를 환자에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가장 적절한 증거로 평가하며, 메커니즘 추론은 그보다 못한 증거로 평가한다. 메커니즘 추론에 대한 저평가는 하윅의 <증거기반의학의 철학> 이전에는 충분히 정당화되지 않았다(1장). 여기서는 메커니즘 추론에 대한 저평가를 정당화할 만한 이유를 검토하여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어떻게 보아야 적절한지에 대해 조금 더 논의하겠다. 

증거기반의학이 메커니즘 추론을 저평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메커니즘 추론이 임상연구 결과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메커니즘 추론과는 달리 임상연구는 환자에서의 결과와 간극 없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하윅이 지적하듯(10장), 첫 번째 논거만으로 메커니즘 추론을 저평가할 수는 없다. 양측이 충돌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느 편이 더 우월한 논거라고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논거는 임상연구가 환자에서의 결과와 간극이 없다는 데 있다. 이런 논거는 환자에서의 결과에 대한 하윅의 분석을 활용하면(3장) 정당화된다. 임상연구는 환자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여 수행되므로 효과 크기를 나타낼 다양한 변수를 사용할 수 있으며, 또한 이 지표를 활용하여 여러 치료의 효과 크기를 비교할 수도 있다. 특히 플라세보 대조시험은 플라세보와 시험약의 효과 크기를 비교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반면 많은 학자들이 메커니즘 추론이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외적 타당도’ 문제, 즉 어떤 연구 결과가 실제 임상에서 성공적으로 적용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도 메커니즘 추론은 그리 훌륭한 해결책은 아니다. 과학을 통해 얻은 결과가 임상에서 실제로 효과가 있는 약물로 이행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10장 6절 3항).

물론 이러한 논거로도 메커니즘 추론에 대한 저평가를 온전히 납득할 수는 없다. 하윅의 경우,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은 저급한 증거가 아니라 훌륭한 증거로 보아야 하며, 증거기반의학은 이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다만 메커니즘 추론은 환자에서의 결과와 간극이 크고 비교임상연구는 간극이 작다고 평가하는 이유를 정리해 평가한 작업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하윅의 연구로도 답변이 되지 않은 상태이며, 향후 연구 과제로 남긴다. 

다만 꼭 짚고 넘어갈 만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다. 이른바 ‘증거기반의학의 납치’ 문제다. 대체의학과 같이, 생물학적 개연성이 낮은 의료 행위를 시도하는 일부 의료인에게 증거기반의학이 통계적으로 정교하게 꾸민 증거를 제공할 수 있는 우회로가 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증거기반의학의 개념을 잘 분석해 보면, 이에 응답하는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는 어렵지 않다.

가장 중요한 지적은, 앞서 ‘증거’ 개념을 상세하게 분석한 결과에서 나온다. ‘증거’는 단순히 비교임상연구의 결과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이 말은 환자에서의 효과에 대한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논거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증거’에는 과학에 기반을 둔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하윅의 제안처럼,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은 임상연구와 함께 어떤 가설의 입증 수준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하임릭 구명법이 기반을 둔 메커니즘 추론은 그것만으로도 효과를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 증거기반의학 옹호자는 양질의 메커니즘 추론이 무엇인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다만 실험실 연구를 통해 획득한 치료 방법이 기대했던 것보다 환자 관련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경험적 증거(10장 6절), 그리고 젬멜바이스 사례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사례에서처럼(10장 부록 표 3) 생물학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되었던 가설이 실제로는 참이었던 여러 역사적 사례에 비춰 볼 때, 생물학적 개연성이 임상연구 가설이기 위해 반드시 만족해야 할 조건이어야 한다는 요구는 의외의 발견을 막는 족쇄로 작동할지도 모른다. 생물학적 개연성을 임상연구 가설을 평가할 때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 조건은 제한적으로만 유효하고, 증거기반의학에 따른 연구가 향후에 다룰 가설은 생물학적 개연성이 있는지 여부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례에 비춰 보았을 때 과도하다.


