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 중 55장은 '돌팔이의사 노릇 하는 바보'라는 장이다. 이 장도 흥미로운 대목이 여러군데라 옮기면서 짧은 언급을 보태본다.

1.

의술을 배우고도

병을 못 고치는 돌팔이의사는

말짱 사기꾼이라네.

>>> '난치병'의 시대를 지나 '만성 비감염성 질환(chronic non-communicable disease)' 관리의 시대지만 여전히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돌팔이 소리를 듣는 일은 흔하다.


2.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중병환자를 눕혀놓고

소변 검사나 하는 의사는 바보와 한 무리일세.

고작 뱉는 말이

"가만있게. 책부터 좀 찾아보고 천천히 처방을 말함세!"

>>> 중환자실에서 시행되는 수많은 검사가 겹친다. 고작 뱉는 말이 "잠시만요. 컨퍼런스 해보고 천천히 말씀드릴게요!"로 고쳐써도 된다.


3.

의술을 배웠노라 큰 소리 떵떵 치지만

쓸 만한 의사는 하나도 없네.

>>> 미디어에 명의는 차고 넘치지만 정작 의료 전달체계는 붕괴 직전이다. 수신지 작가의 <3그램>에 실린 한 대목을 보라.


4.

세상의 모든 질병을 다 고치겠노라,

세상 으뜸가는 의술이라고 간판을 떡 내걸고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남성, 여성의

습한 병, 건조한 병, 열이 차는 병, 냉한 병

만병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환영일세.

>>> 현대 의과대학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일차 진료의(primary care physician)'의 양성이다. 대학병원에서 수련 받아도 개업하면 모두 흔한 질병을 진료하게 된다. 의료비 증가 억제 대책으로 전문의 과잉을 지적하고 관련 대책을 입안할 경우 의사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5.

돌팔이의사란

송사에 힘 못 쓰는 변호사요,

죄악과 악행의 종류를 구분하고

참회의 방식을 찾아서

가르쳐줄 능력이 없는

고해 신부와 같으니,

이성을 잃은 바보에게는 백약이 무효라네.

>>> 돌팔이의사를 송사에 힘 못 쓰는 변호사에 비유한 대목을 읽으면 이 책이 15세기에 쓰였는지 21세기에 쓰였는지 분간하기 힘들다. 21세기에는 이성을 잃은 바보에게도 정신 건강을 챙길 권리가 있다. 이성을 잃지 않은 바보가 백약이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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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스티안 브란트가 1494년에 쓴 <바보배>라는 책 중 '의사 말을 안 듣는 바보'라는 제목의 장이 있다. 무려 500년도 더 된 책인데 지금 읽어봐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1.

의사가 환부를 절개해서 열고,

탐침으로 후비고,

상처를 봉합하고, 씻고, 붕대로 감고,

심지어 살갗을 벗겨내도 꾹 참고 견뎌야 하네.

>>> 인턴 시절 응급실에서 마취하지 말고 꿰매면 안되냐고 했던 양아치가 생각난다. 자기가 무슨 관운장인줄 안다. 한국 남자는 삼국지를 너무 많이 읽어서 문제다.


2.

훌륭한 의사는

환자의 목숨이 경각이라도 모른 척하지 않네.

병세가 아무리 위중할지라도

회복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네.

>>> 요즘 이랬다가는 과잉 진료 소리 듣기 딱 알맞다. 물론 말기 암환자의 고통 경감에는 지나치게 무관심하다.


3.

또 늙은 노파들의 케케묵은 비법을 철석같이 믿고,

부적과 엉터리 약초를 가지고

임종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은.

그랬다가는 지옥으로 직행한다네.

>>> 글이 쓰인 15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도 이런 사람이 너무 많다. 양방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은 한 세대가 지나면 달라질 것인가?


4.

병을 감쪽같이 떼준다는

미신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걸 다 끌어 모으면

이단의 책이라도 한 권 쓰겠네.


나 같으면 위의 구절을 다음과 같이 다시 써볼 듯하다.

병을 감쪽같이 떼준다는

스팸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걸 다 끌어 모으면

베스트셀러라도 한 권 쓰겠네.


5.

돌팔이들은 이렇게 말하네.

"몸뚱이가 살아 있으면 영혼은 절로 따라 붙는 거요!"

>>> 본래 쓰인 맥락과 무관하게 물신주의에 빠진 현대의 많은 의사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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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yber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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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에 혹이 생긴 것 같어라우." 그녀는 접수직원에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한번 봐줬으믄 좋겄는디요." ('제1장 검진', 29쪽)

"이 책에는 흑인들 특유의 생생한 사투리체 대화가 많이 등장한다. 책의 서문에 밝히고 있듯이, 저자는 원서에서 흑인들의 정서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이들의 표현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살려놓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대화를 원서의 느낌 그대로 생동감 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고심했다. 저자 역시 자신의 의도가 번역서에도 그대로 담기기를 주문했다. 이에 우리는 문학동네 편집부와 상의하여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역자들이 이 지역 사투리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까닭에, 추후 남도 출신 소설가 한창훈 선생님의 감수를 거쳤다." ('옮긴이의 말', 500쪽)


역자와 편집부는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본문 중 미국 남부 흑인들의 억양을 왜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하기로 결정했을까? 미국 역사와 한국 현대사에서 '비주류'라는 키워드로 풀어낼 수는 있겠지만 역자와 편집부의 선택이 자칫 '차별'이라고 느낄 독자를 고려했는지 의문이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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