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역학자 존 스노 


황승식(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사회의학교실)


지난 315일은 존 스노(John Snow)라는 평범한 이름의 의사가 태어난 지 200주년 기념일이었다. 스노는 19세기 빅토리아 시기 영국의 다른 의료계 명망가와 달리 요크셔 노동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스노는 런던 대학에서 의학사 및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외과의사로 개업해 성공했지만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실력으로 더욱 유명했다. 1853년 봄에는 여덟째 아이를 출산한 빅토리아 여왕의 클로로포름 마취를 담당해 최고의 명의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스노는 마취와 관련된 업적만으로도 의학의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지적 탐색 능력이 최고로 발휘되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야는 역학과 공중보건학이었다. 1840년대 말 영국은 콜레라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는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각종 이론이 난무했다. 콜레라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감기처럼 매개체가 있을 것이라는 감염론과 비위생적인 공간에 가득찬 독기(miasma) 때문이라는 독기론이 맞섰다. 에드윈 채드윅이나 윌리엄 파와 같은 공중보건 전문가조차 미신과도 같은 독기론을 지지했다.

 

스노는 1848년 콜레라 자료에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고 정체 모를 매개체를 통해 옮는다고 생각했다. 콜레라에 감염된 환자의 배설물에 직접 접촉하거나 배설물에 오염된 물을 마셔 생긴다고 믿었다. 감염론을 입증하기 위해 스노는 콜레라가 발생한 빈민촌을 꼼꼼히 조사해 증거를 모았고 런던에 식수를 제공하는 회사의 자료를 모았다. 두 자료를 취합해 스노는 특정 상수회사의 상수도가 오염돼 콜레라 발생이 높다는 가설을 세우고 콜레라가 유행한 브로드가의 펌프를 제거하여 사망자를 줄이는 역사적 성공을 거뒀다.

 

역학은 개별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의학과 달리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 방법을 찾는 의학의 한 분야다. 스노의 업적은 현대적 의미의 역학 조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모범 사례다. 콜레라 대규모 유행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감염 경로와 원인을 밝혀 콜레라 감염에 대한 새로운 이론과 분석 기법을 창안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콜레라 감염의 원인균인 비브리오 콜레라 박테리아는 스노가 뇌졸중으로 사망한 지 25년이 지난 1883년에서야 독일의 병리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확인했다는 점이다.

 

150년 전 런던이 직면했던 상황처럼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도시 빈민가도 여전히 많다. 안전한 마실 물이 없는 인구가 11억 명이 넘고, 상하수도와 같은 공중 위생 서비스를 못 받는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30억 명이다. 콜레라와 같은 감염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만 해도 매년 200만 명이다. 새로운 지적 탐색에 열정적이었던 스노가 오래 살았다면 콜레라가 아닌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스노의 업적으로 공중 위생 운동은 전기를 맞았다. 생전 스노의 감염론을 격하게 반대했던 채드윅의 공중 위생 개선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스노의 업적 이후 한층 강화된 제도로 안착했다.

 

21세기 세계의 거대 도시는 19세기 런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중 위생 상태가 개선됐다. 감염병학과 쓰레기 관리 기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관련 전문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스노가 브로드 가를 집집마다 확인하여 작성한 지도를 지금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컴퓨터 화면에 지도로 그려낼 수도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인플루엔자 발생에 대한 보고서를 매주 업데이트하고 다양한 도표와 지도로 제공하고 있다. 구글이 개발한 플루 트렌드는 전세계 구글 이용자들의 검색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하여 인플루엔자 확산 현황과 예측 정보를 만들고 있다.

 

1936년 브로드윅 가로 이름이 바뀐 브로드 가에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는 건물이 하나 있다. 스노가 제거하여 온 동네 주민을 콜레라로부터 구한 펌프로부터 십여 미터 떨어진 케임브리지 가 모퉁이에 있는 술집이 바로 그 건물이다. 전 세계에서 역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를 맞이하고 있는 이 술집의 이름은 존 스노 펍이다.


(새얼뉴스레터 2013년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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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즐기는 의학 연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황승식(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사회의학교실)

 

권위 있는 의학 저널인 영국의사협회지(BMJ)’는 매년 이 무렵 크리스마스 특집 호를 발간한다. 2011년에는 팝스타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27세를 일기로 요절하자 ‘27세 클럽은 실재하는가?’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연구 결과가 실렸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의대와 호주 퀸즐랜드 공대 연구진은 유명 뮤지션이 27세에 사망할 위험이 높은지를 통계적으로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연령에 따른 생존 분석을 수행하여 일차적으로 뮤지션 내에서, 이차적으로 일반 영국 인구집단과 비교하였다. 연구 대상은 1956년부터 2007년까지 영국에서 한 장이라도 음반을 발매한 1046명을 포함하여 분석했고, 이 중 71(7%)이 사망하였다.

 

정교한 통계적 기법을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 522명의 뮤지션 중 27세에 사망한 사례로 확인된 뮤지션은 세 명으로 사망률은 100 명 당 0.57명이었다. 이는 25세나 32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유명 뮤지션의 경우 일반 영국 인구집단에 비해 20대와 30대에서 사망 위험이 두 세 배나 높음을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27세 클럽이 실제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라 전설에 가깝지만 명성이 뮤지션의 사망 위험을 높일 수 있고 27세라는 연령에 제한되지도 않음을 밝혔다.