7.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증거기반의학과 과학 사이의 차이를 대부분 모른다. 앞서 제시한 치실 사례에서, ‘과학’이라는 표현은 어떤 가설의 참을 보증하는 방법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과학’의 이런 용법은 증거기반의학의 장점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도움이 될 만큼 정교하다고 할 수 없다. 임상연구 가설을 입증할 때 실제로 사용되는 방법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치실 사례에 대한 언론 보도와 대중의 반응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 실제 체계적 고찰연구에 대한 언급이 없음. AP 통신 기사의 근거가 된 체계적 고찰연구펍메드 링크가 본래 AP 통신 기사에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기사를 읽거나 논평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실제 연구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국내 언론은 AP 통신 기사와는 달리 펍메드 링크나 논문 본래 링크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비록 명시적으로 ‘증거기반의학’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AP 통신 기사는 결국 증거기반의학에 따른 치과 의료가 제공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연구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반응은 증거기반의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증거기반의학에 따르면 사용할 수 있는 증거를 최대한 활용하여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도 체계적 고찰 연구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반응이 많았다. 또한 국내 언론은 이번 논란의 초점인 치실의 효과에 대한 체계적 고찰 연구를 소개하지 않아 독자들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증거기반의학에 의해 얻은 연구를 전문가만의 전유물, 즉 전문가가 아니면 전모를 알아보기 힘든 연구가 아니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연구로 만들어야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증거기반의학의 구조를 알고 그 결과물을 실제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이들 연구의 내용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이 줄어들 것이다. ‘과학’이라는 표현 속에 구체적인 방법론이 가려져 있는 상태를 내버려 두지 말고, 임상연구가 내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공중보건과 의학적 판단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증거기반의학 문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의학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기자는 코크란 연합에서 제공하는 자료와 같이 우리말로 제공되는 자료들을 참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8. 결론


철학의 정신과 증거기반의학의 정신은 서로 통한다. 철학은 통념을 의심하고, 체계적으로 반성하는 학문이다. 증거기반의학은 가설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가용한 증거를 모두 감안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증거기반의학이 현재 의료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무엇이든,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을 둘러싼 구체적인 논쟁들이 어떻게 진행되든지 간에, 증거기반의학은 그 정신만으로도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에 걸맞은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고심했고 그 결과를 번역어와 역주로 남겼다. 그러나 그마저도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우리는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특히 ‘증거기반의학’이라는 이름을 구성 낱말별로 꼼꼼히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시도, 그리고 증거기반의학과 과학의 차이를 설명하고 평가하기 위한 시도는 증거기반의학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비록 여기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 이뤄질 논의가 빈 틈을 채워줄 것이다.

‘증거기반’ 운동은 의학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과학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증거기반정책’은 영미권에서는 학계뿐만 아니라 당국의 실제 정책까지도 결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통념을 의심하고 관련 증거를 모두 사용하여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정신을 공유한다. 의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증거기반’ 운동이 퍼져나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우리 몸에 대한 여러 말,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여러 말은 아직 충분히 증거에 기반을 두지 않고, 또 우리는 충분히 의심하지도 않으며 사용할 수 있는 증거를 조직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도 못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실제로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지적 운동이 필요하며 이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이뤄져야만 한다.

의학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함으로써 시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기대수명을 늘리는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의학계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개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려 한다면 다양한 차원에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의학계의 지형을 실질적으로 바꾸어온 ‘증거기반’ 운동이 한 가지 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의학계는 증거기반 운동의 발원지이면서 동시에 그 방법론이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진 영역이다.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가 ‘철학의 부재’에 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식의 결과중심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증거기반의학 방법론의 배후에 놓여 있는 그 정신에 주목해야 한다. 환자 자신의 가치에 비추어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인은 폭넓고 공정하게 증거를 수집, 종합하고 주어진 증거에 바탕을 두고 합리적으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추론을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인지에 관한 가치 판단과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든 정책이든) 대상의 가치에 대한 섬세한 감각과 증거에 대한 민감성, 요컨대 비판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다.


9. 감사의 말


2015년 3월 <역학의 철학> 번역서를 생각의 힘 출판사에서 펴내고 소개하느라 시간이 흐른 뒤 <역학의 철학> 본문에 언급된 책 한 권이 눈에 쏙 들어왔다. 존 워럴과 제러미 하윅이 증거기반의학의 방법론적 기반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 대목에, 제러미 하윅이 쓴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 참고문헌으로 나와 있었다. 역학, 철학, 과학철학을 전공한 번역진이 다시 의기투합하여 번역 작업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텍스트였다. 초교를 완성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책이 나오게 된 까닭은 대표 역자의 게으름 탓이 가장 크지만, 모든 역자 신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긴 탓이라는 소소한 변명을 남겨둔다.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 번듯한 번역서의 모양을 갖추게 된 데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의 김건형 교수와 연세대학교 인문사회의학협동과정 박승만 선생은 초교를 완성하는 독회에 참석해서 중요한 의견을 남겨주셨다. 김건형 교수와 중앙보훈병원 신장내과 김범 전문의는 편집 원고를 통독하고 번역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상세한 지적을 보내주셨다. 생각의힘 출판사 편집부 유승재 과장은 의학용어와 철학용어가 어지럽게 직교한 번역 원고를 가독성 있는 원고로 바꾸기 위해 분투하셨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출판계 상황에도 <역학의 철학>에 이어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을 번역서로 내기로 용단을 내려준 생각의힘 출판사 김병준 대표께 커다란 감사를 드린다.

<역학의 철학>이 인구집단 측면의 관련성이 인과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문답이라면,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은 무작위 시험을 통해 얻은 증거는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문답이다. 가짜 뉴스 시대에 보건의료 분야에도 만연한 가짜 정보를 가려내는 능력을 확보하는데 <증거기반의학의 철학>이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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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5일 자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 '통계적 유의성'을 폐지한다면'은 재현성 위기를 소재로 작성했다. 원제는 '2026년, 통계적 유의성 폐지 원년'으로 써보냈는데 바뀌었다.

미래오디세이: '통계적 유의성'을 폐지한다면

황승식(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온라인 뉴스 매체 ‘복스닷컴’은 지난 달 “2018년에는 사라져야 할 여덟 가지 잘못된 건강․과학 상식”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게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 산하 모든 과학과 보건 연방 기관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과학적 태도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매체 과학 데스크가 기획한 기사다. 유권자가 사실에 근거해 투표한다, 중독은 도덕적 실패다, 아편유사제가 만성허리통증 치료에 효과적이다, 플라세보는 쓸모없다, 비만 해결에 운동이 최고다, 동종요법이 효과가 있다, 기후변화는 “토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통계적 유의성”이 “강한 과학적 증거”를 뜻한다. 이 여덟 가지 상식이 사라져야 할 미신으로 제시되었다.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간단한 통계적 검정을 통과하면 “통계적 유의성”이 있다고 선언한다. 엄밀하게는 p값으로 정의되는 확률이 0.05 미만이면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를 얻었고 출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영가설이 참이라고 가정할 때, 관찰된(또는 더 극단적인) 결과가 일어날 확률’이라는 p값의 정확한 정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최근 몇 년 간 0.05라는 문턱값으로 얻은 결과가 매우 강한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절감하고 있다. 총알을 난사하듯이 통계적 검정을 수행해 요행으로 얻은 하나의 유의한 결과를 보고하는 p해킹도 학계에 만연해있다.

p값이 0.05 미만이면 실험 결과가 우연한 기회로 얻어졌을 확률이 5% 미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거짓 양성으로 밝혀질 확률이 5% 미만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실제로는 차이가 없는데 실험에서 차이가 있다고 나오는 확률을 거짓 양성률이라고 부른다. 실험의 거짓 양성률은 5%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문턱값을 0.005 미만으로 낮추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많은 사회과학 연구자는 결과가 재현되지 않는“재현성 위기”를 고통스럽게 인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미국통계학회는 ‘통계적 유의성과 p값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1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통계학회가 통계학의 기본적인 문제에 관해 처음으로 발표한 성명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p값은 과학적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판단하는 데 흔히 사용하는 척도지만 가설이 참이거나, 결과가 중요한지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p값을 오용하면 재현되지 않는 연구 결과가 증가하게 된다. 특히 p값이 0.05 미만과 같은 특정 문턱값을 통과했다고 해서 과학적 결론을 이끌어내거나 정책적 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미국통계학회의 성명서가 학계에 준 충격은 상당히 컸다. 성명서가 20년 전에 발표됐다면 생명공학 연구가 훨씬 발전했으리라는 만시지탄의 감회와, 이번 성명서를 계기로 연구자가 p값에 대한 회의를 품어 다양한 통계분석 방법을 사용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많았다. 반면 p값이 옳지 않으니 사용하지 말라는 주장은 자동차 사고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 운전을 하지 말라는 억측과 다름없으므로, 통계를 요리책처럼 취급하지 말고 과학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신중한 반응도 있었다.