올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여러 편의 재밌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이 중 개의 우월한 후각 신경을 이용하여 대변과 환자에서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 균을 확인한 연구는 제목만 읽어도 웃음이 터진다네덜란드 자유 대학 연구진은 대형 교육 병원 두 곳에서 환자-대조군 설계를 적용하여 개가 장염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 균을 환자와 대변에서 식별해낼 수 있는지 확인했다. 균의 냄새를 식별하도록 훈련된 두 살 먹은 비글을 이용하여 30명의 환자와 270명의 대조군에 대해 식별 여부를 시험했다.

 

환자의 감염 상태를 알 수 없는 조련사가 개를 이끌어 실험 대상자에게 데려 갔고 개가 균을 탐지하면 앉거나 눕도록 훈련시켰다. 놀랍게도 개가 균을 식별하는 민감도와 특이도는 대변에서 100%였으며, 30명의 환자에서는 25명을 식별하였고(민감도 83%), 270명의 대조군에서는 265명을 식별하였다(특이도 98%). 결론적으로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 균을 탐지하도록 훈련된 개는 균에 감염된 환자와 대변 모두 잘 식별해낸다고 보고하고 잇다.

 

노벨상을 패러디하여 만들어진 이그 노벨상이 있다. 1991년 미국의 유머과학잡지인 기발한 연구 연감에 의해 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흉내낼 수 없거나 흉내내면 안 되는”(that cannot, or should not, be reproduced) 업적에 수여되며, 매년 가을 진짜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1~2주 전에 하버드 대학의 샌더스 극장에서 시상식을 가진다. 진짜 노벨상 수상자들도 다수 참석하여 시상에 참여하며, 논문 심사와 시상을 맡고 있다.

 

시상 부문은 유동적이나 대체적으로 노벨상의 여섯 부문(물리학 · 화학 · 의학 · 문학 · 평화 · 경제학)에 생물학상이 추가된 7개 부문이 거의 고정적이며, 보통은 실제 논문으로 발표된 과학적인 업적 가운데 재밌거나 엉뚱한 점이 있는 것에 상을 준다. 올해 신경과학상은 기능성자기공명장치(fMRI)와 관련된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크레이그 베닛 연구팀은 뇌 속 혈류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fMRI를 죽은 연어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죽은 연어의 촬영 결과에서도 뇌가 활성화됐을 때 나타나는 데이터들이 발견됐다. 당연히 거짓 양성 반응이다. 이 연구는 MRI 등 뇌 촬영 결과를 무조건 믿는 경향에 경종을 울리는 결과다.

 

일상이 팍팍할수록 웃음이 부족해진다. 한국의 중년 남성은 유머가 부족하기로는 최악의 집단이다. 영국의사협회지 크리스마스 특집과 이그노벨상 수상작을 보면 연구를 심각하지 않게 즐기는 방법을 일러준다.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나라보다 이그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나라가 연구를 즐기는 진정한 과학 강국이라는 농담은 그저 농담이 아니다.


(새얼뉴스레터 2012년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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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원제: Calculated Risks)』의 계산되지 않은 번역



게르트 기거렌처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계산된 번역이 아니었다. 번역 초고를 받아 감수를 시작한 시점은 한참 전이었다. 저자는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의료 분야 위험 소통의 대가답게 실제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용어와 표현을 다듬다 보니 감수로 무임 승차하려던 계획이 어긋나고 공동 번역이라는 골치 아픈 계획으로 바뀌었다. 무리한 결정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물론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계산맹의 특징으로 확실성에 대한 환상, 위험에 대한 무지, 잘못된 위험 소통, 흐릿한 사고를 들고 있다. 많은 의료인이 보여주는 모습으로 현행 의학 교육에서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다. 물리학과 생물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과학에는 통계적 사고가 혁명적으로 확산됐지만 모든 의사에게 이르고 있지는 않다. 의사의 통계맹은 주로 환경의 문제로 의사 개인의 문제로 환원될 수는 없다. 심지어 저자는 최근 발간된 다른 책에는 의사가 통계맹으로부터 개안되면 환자와 의사의 위험 소통이 원활해질 뿐 아니라 민주주의 기능 강화에도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얼마 전 유명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자신이 유방암과 난소암 위험 유전자를 갖고 있으므로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뉴욕 타임스 지면에 공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많은 언론이 이 사실을 앞다퉈 소개했지만 정작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을 경우 얼마나 위험이 감소하는지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자는 ‘5장. 유방암 검진’에서 유방촬영술 양성 결과가 나왔을 때 실제로 유방암이 있을 확률을 계산하느라 애먹는 다양한 의사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베이즈 정리와 자연 빈도를 이용해 각각 확률을 계산하는 과정, 유방촬영술과 예방적 유방절제술의 비용과 이익을 비교 위험도 감소/절대 위험도 감소/치료 필요 환자수로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의료인이나 예비 의료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출판사에 넘긴 최종 번역 원고에는 저자의 불확실한 기억에 대한 수정,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데이터 소개, 어색한 표현에 대한 설명을 옮긴이 주로 달았다. 전문 분야의 독자가 아닌 이상 본문에 달린 옮긴이 주는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는 편집자의 의견을 고심 끝에 받아들여 모두 덜어냈다. 활자로 인쇄되지 못한 옮긴이 주는 출판사 카페( http://cafe.naver.com/sallimbooks/23781 )에서 확인할 수 있으므로 관심 있는 독자의 방문을 환영한다. 터무니없는 오역과 비문을 없애기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전혀 없다고 말할 허풍은 내 유전자에 없다. 눈 밝은 독자가 찾아내서 홈페이지나 역자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알려주기를 기대한다. 계획에 없던 공동 번역을 흔쾌히 수락해 준 전현우 씨와 읽기 쉽게 만들어준 살림출판사 편집자 이주희 씨께 마지막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13년 7월 황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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