0.05라는 통계적 유의수준은 확률통계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개념이다. ‘미국심리학자’ 1982년 5월 호에 실린 해설 논문에 따르면, 현대 통계학의 아버지인 로널드 피셔가 ‘농업부저널’ 1926년 33호에 발표한 논문이 현대적 기원이다. 관행적으로 적용해온 확률오차의 3배가 표준편차의 2배와 같으므로 약 4.56%로 계산되는데, 피셔가 설명하기 쉽게 반올림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 있게 나와 있다. 피셔가 욕조 안에서 오른쪽 발가락을 문지르다 5가 좋아 보여 문턱값을 0.05로 결정했다는 설명도 간간히 보이지만 도시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피셔의 논문과 저서 어디에도 0.05를 기준으로 과학적 결론을 내리라는 문장이 등장하지 않는다. 0.05라는 유의수준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데는 후대의 학문적 관행 탓이 크다.

2026년은 피셔가 현대적 의미의 통계적 유의성 개념을 창안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연구자는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구시대적 표현으로 과학적 중요성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은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연구 결과를 맹목적으로 전달해서는 안 된다. 물어야 할 질문은 통계적으로 유의한가가 아니라 효과크기를 드러내는 실제로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여야 한다. 현대 과학을 근본에서 흔드는 재현성 위기가 2026년에 해소되리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이미 학계 일각에서 통계적 유의성 개념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2026년을 통계적 유의성 폐지의 원년으로 선언한다면 통계학의 역사 연표에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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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1일 자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 2035년, 평균의 종말'은 스티글러 선생의 책자 1장의 내용을 골자로 일부 내용을 덧붙였다. 후반부 증거기반의학은 친절한 설명을 붙이지 못해 아쉽다. 지난 원고가 분량이 부족하다고 해서 이번 원고는 충분히 써보냈더니 케틀레 선생의 조직가로서의 족적에 대한 문장 일부가 편집됐다.


미래오디세이: 2035년, 평균의 종말

황승식(서울대교수·보건대학원)


통계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시카고대 스티븐 스티글러 교수가 지난 해 발간한 「통계학을 떠받치는 일곱 기둥 이야기」는 현대 통계학의 학문적 근간을 자료 집계, 정보 측정, 가능도, 상호 비교, 회귀, 설계, 잔차라는 기둥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첫째 기둥으로 제시하는 자료 집계는 19세기까지는 관측의 결합이라고도 부르던 평균의 계산이다. 초등학생도 계산할 수 있는 간단한 산술 평균이 현대 통계학을 세운 첫째 기둥이라는 지적은 획기적이다. 스티글러 교수는 평균을 계산하기 위해 여러 관측에서 실제 정보를 얻으려면 정보를 버려야 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개별 측정값을 무시하고 평균과 같이 하나의 요약값으로 제시하는 방식이 등장한 역사는 얼마나 오래됐을까?


피타고라스학파는 이미 기원전 280년에 세 가지 평균, 즉 산술 평균, 기하 평균, 조화 평균의 존재를 증명했다. 서기 1000년 무렵 철학자 보에티우스가 피타고라스학파의 평균 세 가지를 포함해 평균의 개수를 열 개로 늘렸다. 이때까지 사람들은 평균을 철학적 의미, 선분의 비례, 음악의 음률을 다루었고 자료 요약 목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1500년대 초반 야콥 쾨벨이 쓴 측량서 세밀화에는 성인 남성의 발 길이인 피트를 측정하는 모습이 나온다. 사람마다 발 길이가 다르므로 시민 대표 열여섯 명을 모아 한 줄로 세워 16피트를 1로드로 결정했다. 로드를 정하고 열여섯 구획으로 똑같이 나눴으므로 이 구획이 성인 남성 발 길이 열여섯 개의 산술 평균이지만 책에 이 용어가 나오지는 않았다.


1635년 그레셤대 천문학과 헨리 겔리브랜드 교수는 티코 브라헤가 만든 표에 근거해 나침반으로 진북을 찾는 데 필요한 보정값인 자침 편차 계산값 열한 개를 얻었다. 자침 편차 자료를 정리한 결과 표에 최초로 산술 평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실제로 겔리브랜드가 산술 평균이라고 제시한 값은 최댓값과 최솟값의 평균값이라 엄밀하게는 현대적 의미의 산술 평균과 다르지만 이미 쓰던 방법에 이름을 붙인 업적이 크다. 고대인도 산술 평균을 알았지만 겔리브랜드 이전까지 누구도 저작물에 계산법의 명칭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1660년 무렵 과학자 로버트 보일이 측정을 결합하는 방식의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16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산술 평균은 여러 출판물에 등장하고 공식 인정을 받게 됐다.


18세기 들어 평균 개념은 학계에 빠르게 확산됐다. 1755년 토머스 심슨은 메이클스필드 백작에게 보낸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편지에서 평균의 유용성과 오차 곡선의 개념을 역설했다. 1777년 다니엘 베르누이는 다른 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평균 계산이 규범이 됐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1809년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곡선으로도 유명한 정규 곡선을 유도하는데 평균이 가장 좋은 추정량이라는 가정을 이용했다. 1810년 마침내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표본의 평균이 인구집단의 평균을 따라 정규 분포한다는 중심 극한 정리를 창안해 현대 통계학의 중요한 개념을 다졌다.


1830년 네덜란드 왕국에서 독립한 신생 벨기에 왕국은 행정조직은 개편하고 국가 차원의 통계조사를 계획했다. 체계적인 조사 수행을 위해 내무장관 리츠는 자신의 친구 아돌프 케틀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많은 수를 관찰하고 수집한 다음 특정한 법칙을 찾아내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던 수학자 케틀레는 엄청나게 열정적인 조직가이기도 했다. 1833년 영국을 방문해 통계지부 설치를 도왔고, 1841년 벨기에로 돌아와 통계중앙위원회를 결성했으며, 1853년 최초로 국제통계학회를 조직해 통계 관련 간행물의 통일된 방법과 용어를 개발하기 위한 국제 협조를 호소하기도 했다. 케틀레는 오늘날 비만 측정 지표인 체질량지수를 개발한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평균인’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업적이 더욱 중요하다. 평균인은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신체적 특성뿐만 아니라 자살 성향과 같은 특성까지도 평균을 냈을 때 그 평균값들로 이뤄진 가상의 존재를 말한다. 케틀레는 평균인이 사회의 가장 전형적인 존재로서 사회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보았고, 평균인의 이상화가 사회에 대한 예술과 문학의 대표성을 더욱 강화하여 정치가들이 여론에 귀를 기울여 정치를 발전시키리라 믿었다.


케틀레의 평균인 개념은 이후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1840년대 앙투안 오귀스탱 쿠르노는 평균인이 매우 기괴한 모습이라고 비판하며, 직삼각형을 모아 변마다 평균을 낸다면 삼각형이 모두 닮은꼴이지 않은 한 결과물은 직삼각형이 아니라고 비꼬았다. 1865년 클로드 베르나르는 의학과 생리학에 평균을 쓸 경우 반드시 오류가 생긴다며, 어떤 남성의 소변을 24시간 모두 모아 분석한 평균은 존재하지 않는 소변을 분석한 결과로, 허기질 때 나오는 소변과 소화시킬 때 나오는 소변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케틀레는 이런 비난에 굴하지 않고 집단을 대표하는 전형을 평균인이 잡아내므로 집단의 표본을 비교 분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평균인 개념은 자연과학의 방법을 사화과학에 활용하는 이론적 구성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 등장한 증거기반의학은 개별 환자의 치료 결과가 아니라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거친 치료 결과를 최고 수준의 증거로 인정하자는 의학계의 운동이다. 주요 언론의 건강 지면을 도배하며 대중의 이목을 끄는 신약 효과 기사가 대부분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 결과에 기대고 있다. 신약의 효과 검증은 모집한 대상자를 치료군과 대조군에 무작위 배정하고 치료약과 대조약을 투약한 후 두 군의 평균적인 치료 성과를 통계적으로 비교하는 과정을 거친다. 대상자마다 개별 특성이 모두 다르고 효과 크기도 모두 다르지만 평균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으면 신약의 효과를 인정받지 못하고 시장에 출시할 수도 없다. 개인별 맞춤형 진단과 치료로 대표되는 정밀의학의 시대에는 개인별 임상시험 수행 결과를 종합하는 이른바 다수 1인(N-of-1) 임상시험이 확산될 전망이다.


평균으로 대표되는 자료 집계는 본질에서 정보 버리기, 즉 조지프 슘페터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 활동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평균을 계산하다보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에 어긋나거나 심지어 훼손시키는 정보를 원칙에 따라 버려야 한다. 어떤 문제에서는 관련 정보를 하나도 잃지 않는 자료 요약인 충분 통계량 개념을 쓸 수 있지만 빅데이터 영역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버드대 토드 로즈 교수는 2016년 발간한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분석하고 나서 집계하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의 자료 축적과 분석 방법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겔리브랜드가 산술 평균이라는 용어를 제안한 지 400주년이 되는 2035년은 통계학 연표에 평균의 종말을 선언하는 연도로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대니얼 R. 헤드릭 (2011), 정보화 혁명의 세계사, 너머북스.

스티븐 스티글러 (2017), 통계학을 떠받치는 일곱기둥 이야기, 프리렉.

조재근 (2017), 통계학, 빅데이터를 잡다, 한국문학사.

Simon Raper (2017 December), The shock of the mean, Significance.

Todd Rose (2016), The End of Average, Harpe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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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필진 한 명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준비없이 경향신문 미래오디세이 필진에 합류하게 됐다. 두 달에 한 번 미래에 대한 잡설을 풀어놓는 일은 고역이다. 2017년 10월 26일 자 '미래오디세이: 2054년, 통계맹 퇴치 원년'은 기거렌처 선생의 책자 내용을 가져와 통계맹 퇴치라는 희망섞인 미래에 약간의 불안을 뿌렸다. 초고 분량이 짧다는 연락을 받고 두어 문단을 급히 추가하느라 도입부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미래오디세이: 2054년, 통계맹 퇴치 원년

황승식(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


때는 2054년, 소르본대학 대강당에서 수세기 동안 인류를 역병처럼 괴롭혀온 지적장애인 통계맹 퇴치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확률론 등장 400주년, 조지 불의 ‘사고 법칙’ 발간 200주년, 레너드 새비지의 ‘통계학 기초’ 발간 100주년을 동시에 기념하는 연도였다. 이 행사는 유럽연합 의장과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공동 주최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통계맹”이라는 주제로 패널 토론을 진행했으며, 사회는 소르본대학 경제학자 에밀 에쿠 교수가 맡았다. 패널로 섭외된 베를린에서 온 정치경제학자, 베이징에서 온 통계학자, 스탠퍼드에서 온 심리학자, 파리에서 온 과학사학자가 두 시간에 걸쳐 통계맹의 등장과 퇴치에 이르는 역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치경제학자가 먼저 2007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통계적 사고는 점점 복잡해지는 세계에서 필수불가결한 덕목이 되고 있으므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함을 지적한 최초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통계학자는 메르켈 총리가 아니라 마오 주석이 일찍이 1940년대에 혁명 동지들에게 숫자 두뇌를 갖춰야 하고 기초 통계를 알아야 함을 강조했지만 문화혁명으로 인해 지체됐다고 반박했다. 심리학자가 즉각 ‘타임머신’을 쓴 현대 SF 소설의 아버지인 허버트 조지 웰스가 이미 20세기 초에 통계적 사고는 시민권의 필수 요소임을 강조했다며 되받아쳤다.


확률론이 등장한 1654년, ‘사고 법칙’이 발간된 1854년, ‘통계학 기초’가 발간된 1954년, 그리고 통계맹이 퇴치된 2054년까지 1754년을 제외하고 예외 없이 통계학에서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과학사학자는 1761년에 사망한 토머스 베이즈가 아마도 1754년에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된 유명한 정리를 발견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부연 설명했다. 심리학자가 통계맹이 이름을 얻게 된 해는 1988년으로, 존 앨런 파울로스 뉴욕대 교수가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발간하면서 대중에게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언급하자, 과학사학자는 퓰리처상 수상작인 ‘괴델, 에셔, 바흐’의 저자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인디애나대 교수가 1982년 발표한 문헌을 파울로스 교수가 인용하는 일을 깜빡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미국에서 DNA 검사법이 도입된 지 서른 해가 지난 2016년에야 국제사법연합이 법정에서 확률 대신 자연빈도에 기초한 소통을 의무화시켰고, 2020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노력으로 모든 의사가 자연빈도를 익혀 검사 결과에 해석에 필요한 조건부확률을 이해하게 됐다. 세계보건기구는 회원국에서 투명한 위험 소통을 목표로 하는 항정신오염법을 통과시켜, 의과대학생이 상대위험도가 아니라 절대위험도로 위험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은 통계적 사고에 기반한 계산맹 평가 문항을 포함시켰고, 15세 학생 95%가 통과한 어떤 국가는 통계맹 퇴치를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통계맹 퇴치를 위한 교육 훈련에 약 100억불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는 추정도 발표됐다.


위는 저명한 인지심리학자인 게르트 기거렌처 막스플랑크협회 인지개발연구소장이 2008년에 발표한 『인류의 이성: 인간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대처하는가」라는 책 에필로그에 실린 가상 대담의 일부다. 기거렌처 소장의 희망섞인 기대와 달리 2017년 현재 세계는 왜곡된 정보로 가득한 가짜뉴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은 주요 언론이 365일 24시간 가짜뉴스를 쏟아내고 있다는 표현을 SNS에 여과없이 내보냈고, 전직 한국 대통령을 탄핵시킨 스모킹건인 태블릿피시가 발견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증거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직 많다. 대중은 모든 숫자와 통계는 당연히 조작됐다고 믿고 있다. 1천명을 무작위로 뽑아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는 겨우 1천명이 어떻게 5천만명을 대표하는 의견이냐는 비난에 무력하다. 백신 음모론에 심취한 어떤 한의사는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라는 카페를 만들어 예방접종 거부를 선동하기도 했다. 분노에 찬 어떤 네티즌은 그렇게 큰 아이들이 나중에 ‘약 안쓰고 어르신 모시기(안어모)’를 만들어 봉양해도 되겠느냐는 촌철살인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톰 니콜스 미국 해군대학교수는 2017년 발표한 「전문가와 강적들이라는 책에서 전문가는 투명한 소통에 기초한 교육을 수행할 책임이 있고, 대중은 배워서 알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이미 1938년에 발표한 소설 ‘월드 브레인’에 “오늘날 일정한 기본 통계 교육은 읽기와 쓰기만큼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항목이 되고 있다.”는 명문을 남겼다. 전문 지식조차 간단한 키워드만 검색 엔진에 입력하면 셀 수 없이 많은 결과가 쏟아져 나온다. 인터넷 시대 교육은 검색 능력이 아니라, 정보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최근 헌법 개정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헌법 내 과학기술이라는 용어 사용과 과학기술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에 관한 의견 등을 조사해 과학기술인의 개헌 의견을 알리기 위한.행동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교육의 권리와 의무를 천명한 현행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와,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와 같은 조항을 담고 있다. 개정 헌법의 교육의 권리와 의무 조항에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는 통계맹 퇴치를 선언적으로라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2054년은 통계맹 퇴치 원년이 아니라 민주주의 폐기 원년으로 역사에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톰 니콜스 (2017), 전문가와 강적들, 오르마.

Gerd Gigerenzer (2008), Rationality for Mortal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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